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난 교사인데 "얼굴 궁금했어요" 카톡... 왜 이래야 하나
이 글은 2025년 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진달래(가명)씨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진달래(가명) 기자]

하지만 학교라는 조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학교마다 다른 분위기, 다른 문화, 다른 규칙은 매번 발령받을 때마다 기대감과 함께 불안감을 안겨줬다. 그럼에도 나는 늘 믿었다. '아이들을 향한 진심이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첫 발령지에서 맞이한 현실은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새 학기 첫날, 학교에서는 담임 교사들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학부모들에게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A4용지 한 장 가득, 내 휴대전화 번호, 출신 대학, 나이, 교육 경력, 교육관, 그리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증명사진까지 첨부해야 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이, 교사들의 민감한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공개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요즘 어떤 공공기관도 직원들의 얼굴과 개인 번호를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데, 왜 교사는 예외가 돼야 하는가.
하지만 그곳의 문화라면, 나 혼자 '불합리하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서류를 제출했다. 빽빽이 적힌 나의 모든 정보와 함께. 그 종이는 교장선생님의 검토를 거쳐 수정과 보완이 이뤄졌고, 첫날, 전 학부모에게 배포됐다. 그 순간, 나는 '나'라는 존재가 학교의 자산도, 사회의 구성원도 아닌, 학부모들의 공공재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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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카오톡. |
| ⓒ 오마이뉴스 |
"선생님, 지금 서점인데요. 어떤 문제집 사야 하나요?"
"내일 준비물 가져오라고요? 왜 며칠 전부터 미리 공지 안 했나요?"
어떤 학부모는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왔고, 어떤 학부모는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 내 카카오톡을 추가하려 했다. 아이들 역시 별다른 경계 없이 아무 때나 게임 초대를 보내왔다.
나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었다. 내 시간, 내 삶, 내 감정은 모두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 일과를 마친 뒤에도, 휴대폰은 결코 조용할 틈이 없었다. 진동 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경험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게다가 교사로서의 전문성보다 '얼굴'과 '나이'를 더 궁금해하고 평가하는 무례한 시선도 견뎌야 했다.
"선생님은 너무 어려 보여서 애들 휘어잡을 수 있겠어요?"
"얼굴이 궁금했어요."
"카카오톡 프로필 보니 남자 친구 있으신가 봐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웃으며 넘겼지만, 내 안에서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쌓여만 갔다. 지쳐가는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이러한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주변의 무심함이었다.
"신규 교사는 원래 그래야지."
"학부모와 친하게 지내야 해."
이런 말들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고, 결국 내 감정은 곪아 터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같은 처지의 동료 교사들 덕분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털어놓고, 서로를 다독이며 우리는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이 고통을 나누는 동료들조차 없다면, 나는 과연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2년을 그렇게 보낸 후, 나는 결혼을 계기로 결혼을 핑계로 교단을 떠났다. 퇴직을 결정하면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겪었던 것은 단순한 업무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내어줘야만 했던 감정노동, 그리고 그것을 당연히 여긴 사회의 무관심이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우리가 먼저 바꿔야 한다.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강화돼야 한다. 교사, 공무원, 서비스업 종사자 등 감정노동 직군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와 비업무 시간 사적 연락 금지 규정이 필요하다.
시민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친절을 받을 때, 그것이 '서비스'가 아니라 '인간적인 배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감정노동자의 얼굴 뒤에 숨은 노력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직 문화가 변화해야 한다. 기관과 학교는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사생활 침해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는 가르치는 전문가이지, 언제든 호출 가능한 심부름꾼도 학부모의 소소한 고민까지 들어주는 사람도 아니다.
감정노동자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
나는 이 글을 쓰며, 지난 시간의 아픔을 다시 꺼내어 본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러나 꼭 해야만 했다. 내가 겪은 고통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누군가가 친절을 강요받으며 무너지는 일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감정노동자들이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지금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비슷한 감정노동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교사뿐만 아니라, 콜센터, 상담사, 간호사, 서비스직 종사자들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감정은 무료'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퍼져 있다. 하지만 감정은, 무료가 아니다. 누군가의 친절 뒤에는 수많은 인내와 자기희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감정노동자로 살아낸 시간들은 내게 분명 상처였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 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진심으로, 변화를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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