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이 나무상자의 정체

이경호 2025. 7.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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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경운동연합, 300여개 둥지상자 설치... 새와 하늘다람쥐 생명 지킨다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둥지상자에 번식한 곤줄박이모습
ⓒ 이경호
오늘도 대전의 도시 공원과 하천가를 걷다 보면, 나무 사이에 조용히 걸린 작은 나무 상자들이 눈에 띈다. 이른바 '둥지상자'. 얼핏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 상자들이 품고 있는 의미는 깊다. 단순한 조류 보호를 넘어, 인간 중심의 도시에서 생명 다양성의 가치와 공존의 철학을 담고 있다.

봄이면 새들은 번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둥지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와 무분별한 산림 훼손은 새들의 보금자리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특히 둥지를 제공해주는 딱다구리의 개체수 감소는 둥지를 지을 공간을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만들었다. 이런 결과는 새들이 제한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한 마리의 새가 번식에 성공하기 위해 평균 4~5번의 둥지 사수 또는 쟁탈전을 치른다고 말한다. 이 비극적인 풍경은 비단 새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무 구멍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하늘다람쥐와 같은 야행성 포유류 역시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체 수 감소의 문제를 넘어선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도구화했던 우리의 태도가 불러온 결과이자, 도시 생태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 신호다. 효율성과 생산성, 인간의 편의 라는 미명 아래 자연을 배척해왔던 결과이다. 우리는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질문, 즉 우리는 자연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외면해 왔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이런 본질을 개선하기 위해 수 년간 둥지상자 설치에 힘써왔다. 올해 역시 대전지역 3대 하천과 공원, 둘레길에 70여 개를 설치 했고, 약 300개의 둥지상자를 설치할 계획이다. 설치된 둥지상자에는 이미 조용히 생명을 품고 있다. 이 작은 나무 상자는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동고비, 흰눈썹황금새 등 다양한 텃새들에게 안전한 산란과 육아 공간을 제공한다. 둥지 입구를 진흙으로 좁혀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동고비, 낙엽과 이끼로 견고한 둥지를 짓는 곤줄박이 등 각기 다른 종들이 둥지상자 안에서 자신들만의 번식 방식을 이어간다.

보금자리이자 생태교육 현장이기도
 둥지상자를 조립하는 습지학교 아이들
ⓒ 이경호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둥지상자가 단순히 동물을 위한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생태 교육과 시민 참여의 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월평공원에서는 어린이 습지학교 참가자들이 직접 둥지상자를 조립하고 그림과 소망을 담아냈다. 아이들의 작은 손길이 더해진 둥지상자는 미래 세대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 된다. 시민과 기업, 어린이가 함께하는 이 활동은 생태계 보호가 특정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실천 할 수 있다는 책임감을 준다.
둥지상자의 가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의 서식과 번식 사례가 확인되면서, 이 작은 상자는 멸종 위기종 보전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도시 한복판에서 멸종 위기종의 삶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경이로운 동시에, 우리가 자연과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도시는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효율성과 경제적 이득만을 추구하며 자연을 배제하는 것이 진정한 발전도 아니다.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갈 때 비로소 풍요로워지는 것이며 도시의 진정한 발전의 모습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2년 둥지상자에서 번식하고 나온 하늘다람쥐의 모습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은 둥지상자 설치를 넘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번식 성과를 확인하고 있다. 이후 시민 참여를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현장에서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직접 확인한다면, 이 상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가 결코 작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둥지상자 속에서 울려 퍼지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조용한 하늘다람쥐의 움직임은 도시 속 생명의 희망을 전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 도시는 단순히 고층 빌딩과 편리한 인프라로만 채워진 곳이 아니다.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 그리하여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철학이 스며든 도시여야 한다. 둥지상자, 이 작은 존재는 오늘도 우리에게 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이 길을 함께 걸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둥지상자에 알을 낳은 박새
ⓒ 둥지상자
 월평공원에 둥지를 달고 있는 모습
ⓒ 이경호
 갈마공원에 둥지를 다는 아이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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