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략 수출 산업으로 주목받는 K-중고차 [스페셜리포트]
K-중고차가 씽씽 달린다. 나라 안팎으로 워낙 잘나간다. 내수에서는 경기 침체와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중고차가 신차 구입 수요를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다. 요즘엔 해외에서 더 뜨겁다. 입증된 품질과 저렴한 가격 입소문을 타고 해외 바이어 러브콜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지난해 한국 중고차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중고차는 이제 대한민국 전략 수출 산업으로도 주목받는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주력 수출 업종인 자동차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수출 효자로 손색없다는 의견이다. 다만 아직까진 ‘산업’으로 부르기엔 모자라다. 인프라가 여전히 미비하다는 중론이다. 중고차 산업 투자와 육성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제언이 계속되는 이유다.
중고차, 수출·내수 모두 ‘전성기’
2024년 수출 최대…내수는 불황 수요
중고차는 전형적인 불황형 산업이다. 불황 속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가 신차 대신 저렴한 중고차를 찾는다. 최근에는 품질 인증을 강화한 중고차 플랫폼이 늘어나는 가운데 중고차 고질병인 신뢰 문제도 점차 해결된 모습이다.
최근 수출이 증가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한국 불황과는 별개로 전 세계에서 국산 중고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중고차 수출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수출량과 수출액 모두 최고 기록을 다시 쓰는 중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팔려나간 국내 중고차는 62만6462대. 2021년 약 46만대와 비교하면 40% 가까이 증가했다. 2023년(63만5972대) 대비 판매 대수는 소폭 감소했지만 수출액으로 따지면 3억달러 넘게 늘었다. 해외 바이어가 이전보다 한국 중고차값을 후하게 쳐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수요가 늘고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오른 결과다.
올해 수출 기록은 더 좋다. 올해 4월까지 누적 수출 대수가 7만8842대로 전년 동월 대비 55%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수출액은 3억9069만달러에서 7억6140만달러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단순 물량뿐 아니라 차량 1대당 평균 수출 단가도 덩달아 큰 폭으로 오른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4월까지 수출액만 따져도 벌써 지난해 전체 절반 수준이다.
최근 더 가팔라지는 중고차 수출 증가세는 국내 1위 중고차 수출 항만인 인천항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인천본부세관에 따르면 올해 1~5월 인천항 중고차 물동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8.8% 늘었다. 올 들어 매달 6만대가량을 해외로 내보내면서 세관 신고 기준 총 31만8997대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만대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50만대 수출을 훌쩍 넘어 올해는 70만대 이상 수출 달성이 전망된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러-우 전쟁 이후 서방 신차 공급이 막힌 러시아에서 국내 중고차 수요가 급증했다. 키르기스스탄 등 주변국을 통해 한국 중고차를 대거 들여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정세가 불안한 중동행 물량도 크게 늘었다. 특히 차량 수출입을 강력히 통제하던 시리아 독재 정권이 지난해 12월 무너진 이후 한국 중고차 수출이 증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수출뿐 아니라 내수 중고차 시장 흐름도 나쁘지 않다. 경기 침체 우려가 옅어질 기색이 없는 상황에서 저렴한 중고차 선호 현상이 커졌다.
올해 5월부터 대기업 중고차 시장점유율 제한 조치가 해제되며 현대차·기아·KGM 등 완성차 업체 중고차 진입이 더욱 활성화될 조짐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합리적 소비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완성차 업계가 직접 인증한 품질 보증 중고차가 대거 쏟아져나오며 시장 전체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차 가격이 꾸준히 우상향하는 가운데 출고 기간이 짧은 중고차 선호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중이다.
국내 중고차 판매 규모는 신차 규모를 훌쩍 앞선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차 판매 대수는 약 243만대로 신차 판매 대수(약 164만대)에 비해 80만대 가까이 더 많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내 중고차 거래량은 77만9752대로, 신차 거래량(55만3392대)을 22만대 이상 웃돌았다.
안도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1분기 국내 신차 판매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는데, 중고차 등록 대수는 3% 늘어났다”며 “수출을 비롯한 중고차 경매 시장 호조가 중고차 가격을 지지하면서 판매액 또한 커지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지정학적 이슈 + 입증된 품질
K-중고차 수출 호조는 글로벌 수요 전반이 커진 덕도 있다. 특히 중고차 인기가 많은 신흥국 경제 성장에 힘입어 중고차 무역 규모가 크게 늘었다. 글로벌 중고차 거래 대수는 2010년 540만대에서 2022년 1020만대로 12년간 90% 가까이 성장했다(한국자동차연구원).
하지만 최근 들어 유독 K-중고차를 선호하는 국가도 있다. 수요처는 의외로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동 국가다. 지난해 수출량 기준 1위 국가는 아프리카 ‘리비아’다. 약 12만1000대에 달하는 국산 중고차가 리비아로 넘어갔다. 2위는 키르기스스탄(약 7만2000대)이 차지했다. 두 국가 수출량을 더하면 전체 30%를 훌쩍 넘는다. 뒤를 이어 튀르키예(약 4만5000대), 러시아(약 2만8000대), 아랍에미리트(UAE·약 2만7900대) 순이다.
