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유족 수당이 논란거리? 전북도가 아니라 보훈부가 문제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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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읍시 구민사 경내에 있는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상 |
| ⓒ 박용규 |
정읍시는 2019년 12월 19일 제정한 '동학농민혁명참여자 유족 수당 지원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정읍시에 거주하는 동학혁명 유족에게 월 1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전라북도는 지난해 9월 27일에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도지사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유족에게 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제5조)는 근거 규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전북도에 거주하는 유족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이 지금 추진되고 있다.
일본의 경제적 침략은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이 체결된 1876년에 개시됐지만, 군사적·정치적 침략은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이 동학혁명으로 인해 동요한 1894년에 시작됐다. 이 침략에 가장 먼저 맞선 것은 조선 관군이 아니라 동학군이다. 동학군은 항일전쟁의 첫 총성을 울린 항일 군대였다.
동학군과 전봉준이 일본군과 한창 대결할 당시인 1894년 하반기에 혁명군의 병력은 약 20만 명이었다. 항일투쟁사에서 이만한 병력을 갖고 일제에 맞선 군대는 없었다. 동학군은 가장 강력한 항일 군대였다.
애초에 동학군은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시작된 청나라의 내정간섭하에서 반외세·반봉건을 외치며 궐기했다. 청나라의 간섭과 조선왕조의 봉건지배를 반대하며 1894년에 궐기한 동학군을 진압하겠다면서 무단 침입한 것이 일본군이다.
이로 인해 청나라군은 뒤로 빠지고 일본군이 동학군을 상대하게 됐다. 이렇게 시작된 동학군과 일본의 대결은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양국 군사투쟁이다. 이는 항일투쟁의 출발점에 동학군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일본군은 동학군을 상대하기 전에 청나라군부터 제압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청일전쟁은 '오픈 게임'이 되고, 동학군-일본군 대결이 '메인 게임'이 됐다. 1895년 초반까지 계속된 이 대결에서 동학군이 무너지면서 조선의 자주독립 상실이 가시권에 들어갔다.
이처럼 동학혁명은 근현대 항일투쟁의 첫 단추다. 대한민국은 이 첫 단추를 국가보훈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보훈 정책이 엉터리가 된 결정적 원인 중 하나다.
1년 차이인데... 동학혁명은 왜 보훈 대상이 아닌가?
독립운동 평가에 대한 한국 국가보훈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갑오년에 개시된 동학혁명은 보훈하지 않고 갑오년 바로 다음인 을미년의 의병운동부터 보훈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894년에 일본군의 무단 침입과 경복궁 점령에 맞선 동학군의 항쟁은 항일투쟁으로 인정하지 않고, 1895년에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 및 단발령 등에 맞선 의병들의 항쟁부터 항일투쟁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가보훈부가 '1995년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이강년 의병장은 을미의병 출신이다. 보훈부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 홈페이지는 이강년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한 이유를 설명하는 '공적 개요' 부분에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라고 기술한다. 이강년처럼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을미의병들은 구연영·김도현·신돌석·어취선·윤정학 등 한둘이 아니다.
을미의병이 싸운 대상은 동학군이 상대한 바로 그 일본군이다. 동학군이 쫓아내지 못한 군대를 을미의병이 그 직후에 상대했다. 똑같은 군대를 상대한 똑같은 항일운동인 데다가 규모는 동학군이 훨씬 컸는데도 동학운동을 항일운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동학혁명에 대한 보훈을 반대하는 논리들은 이 운동의 항일투쟁 성격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감정적이거나 말초적으로 대응하는 논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일례로, 동학군을 보훈하면 임진왜란 참전군인도 보훈해야 한다며 동학군 보훈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똑같은 반일사건이기는 하지만, 임진왜란과 19세기 항일투쟁은 역사적 맥락을 달리한다. 후자는 미증유의 인간착취 시스템인 제국주의에 대한 대항이다. 임진왜란과 동학혁명을 동일 선상에 놓고 그런 비판을 할 수는 없다.
동학군을 보훈하면 동학군 진압에 참여한 안중근 의사 같은 인물이 역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회고록인 <안응칠 역사>에서 확인되듯이, 안중근은 아버지 안태훈과 함께 동학혁명을 진압하는 민병대 활동에 참여했다. 김구 회고록인 <백범일지>에서 나타나듯이 안중근 부자의 민병대는 김구가 이끄는 동학군과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다. 안중근 쪽의 휴전 제안을 계기로 두 집안은 그 뒤 도리어 가까워졌다.
안중근은 제국주의와의 싸움으로 인해서는 칭송을 받아야 하고, 동학군과의 싸움으로 인해서는 비판을 받을 부분이 있다. 동학혁명을 보훈하는 것은 안중근을 더 정확히 알게 해줄 뿐, 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동학군 진압에 참여했다고 해서, 일제 거두를 응징한 안중근의 의거가 퇴색하지는 않는다. 항일운동이 먼저 있었고 그 뒤 동학군 진압이 있었다면 안중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항일투쟁과 함께 생을 마감했으므로 안중근의 독립운동가 지위가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
동학군 보훈에 반대하는 또 다른 논리는 동학혁명 참가자들이 친일파로 변절했다는 주장이다. 동학군이 되어 이천·공주 등에서 전투를 벌인 이용구는 대표적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핵심 지도자가 됐다. 조선시대판 뉴라이트인 그는 동학교도들로 조직된 진보회를 이끌고 일진회와 통합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박희도·정춘수·최린은 친일파로 전향했다. 이들 이외의 3·1운동 참여자들 중에도 전향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가 3·1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는다. 동학혁명도 마찬가지다. 이용구 등의 변절이 이 운동의 반외세·반봉건 성격을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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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보훈부 청사 |
| ⓒ 국가보훈부 |
동학혁명이 동학난으로 폄하된 것은 그것이 실패한 혁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기득권층의 폄하 때문이다. 일본군과 조선 관군뿐 아니라 조선 지주층까지 동학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동학혁명은 한일 양국 기득권층의 연합공격을 받았다. 동학군과 싸운 그들의 시각이 1980년대까지 한국인들의 인식을 지배했다.
역사문제연구소가 1990년 6월 30일 개최한 동학운동 학술대회를 연다고 예고한 1990년 6월 28일 자 <한겨레> 9면 기사에 "구한말과 일제 시기를 통해 봉건지배층, 조선인·일인 학자들에 의해 '동적의 난', '동학비란', '동학변란', '동학란' 등으로 불린 이 사건"이란 구절이 나온다. 어떤 세력이 동학혁명을 동학난으로 폄하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학혁명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은 민주화가 진전되던 1990년대다. 1993년 3월 7일자 <동아일보> 기사 '동학혁명 재평가 작업 활발'은 "내년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꼭 1백년이 되는 해"라며 "우리 역사에 있어 봉건시대를 마감하는 한 획을 그었던 대사건이면서도 굴절된 역사 속에서 제대로 그 자리매김이 되지 못했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똑같은 항일투쟁인데도 동학혁명은 보훈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 직후의 을미의병부터 보훈의 대상이 되는 데는 동학혁명에 대한 1990년대 이전의 위와 같은 평가절하 분위기도 한몫했다. 동학혁명을 하층민의 난동으로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이 운동의 항일투쟁 성격을 가리는 작용을 했다고 평할 수 있다.
지금 논란이 돼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동학혁명 유족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정읍시나 전라북도의 보훈 정책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보훈부가 동학운동을 독립운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일이다. 독립운동 보훈 사업을 지자체가 지방 세금으로 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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