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비범한 용기를 가졌던.... 5.18투사 김성애의 삶

고창남 2025. 7. 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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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광주 민주항쟁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 출신 여성 투사, 김성애씨를 회고하며

[고창남 기자]

▲ 출판기념회 <그리운 5.18투사 김성애·로사리아> 출판기념회
ⓒ 고창남
지난 6월 27일, 서울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는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그리운 5·18투사 김성애·로사리아>라는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 자리였다. 책은 31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 김성애씨의 삶을 임상택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부이사장이 전용호 작가에게 의뢰하여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평전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영상으로 회고하는 김성애' 상영으로 시작해, 가족 인사, 축사, 회고사, 출판 경위 보고, 축가, 식사와 친교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장영달 전 국회의원 겸 전 우석대 총장, 강창일 전 주일대사(전 국회의원) 겸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와 회원들을 비롯한 오월민주여성회, 민청련 동지회 회원들, 시민사회 활동가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작은 자리였지만, 그녀를 기억하는 작은 목소리들이 울림을 만들었다.

김성애, 혹은 '로사리아'는 5.18 당시 광주 민주항쟁의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 출신 여성 투사다. 호남전기 노동조합 활동, 가톨릭노동청년회(JOC)에서의 활동, 도청 농성장 참여, 이후 서울로 올라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까지.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민주화운동사 속에 거의 남지 않았다.

그는 1994년,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서 남편 임상택 전 부이사장이 운전한 자동차에서 뜻밖의 교통사고로 두 딸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남편 임 전 부이사장은 오랜 세월 그 이름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

"말할 수 없는 고통, 그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남편 임상택씨는 이날 인사말에서 "두 딸과 아내를 한순간에 떠나보낸 그 사고 이후 한 달 넘게 의식 없이 병원에 있었다"며 "아내의 삶이 기록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해서, 지금이라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 임상택 인터뷰 하는 임상택 전 민언련 부이사장
ⓒ 고창남
"이제 살아갈 시간이 5년~10년밖에 안 남아서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제 아내 김성애·로사리아와 제 큰 딸을 제가 운전을 잘못해서 서울로 올라오다가 하늘나라로 보냈어요. 제가 잘 한 게 하나도 없고 잘못한 것밖에 없기 때문에 진작 사과를 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늦어져서 이제야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는 사고 나고 한 달쯤 수원에 있는 병원에서 지냈던 것 같아요. 그 새에 우리 동네 광명 철산리 사람들, 시민단체 사람들이 나서서 천주교 안성 묘지에 매장까지 다 마치고 했는데, 그때는 저와 우리 가족들이 여러분들께 인사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30년을 보내왔어요. 이제라도 하늘에 가 있는 우리 아내에게도 사과의 말씀도 하고 또 여러분들께도 사과도 하고 같이 식사도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영달 전 국회의원 겸 전 우석대 총장은 회고사에서 그때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 사고가 났을 때, 저는 운전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바로 현장으로 갔다. 그런데 딸과 부인은 안 보이고 임상택 동지는 정신없었더라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한 달쯤 있다가 퇴원해서 마누라가 죽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지경에 있었는데, 오늘까지 임상택 동지가 저 상태로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참 고맙다"라고 말했다.
▲ 강창일 인사말을 하는 강창일 전 주일대사(전 국회의원) 겸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
ⓒ 고창남
강창일 전 주일대사(전 국회의원) 겸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는 "그동안 오랜 동지인 임상택의 일을 깊게 알지 못했다. 저는 민청학련 사건 때 임상택 동지와 순천교도소에서 같이 옥살이 했다. 그 후 유학을 가버려서 김성애 선생의 부군이란 것도 몰랐고 그런 사고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도 받았고 슬픔을 안게도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위대한 광주·호남을 다시 생각하고 이제 광주·호남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많은 일이 남겨져 있다. 오늘 이 자리가 그런 다짐을 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김성애의 유년과 노동 현장 ▲5·18 광주에서의 활동 ▲서울로의 피신과 5·18 진상 알리기 ▲가족과의 삶과 안타까운 사고 등으로 나뉜다. 그 안에는 한 여성의 치열하고 단단했던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

특히 노동자 출신 여성 투사로서, 5.18 투사로서 김성애가 겪은 현실적 고난과 헌신이 생생히 드러난다. 1980년 5월, 그는 공포의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전남도청 안에서 시민군에게 식사를 챙겼고, 이후 변장하여 서울로 올라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수녀원에 몸을 숨긴 채 활동을 이어갔다. 그런 그녀의 세례명이 '로사리아'였기에, 책 제목에도 그 이름이 함께 적혔다. '로사리아'라는 이름은 장미꽃을 의미하는 라틴어 '로사(Rosa)'에서 나온 말로 '존경, 명예'라는 뜻을 갖고 있다.
▲ 참가자들 <그리운 5.18투사 김성애·로사리아>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참가자들
ⓒ 고창남
왜 지금, 김성애인가

5.18민주화운동은 '민중의 항쟁'이라 불리지만, 정작 그 민중의 얼굴 하나하나는 쉽게 사라져왔다. 김성애는 그중 한 명이다. 대학생도, 유명한 지도자도 아니었던 그녀는 광주의 노동자였고, 거리에서 싸우고 병든 동료를 돌보던 정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노동자 출신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지 않았다.

