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숨 쉬었는데 누구는 피해자이고 누구는 아니라니요?"

변상철 2025. 7. 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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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변영웅씨의 절규

[변상철 기자]

 환경부에 제출한 가습기살균제 사용 증거사진.
ⓒ 변영웅
"같이 숨쉬고 같이 밥 먹은 가족인데,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살균제를 썼는데 왜 우리 가족 중 한 명만 피해자로 인정받고 나머지는 등급 외입니까."

전북 익산에 거주하는 변영웅(1966년생)씨는 가족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변씨는 1999년 갓 태어난 딸을 위해 옥시 뉴가습기당번, 롯데마트 PB제품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0년 넘게 같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아내와 아들, 딸까지 가족 4명 모두 같은 방에서 살균제를 흡입했다. 사용 흔적은 사진과 영수증 등으로 명확히 입증됐다. 하지만 피해 판정은 정반대였다. 딸만 '경미' 판정을 받아 매달 약 15만 원의 약값 보전금을 받고, 변영웅 씨 본인을 포함한 나머지 세 가족은 등급 외 또는 낮은 등급으로 판정돼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발골수종으로 5년간 생사 오가… "폐 외 증상은 아예 보지도 않아"

변씨는 2011년 익산 원광대병원에서 다발골수종(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는 혹독했다. 5년간 집중 치료를 받으며 입·퇴원을 반복했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가 제기한 가장 큰 문제는 판정기관(환경보건센터)이 현재까지도 오로지 폐기능 검사만으로 등급을 판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씨는 "내가 다발골수종으로 죽다 살아났는데, 매년 지정병원에 가면 폐기능 검사만 한다"라며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는 다양한 질병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현실은 10년째 폐만 본다"라고 분노했다.

기자가 확인한 2017년 제정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약칭 피해자특별법) 제10조(건강 모니터링)에는 "국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하여 건강 모니터링을 실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 시행령 제17조는 모니터링 항목을 정할 때 "폐질환 외에도 피해자가 호소하는 질환 및 건강 이상 소견을 포함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즉, 법적으로는 폐 외 질병까지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변영웅씨 사례처럼 현실에서는 지정병원에서 피해자의 폐기능 검사만 한다.

전문가들도 '법적 근거는 충분한데 환경부가 제대로 된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지난 2022년 5월 13일 박태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특별법은 피해자가 호소하는 다양한 건강 이상을 확인하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폐기능 평가에 집중되어 있어 제도 운영취지가 살지 못하고 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변씨는 사용했던 가습기의 사진과 살균제 영수증 등 증거를 정부와 기업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전신 증상과 질병을 조사하지 않았고, 피해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옥시 등 제조사는 "정부가 혈액암을 피해로 인정하지 않았다"라며 배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변씨는 "정부가 판정하지 않으니 기업은 정부 뒤에 숨는다. 우리 가족은 증거도 있고, 병도 있는데 정부와 기업 모두 책임을 피한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폐 중심' 등급제가 피해 쪼개고 지원 축소

피해자 판정 기준인 등급제는 오직 폐CT 소견과 폐 기능지수(FEV1 등)에 따라 등급을 결정하고, 등급에 따라 지원금 규모가 정해진다. 변씨 가족처럼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기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더라도 각자 폐에 보이는 손상 정도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피해자 단체 관계자는 "결국 등급제는 피해자 한 가족의 고통을 쪼개서 정부 예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은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 산하 판정위원회가 운영하는 등급제에 따라 결정된다. 피해자는 폐질환 여부와 폐기능 지표(예: FVC 등)를 중심으로 1~4단계로 나뉜다.

- 1단계(중증)
폐섬유화가 심각하거나 폐기능 저하(FVC 50% 미만)가 명확한 경우
지원: 연간 최대 300만 원 의료비, 월 20~30만 원 간병·생계비
- 2단계(중등도)
폐 섬유화 소견은 있으나 기능장애는 상대적으로 경미(FVC 50~80%)
지원: 연간 최대 150만 원 의료비, 월 10~15만 원 생계비
- 3단계(경미)
폐렴 증상만 남아있거나 폐 섬유화가 없는 상태
지원: 월 10~15만 원 수준의 약제비·소액 의료비
- 4단계(등급 외)
폐에 병변이 없거나 사용과 인과성이 부족하다고 판정되는 경우
지원: 의료비·생계비 등 모든 지원에서 제외

"같은 가족인데 등급 나눠 지원"

변씨 가족 사례는 이 등급제가 피해자를 쪼개는 구조적 모순을 잘 보여준다. 같은 방에서 같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같은 증상을 보였는데도, 심지어 여러 장의 가습기살균제 사용 사진을 제출했는데도, 변씨 본인은 폐렴으로만 인정돼 일부 약값을 보전 받고, 딸은 경미 등급으로 월 15만 원 정도만 지원 받는다. 반면 아내와 아들은 등급 외 판정을 받아 치료비와 생계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단체 관계자는 "이런 등급제는 피해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개인별 폐 기능으로 피해를 나누어 지원 예산을 축소하려는 수단으로 작동한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피해자들은 "같이 숨쉬었는데 왜 피해가 갈라지느냐"라며 분노하고 있다.

