결혼할 때 맞췄는데 30여 년 만에 처음 입었다는 혼례복
[김경희 기자]
내게는 40여 년 만남을 이어온 네 명의 친구들이 있다. 지난 5월 열렸던 첫 개인전 '찬란한 인생' 전시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재료이자 주제였던 혼례복을 아낌없이 기부해 준 친구들이다(관련 기사 : 교사 36년 퇴직 뒤 처음 연 개인전... 참 '찬란한 인생'입니다 https://omn.kr/2d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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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주보 청색, 홍색 천을 맞대고 박아 만든 보자기. |
| ⓒ 김경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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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벌의 두루마기 고운 홍색 모두 아름답지만 맨 오른쪽 초록 안감이 유독 눈길을 끈다. |
| ⓒ 김경희 |
그중 민영이의 두루마기는 단연 시선을 사로잡았다. 강렬하고 열정적인 배색의 두루마기였다. 아주 고운 빨강의 겉감에 안감으로는 보색인 초록색을 넣어 지은 것이다. 초록도 그냥 초록이 아니라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또 안섶에는 마치 양복처럼 옷 주인의 이름을 수놓았다. 노란색 실로 얌전하고 꼼꼼한 손바느질로 세발 뜨기한 단 처리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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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뜨기 새 새 발을 닮았다고 해서 새발뜨기라고 부르는 바느질. 치맛단, 바짓단 등 마무리에 많이 쓰인다. 빨강에 초록도 강렬한데 심지어 실 색도 노란색. 이 옷을 지은 이는 강렬한 색감을 정말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것 같다. |
| ⓒ 김경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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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머니에 수놓은 이름 주머니에 이름을 수놓거나 한복 깃에 자수를 놓기도 했다. |
| ⓒ 김경희 |
"야, 근데, 나 이 옷 한 번도 안 입은 것 같아."
"뭐? 두루마기를 한 번도 안 입었다고? 왜?"
두루마기는 일종의 코트다. 명절, 특히 설에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각각 한복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양가를 방문하게 마련이다. 봄에 결혼을 했던 민영이는 계절이 맞지 않아 당장 두루마기를 입을 필요가 없었지만 명절에는 입어야 하니 결혼 예복과 함께 맞춘 것이다. 하지만 민영이는 명절이 오기도 전에 남편과 함께 외국 유학을 떠나 긴 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랜 외국 살이에, 출산과 육아를 하다 보니 어쩌다 귀국을 한들 두루마기는커녕 치마저고리나마 입을 여유가 있었을까? 치마저고리야 폐백을 드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입었으니 몇 번 쯤은 입었을 테지만 두루마기는 맞춰 놓기만 하고 실은 한 번도 입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온 것이다!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이가 외쳤다.
"야, 나도 두루마기를 한 번도 안 입었던 것 같아."
우리는 그만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다섯 친구 중 두 명이나 자신의 혼례복을 한 번도 안 입고 그 긴 세월을 지났다니, 황당하지 않는가? 선이 역시 봄에 결혼을 했는데, 금방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추석이든 설이든 만삭의 몸으로 한복을 팔랑거리며 입고 다닐 형편이 아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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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루마기 소매 두루마기 소매에는 끝동을 달지 않는데, 이 한복에는 끝동이 있다. |
| ⓒ 김경희 |
이런 황당한 일이 있다.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지은 두루마기이니 만큼 가장 최고의 솜씨, 마음을 담아 지은 두루마기가 한 번도 주인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긴 세월 장농 속에서 홀로 나이 들어간 것이다.
한 친구가 이런 제안을 했다.
"두루마기가 경희 작품이 되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고 기념촬영, 어때?"
두 친구는 30여 년 전 지었던 자신의 혼례복 두루마기와 목도리를 두르고 포즈를 취했다. 고흥에서 된장을 만들면서 전통춤을 추고 있는 민영이, 유치원 교사로, 아동문학 작가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선이. 세월은 흘러 고왔던 새색시는 간 데 없지만 그 세월만큼 저 마다의 세계를 만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다.
참, 글머리에서 이야기했던 사주보 이야기를 맺지 못했던 것 같아 사족을 덧붙인다. 친구들은 '한번 떠나 보냈으니 이제 모두 네 것'이라며, 작품에 소중하게 써 달라고 하였다. 비록 친구들의 허락을 받긴 했지만, 아마도 나는 보자기들을 오래 오래 간직하게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브런치 https://brunch.co.kr/@gipyung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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