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끌고 가서 한 잔…생활맥주는 어떻게 '자영업 실험실'이 됐나 [비크닉]
■ b.멘터리
「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
한국은 ‘자영업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창업 열기가 뜨겁지만, 생존율은 처참합니다. 한국인 5명 중 1명이 자영업에 뛰어드는데 3년을 버티는 사람은 절반에 불과하죠(2023년 국세청 기준, 생활업종 3년 생존율 53.8%). 올해는 문 닫는 자영업자 수가 10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정부가 대응책 등을 준비 중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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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 브랜드를 바꾼 질문…식당도 ‘존재 이유’가 필요하다
“오백 한 잔 주세요.” 호프집에서라면 흔하디흔한 이 문장에 임 대표는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주문 용량만 정해주면 될 정도로 대부분 술집이 한두 가지 대기업 맥주만 팔고, 소비자도 선택을 포기한 현실을 낯설게 본 것이죠.
임 대표는 이후 전국의 양조장들과 손잡고 다양한 수제맥주를 큐레이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별 맥주에 담긴 이야기부터 취향에 따른 선택까지, 생활맥주는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맥주 고르는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를 지향했죠. 당시 수제맥주는 낯선 맛과 향 때문에 생소한 주류로 인식됐고, 프리미엄 주류로 유통돼 대중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생활맥주는 처음부터 양조장과 협업, 판매처를 확보한 상태로 메뉴를 개발했기 때문에 비용을 크게 절감했죠.

생활맥주가 단순히 수제맥주라는 아이템만 내세웠다면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성장하진 못했을 겁니다. 임 대표는 소비자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공간 브랜딩’이 외식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편의점이 아니라 굳이 생활맥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직접 인테리어를 공부해 공사장 발판, 폐교 교실 바닥 같은 빈티지 소재로 매장을 꾸몄습니다. ‘슬리퍼를 끌고 가는 동네 술집’이라는 콘셉트를 구축하기 위해 오래된 느낌을 살린 거죠. 덕분에 수제맥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임 대표의 창업 경력에서 비롯됐다고 해요. 개발자 출신인 그는 한국오라클에서 영업 담당자로 일했습니다. 영업 활동 중 눈여겨본 참치 식당으로 창업을 시작했고, 치킨집을 차린 경험도 있죠. 수차례 어려움을 겪으면서 ‘존재 이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템이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인가?’라는 질문이 생활맥주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죠.
‘경쟁 피하기’가 경쟁력 비결…상권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생활맥주의 상권 선택 전략은 지금도 유지됩니다. 11년간 직접 고른 직영점만 52개, 가맹점 위치 추천까지 임 대표가 직접 나섭니다. 유동인구나 권리금을 고려하기보다 경쟁을 피하면서도 생활맥주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곳만 택한 덕분에 생활맥주는 상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해요.

운영 시스템의 차별성을 갖추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생활맥주의 모든 전략과 실험은 직영점에서 시작됩니다. 메뉴 하나 바꾸는 것도, 인테리어 리뉴얼도, 직영점에서 먼저 실험한 뒤 성과가 입증되면 가맹점에 도입합니다. 생활맥주는 전국 50여 개 양조장과 기획해 매월 새로운 맥주를 선보이고, 소비자 반응을 살핍니다. 가맹점은 직영점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맥주를 선택적으로 판매할 수 있죠. 전국 매장마다 맥주 라인업이 다른 것도 생활맥주만의 특징입니다.
여기에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큰 고민인 로열티 문제도 덜어냈습니다. 생활맥주 전체 매출의 70% 이상이 직영점에서 나오기 때문에 로열티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임 대표는 “본사가 직접 돈 벌어본 경험이 없는데 남한테 팔라고 하는 건 너무 위험한 발상”이라며 “가맹점은 본사에 돈을 벌어주는 곳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동료”라고 했습니다.
‘나만의 맥주’부터 해외 진출까지…생활맥주는 여전히 실험 중

최근엔 온라인 커스터마이징 서비스 ‘술이지’를 내놨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맥주를 소량 주문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인데, 출시 1년 만에 3000건 넘는 주문을 기록했고, 재구매율도 60%를 넘었습니다. 이는 ‘매장 밖에서도 생활맥주 브랜드 경험이 가능한가’를 묻는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해외 진출 역시 실험의 연장선입니다. 지난해 싱가포르에 연 매장을 시작으로, 올해 하반기엔 필리핀·태국에 매장을 낼 예정이고, 미국 진출도 준비 중입니다. 특히 싱가포르 매장에서 큰 인기를 끈 ‘K-인삼 라거’는 증평 인삼을 넣어 우린 한국형 수제맥주로, ‘왜 이 나라에 한국 맥주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한국을 찾은 싱가포르 사람들이 홍삼과 인삼을 기념품으로 산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죠. 덕분에 오픈 한 달 만에 1만 명 이상이 찾는 공간이 됐다고 해요. 임 대표는 “우리 쌀, 우리 유산균 등 우리 재료와 우리만의 스토리가 담겨야 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햄버거는 맥도날드, 커피는 스타벅스, 맥주는 생활맥주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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