지금 김성애를 말하는 이유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광주의 진실이란, 그 안에 있던 '평범한 이들의 비범한 용기'를 함께 기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도 가능했다.

김성애의 삶은 위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의로웠고, 헌신적이었으며,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다. 조용히 싸우고, 이름 없이 사라졌지만, 이 기록을 통해 이제 다시 역사 속에서 살아나 숨 쉬고 있다.

천사 같은 헌신, '제2의 테레사 수녀'

김성애가 노동운동 하던 때에 처음 만난 전홍준 원장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김성애를 처음 만난 것은 1978년, 광주기독병원 외과 의사로 일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의료보험도 없고 병원에 오기조차 어려웠던 시절, JOC와 호남전기 여성 노동자들을 김성애는 정성껏 챙겨 자주 병원으로 데려왔다. 호남전기 등에서 노조 활동하며 직업병, 영양실조, 피부질환으로 고통받던 동료들의 건강을 돌보던 그녀의 헌신은 깊은 감동을 안겼다.

"김성애가 노동자들을 데리고 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무료로 치료해주었지요. 나중에 그게 너무 심해서 병원이 끝나는 시간인 토요일 오후에 또는 일요일에 데리고 오라고 했지요. 그러면 병원에 제 진찰실 문을 열어서 병실에 남는 약으로 치료했어요. 수십 번 이상 찾아왔죠. 그토록 동료 노동자들을 사랑하는 김성애의 마음이 제 가슴을 울렸죠. 제가 명색이 의사지만, 저는 환자들을 좀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일어나도,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나한테 없구나'라고 느꼈어요."

김성애는 정작 자신의 건강이 나빠졌어도 동료들의 아픔을 먼저 살폈다. 전 원장은 그녀에 대해 "어쩌면 마음이 저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천사 같은 사람"이라 표현했다.

전 원장은 "그녀는 늘 자신의 고통보다 타인의 아픔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이었다. 얼굴 표정에서조차 그런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도 그녀를 '제2의 테레사 수녀'라고 부르고 싶다"라며, "김성애의 삶이 인간적인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생활력이 강하고 책임감 넘쳤던 김성애는 결혼 후에도 공동체 내에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데 앞장섰고, 남편의 지인들까지 정성껏 챙겼다.

김성애가 결혼 후 광명시 철산동에서 생활할 때 함께 있었던 조명자씨는 "성애는 생활력이 강하고 알뜰하고 깔끔했다. 성격이 강직하고 정확하고 빈틈이 없었다. 참 열심히 살았고 무슨 일을 하면 책임감 있게 밀어붙이곤 했다. 그런데 좀 잔정이 많아서 애들한테 학습지 시키는데 우리는 애들 학습지도 안 시키는 걸 보고, '이렇게 애들을 팽개쳐 놔두면 어떡하냐'고 답답해하면서 본인이 학습지를 더 시켜주더라"고 말했다.

"제가 성애한테 굉장히 놀란 게, 한 선배가 남민전으로 9년 살고 나왔어요. 근데 그 선배가 살 데가 없는 거야. 그래서 이 양반이 철산동으로 왔어. 후배들한테 얹혀 살라고. 근데 성애가 그 선배를 받아서 거의 두 달 가까이, 그 15평짜리 조그만 아파트에서 그 선배 수발을 하더라고. 나 같으면 일주일이면 어디 딴 데로 가라고 할 텐데... 그래서 얘가 굉장히 따뜻한 애구나 하는 걸 느꼈죠."

묻힌 민중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기록

<그리운 5.18투사 김성애·로사리아>는 단지 한 여성의 삶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화운동의 공식 서사에서 빠져 있던 '노동자', '여성', '평범한 시민'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남편 임상택 전 민언련 부이사장은 "5.18을 '민중의 항쟁'이라 부르지만, 실제 민중의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김성애는 대학 출신도, 저명한 활동가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기록되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싸우고, 또 살아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 김성애 김성애 평전 <그리운 5.18투사, 김성애·로사리아>의 표지
ⓒ 고창남
책은 단 300부만 인쇄됐다. 많지 않은 수량이지만, "잊히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며 임상택 전 민언련 부이사장은 누군가 이 이야기를 읽고, 그림이나 기록으로 다시 이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성애. 그녀는 더 이상 이름 없는 투사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기록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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