수출액으로 따지면 순위가 바뀐다. 판매 대수 2위였던 키르기스스탄이 약 14억9000만달러를 기록하며 전체 30% 이상을 차지했다. 유일하게 10억달러가 넘는 국가이기도 하다. 중고차 한 대 수출당 평균 단가가 다르다. 리비아(1758달러)와 튀르키예(2266달러) 등 주요 수출국 평균 가격이 2000달러 안팎인 데 반해 키르기스스탄은 그 10배가 넘는 2만800달러에 육박한다.
차이는 각 국가마다 한국 중고차를 재판매하는 지역, 그리고 해당 지역별 소득 수준에서 비롯한다. 리비아는 같은 튀니지·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한 중고차 재수출 거점 지역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만큼 저가 중고차 수요가 크다.
반면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 재수출 통로로 주로 활용된다. 비교적 준수한 품질과 신차급 중고차를 주로 사간다. 러시아 평균 수출 단가(약 2만1000달러)가 키르기스스탄보다 조금 더 높다. 키르기스스탄이 상대적으로 비싼 중고차 수요가 크다는 얘기다. 경차와 화물차 인기가 높은 아프리카 지역과 달리 러시아 등지에선 현대차 아반떼·그랜저와 제네시스 GV80 같은 모델이 인기가 좋다. 중동은 기아 스포티지, 현대차 투싼·싼타페 등 SUV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해외 수요가 급증하며 중고차 업계도 분주해졌다. 큰손으로 떠오른 해외 바이어를 잡기 위한 노력이다. 해외 수출은 대부분 ‘경매’에서 이뤄진다. 해외 딜러가 한국 중고차 경매에 직접 참여해 낙찰받은 자동차를 국가별 셀러에게 넘기는 구조다.
예를 들어 국내 중고차 업계 1위 기업 ‘케이카’는 직접 매입한 차량을 경매에 출품, 해외 딜러와 바이어가 낙찰받아 해외로 판매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케이카는 경매 수수료와 판매 마진으로 돈을 번다. 직접 수출은 안 한다. 케이카 관계자는 “경매장 딜러 고객 중 수출업자 낙찰 비중은 절반 이상으로 예년 대비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전쟁 장기화로 중고차에 대한 특수가 이어지며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수출업자 경매 낙찰 증가는 케이카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올해 1분기 케이카 전체 매출(6046억원)에서 경매가 576억원 정도다. 전년 동기 대비 28.1% 증가한 수치다. 여기 힘입어 케이카는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215억원) 기록을 다시 썼다.
케이카 관계자는 “경매 인프라 확충,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 수요 예측 고도화를 통한 재고 관리로 수출 증가 추세에 맞춰가고 있다. 세종 제2경매장 등 경매 주차 공간을 늘리고 있고 해외 딜러 네트워크 확대, 수출 핵심 차종 집중 소싱 등 노력도 계속하는 중”이라며 “수입국별 규제와 선호 차종·연료·색상·옵션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중고차 호조에 웃는 또 다른 기업은 롯데렌탈이다. 국내 1위 렌터카 ‘롯데렌터카’에서 운행을 마치고 반납한 차량을 기반으로 탄탄한 물량을 자랑한다. 국내 수출 업체를 통한 도매 공급과 롯데렌탈이 직접 해외 바이어에게 판매하는 직수출 등 ‘투트랙’ 전략이다. 중고차 판매 매출과 수출 대행 수수료 등 수익이 발생하는 데다, 차량 확보부터 수출 통관, 선적 등 수출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해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이 차별 포인트다.
롯데렌탈은 2019년 중고차 수출 전문 브랜드 ‘롯데오토글로벌’을 설립하며 수출 본격화에 나섰다. 지난 5년간 연평균 106.1%에 달하는 고성장을 기록하며 실적을 견인 중이다. 지난해 누적 수출 5757만달러를 기록, ‘5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롯데렌터카에서 직접 운용하거나 매입해 바이어 입장에서 믿고 살 수 있는 차량이 많다. 정찰가 판매와 실시간 중고차 입찰 시스템으로 제품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 만족도가 높다”며 “지난해 7월 중고차 수출을 위해 UAE 두바이에 해외 법인을 설립하는 등 최근 국산 중고차 선호가 높은 중동 지역 국가에 영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타 중고차 기업도 해외 바이어 공략에 여념 없다. KB캐피탈에서 운영하는 중고차 플랫폼 ‘KB차차차’는 2022년부터 수출 전문 플랫폼 ‘오토위니’와 제휴를 체결, KB차차차에 등록된 매물 중 일부를 플랫폼에 노출해 해외 바이어 구매와 연결하는 간접 수출 모델을 운영 중이다. 중고차 플랫폼 ‘엔카닷컴’에 매물을 올리는 딜러들 역시 ‘Tax 100%’ ‘No Paint’ ‘2Keys’ 등 수출을 염두에 둔 영문 홍보 문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5 (2025.06.25~07.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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