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미스터 션샤인들'이 장렬히 산화한 돈대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양이(洋夷)라 했으니, 오랑캐 취급한 셈이다. 병인양요를 당해서도 소중화(小中華)를 외치는 판국이니, 조선 지배층 빼고 누군들 오랑캐 아니겠는가? 문호를 여느냐 마느냐를 떠나 세계사 흐름에 눈과 귀마저 닫아 버렸다는 게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영국은 인도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배하며 거대한 중국에 대해선 간접 지배정책을 펼친다. 부담스러운 존재기 때문이다. 중국의 속국이라 여긴 조선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1853년 개항한 일본을 큰 시장으로 취급한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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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1872년_지방지도_부분) 강화와 김포 사이 물살 세기로 유명한 손돌목이다. 오른쪽 당시 통진에는 덕포진 돈대가 보인다. 왼쪽 강화쪽 해협 아래에서 위로 초지진-덕진진-광성보가 차례로 늘어서 있다. 광성보 밖 용두돈대가 돋보인다. 그 왼쪽엔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가 프랑스군을 무찌른 정족산성이 또렷하다. |
| ⓒ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
그때 미국 눈길에 가닿은 나라가 조선이다.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명분이다. 1866년 대동강을 거슬러 오르며 환대하는 평양 백성들을 겁박, 약탈했다. 장마가 썰물처럼 빠지자 좌초되어 불에 타 해체되어 사라져버렸다. 흔적도 없는 배를 핑계 삼아 5년 후 개국을 강압한다. 함포를 쏴 겁박하면 일본처럼 문호를 열 것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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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미양요 광성보의 '손돌 돈대'로 추정되는 곳에서 최후를 맞이한 조선군의 모습. 결사 항전의 백병전을 벌인 흔적이 역력하다. 미군 사진이 기록화로 남았다. |
|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덕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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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포진 포대 덕포진의 '가' 포대 모습. 토성을 쌓고 염하수로 쪽을 향해 포문을 둔 모습이다. 이 포대는 해협의 초진진과 덕진진 사이를 겨냥하고 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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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돌목 덕포진 돈대 터에서 바라 본 강화의 광성보와 손돌목. 뾰족하게 튀어 나온 곳이 용두 돈대. 왼쪽 산 위에 어렴풋이 둥근 손돌 돈대가 보인다. 돈대 터에 사공 손돌의 무덤이 있다. |
| ⓒ 이영천 |
폭발하는 초지진
거대한 기함 5척이 좁은 손돌목을 항행하기는 불가능했다. 미 해병대가 빠른 함선 2척에 나눠타고 신미년 6월 1일 광성보 부근에서 함포사격을 가하다. 선제적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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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지진(내부) 3각형의 좁은 초지진 내부. 바다로 툭 튀어 나온 구릉에 쌓은 돈대다. 당시 함포 공격에 화약이 폭발하여 초토화 한다. 바다 위로 초지대교가 지난다. |
| ⓒ 이영천 |
포격이 멎고, 해안가에 장대에 꽂아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쌍방 간 수십 차례 글이 오갔으나 입장 차가 뚜렷하다. 6월 10일이다. 최후통첩이 있었고, 미군의 공격이 어김없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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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지진 지금은 사방이 메워져 육지가 되었지만, 당시엔 바다로 외따로 툭 튀어 나온 돈대였다. 사방이 온통 펄이었다. |
| ⓒ 이영천 |
무주공산 덕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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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고비와 덕진 돈대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 바다 관문을 지키기에 외국 선박은 통과할 수 없다)라고 새겨진 경고비. 그 뒤로 4각의 덕진 돈대가 보인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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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진 돈대의 미군 신미양요 당시 덕진 돈대를 점령한 미 해병대. 4각의 돈대가 지금 모습과 똑 같다. 미군 사진이 기록화로 남았다. |
|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광성보, 무능한 나라의 용맹한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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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성 돈대 광성보의 관문 바로 옆에 있는 돈대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의 집중 포격이 이뤄진 곳이다. 관문 옆 숲길로 가면 무명 용사들을 모신 순절묘단과 어재연 등을 기리는 쌍충비각이 있고, 그 위 산정에 둥그런 손돌 돈대가 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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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돌 돈대 둥근 손돌 돈대의 포문을 통해 바라 본 덕포 돈대와 손돌목이다. 이곳 손돌 돈대에서 신민양요 당시 가장 격렬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손돌목 물살이 쉐~ 소리를 내며 급하게 흐른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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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두 돈대 광성보의 최첨두 돈대로 손돌목 바다로 삐죽 튀어 나와 있다. 손돌목을 흐르는, 물거품 이는 하얀 물살이 보인다. |
| ⓒ 이영천 |
미·중은 지금 세계 최강을 두고 쟁투 중이다. 150여 년 전이 새삼스럽다. 염하수로를 따라 성벽을 쌓은 강화에서, 왕조의 졸렬함을 보았다면 지나친 자기비하인가? 세계사 흐름은 물론 문을 걸어 잠근 옹고집을 탓한들 역사를 되돌릴 순 없다. 광성보 피의 외침이 굽이치는 손돌목 물 울음소리에 실려 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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