환경부가 피해자 특별법에서 허용하는 다양한 질병 모니터링 조항(제10조, 시행령 제17조)을 활용하지 않고, 폐 중심 판정으로 등급을 갈라 구제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변 씨는 "정부가 등급제를 고집하는 한 피해자는 가족 안에서도 차별을 겪는다"라며 정부의 전수조사와 등급제 개혁을 촉구했다.

"PHMG, 전신 독성으로 혈액 질환 유발 가능성"

변씨는 폐질환뿐만 아니라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혈액암이 발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씨는 자신이 앓고 있는 혈액암의 원인 중 하나가 PHMG 성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가습기살균제 성분 PHMG에 대해 고려대·국립환경과학원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논문은 PHMG 흡입이 조혈계에 영향을 미쳐 혈액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구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모델에서 PHMG 노출군에서 단핵구 수치 감소, 혈소판 저하, 조혈 기능 장애 등이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 "PHMG는 조혈계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이는 변씨의 다발골수종을 가습기살균제와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과학적 단서였지만 환경부는 피해 판정 기준에 반영하지 않았다.

변씨는 국내에서 더는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피해자 강에스더씨 등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연락사무소(NCP)에 한국 정부와 옥시를 제소했다. 그는 "국내 법과 제도로는 해결될 기미가 없고, 정부와 기업 모두 책임을 회피하니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변씨는 지난해 UN 특별보고관에게도 피해를 호소하며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책임을 묻는 국제적 문제로 확산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는 총 7800여 명, 이 중 사망자는 1400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 통계도 정부가 인정한 '폐 중심 피해'에 한정돼 있다. 피해자단체가 자체 집계한 피해 의심자는 2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환경부가 피해 범위를 폐질환으로만 좁히면서 실질적 피해자가 인정받지 못하고, 사망 후에도 구제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한다"라고 비판한다.

전문의도 전신 독성 경고
 한국지단백연구원의 의견서. 이 의견서에는 가습기살균제와 혈액암이 관련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나와 있다.
ⓒ 한국지단백연구원
변씨의 다발성골수종에 대해 여러 전문 의료진은 가습기살균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변씨가 보내온 여러 논문과 연구결과에서도 가습기살균제와 암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추세이다.

특히 2021년 2월 10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에 제출된 한국지단백연구원의 의견서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의한 54세 남성의 폐렴과 혈액염증 다발성 골수종 유발인과관계>에서 "가습기살균제 성분들의 혈관 독성이 인정되고, 혈액을 따라 전신성 질환, 혈액암 등이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의한 혈액암, 다발성 경화증, 혈관성 염증 유발 환자로 피해자 등록하고 보상 지원 및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결론 지었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러한 사참위의 발표 후에도 '폐질환 외 다른 질병에 대한 인과성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만 밝혔다. 이후 피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거나 판정 기준을 개정하겠다는 구체적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2022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 현황 발표(환경부 보도자료, 2022.3.28.)에서 "정부는 현재까지 폐질환 피해자 지원에 집중하고 있으며, 혈액암 등 다른 질환은 인과성 입증이 부족하다"라며 기존 방침을 유지했다. 환경산업기술원 역시 판정위원회를 운영하면서 피해자 등급을 결정하지만, 2021년 이후 공식 회의록이나 보고서, 대외 발표에서 '혈액암을 피해 질환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고 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우며, 환경부와 마찬가지로 '폐질환 외 질환에 대한 과학적 인과성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판정기준 유지를 밝혀오고 있다.

변씨 역시 새로 선출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이 모순의 고리와 고통을 해결해 주길 바라며 편지를 썼다.

"14년째다. 정부는 모니터링을 한다면서 폐 하나만 들여다보고, 우리 가족은 지금도 병원비에 허덕인다. 옥시는 정부 핑계를 대고 배상을 거부한다. 이재명 대통령께 부탁드린다. 우리 같은 피해자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피해자특별법을 제대로 시행하고 정부가 피해 전수조사와 재심사를 해서 가족 단위 피해를 인정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한 사람, 한 가정만의 비극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이 피해자 가족의 연속된 고통을 '등급제'라는 이름으로 나누고, 증거를 들이밀어도 "폐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피해를 부정하는 구조적 모순의 문제다. 피해자특별법은 다양한 질병 모니터링을 허용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고통은 길어질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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