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본'에도 소녀상 설치, 일본의 방해가 어느 정도였냐면...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5. 6. 30. 14: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4년 만에 안착한 독일 본 여성박물관의 소녀상

[김종성 기자]

 지난 29일 독일 본 여성박물관에서 열린 에서 마리아네 피첸 박물관장(왼쪽)과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왼쪽 두번째)가 사진을 찍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제공]
ⓒ 연합뉴스
독일 베를린의 소녀상에 관해서는 "9월 28일까지 존치하라"는 베를린 행정법원의 명령이 지난 4월 16일에 있었다. 이번에는 독일 본에서 새로운 일이 있었다. 현지 시각 28일 오후, 그곳 본 여성박물관(Frauenmuseum Bonn; Bonn Women's Museum)에서 평화의소녀상 제막식이 거행됐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여성박물관인 이곳을 1981년에 건립한 마리아네 피첸(Marianne Pitzen) 관장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우리에게는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몹시 중요한 주제다. 이는 오늘날에도 1천년 전,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존재한다."

"평화는 현재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평화의소녀상은 우리 박물관에 중요한 상징이며 그 이름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청동 매화'를 가리키는 베트남어 '동마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소녀상이 독일에 입국한 것은 2021년 4월이다. 그 뒤 드레스덴 민속박물관과 볼프스부르크 현대미술관에서 각각 4개월간, 쾰른 나치기록박물관에서 3개월간 전시됐다. 나머지 기간에는 창고에 있었다. 그러다가 재독 민간단체인 코리아협의회의 노력에 의해 이달 4일 본여성박물관에 설치되고 이번에 제막식을 갖게 됐다.

일본 정부의 압박, 그럼에도 소녀상은 힘이 세다

본 여성박물관의 이번 결정은 아주 어려운 것이었다. 이 점은 금요일인 지난 27일 있었던 이와야 다케시 외무대신의 기자회견에서도 확인된다. 이와야 대신의 발언에서는 일본 정부가 이 박물관을 얼마나 압박했는지가 드러난다.

기자회견장에서 <산케이신문>의 기자가 "독일 본에 있는 박물관에서 위안부 문제를 상징하는 상(像)이 설치되어 조만간 제막식이 행해질 예정입니다"라며 "일본 정부에서는 철거를 요구하게 되는 것인지 방침을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질문했다. 이와야 대신은 "지적하신 위안부상의 설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나 이제까지의 대처와 양립하지 않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한 뒤 그간의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이제까지도 다양한 관계자들에게 접근해 우리나라의 입장에 관해 설명을 하고 강력한 우려를 전해왔습니다. 독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관계자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요구해 나갈 것입니다."

일본 외무성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강력한 우려"를 전달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방해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대해 박물관장은 "물론 그렇다"고 답했다. 박물관장은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몹시 중요한 주제다", "평화는 현재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인식이 있었기에 일본 정부의 압박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 정부의 공세적 태도와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소녀상은 일본·미국·캐나다·호주·중국·독일·이탈리아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위안부 문제에 담긴 인류 보편의 메시지가 세계 주요 국가에서 공감을 얻고 있음을 반영한다.

일본 정부와 한·일 양국 극우세력은 이 문제를 두 나라 간의 민족분쟁으로 국한시켜 세계 각국이 소녀상 설치를 꺼리게 만들려고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제한적 성과밖에 거두지 못했다. 피첸 관장의 발언에서도 증명되듯이, 소녀상은 여성 인권과 전시성폭력에 관한 인류의 공감대를 배경으로 세계 여러 곳에 안착하고 있다.

소녀상 설치를 수용하는 세계 각국의 주민들은 이를 한국의 문제가 아닌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2013년 7월 30일에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소녀상이 건립된 데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응원이 한몫을 했다. 오스만제국(튀르키예)의 소수민족으로 살았던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집단학살을 경험했다. 이들은 소녀상을 바라보며 소수민족·약소민족인 자신들의 비애를 떠올렸다.

이듬해 5월 30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이 일을 추동한 원동력은 이 도시의 절박성이다. 당시 페어팩스에서는 여성 인신매매가 증가했다. 그곳 카운티 의원들이 기림비 설치에 동의한 것은 인신매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카운티 정부가 이 문제에 관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작년 6월 22일에 소녀상 제막식을 가진 지중해 사르데냐섬의 스틴티노시는 자신들이 소녀상을 왜 설치하는지를 소녀상 비문을 통해 천명했다. 비문은 "리타 림바니아 발레벨라 시장은 스틴티노시를 대표해 한국 여성들 및 모든 전시와 일상의 성폭력 피해여성들에 대한 우정과 연대의 정신으로 평화의소녀상 건립을 환영합니다"라며 "이 동상은 인류의 마음에 말을 걸고 젠더 폭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될 것이며 이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 세계 모든 여성의 자유와 존엄성을 존중하겠다는 다짐을 촉구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세계여성운동이 된 '위안부운동'
 지난해 9월 1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166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소녀상이 한국만의 문제로 비치지 않고 지구적 문제로 인식되는 데는 한국 위안부운동의 문제제기 방식에도 기인한다. 한국 위안부운동은 이 사안을 한·일 간의 식민지배문제로만 국한하지 않고 세계 여성 및 약자 문제, 개인과 국가의 문제, 민중과 국가의 문제 등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노력을 위한 결정적 전환점이 구축된 때는 2011년이다. <인문연구> 2024년 제109호에 실린 이태준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원의 논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탈식민주의담론의 형성과 경합(2011~2020)'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11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아시아 여성의 연대를 통해 2000년 여성국제법정 개최, 각국 의회에서 결의안 채택, 그리고 운동의 역사화를 위한 박물관 설립이 계획되는 등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로써 맞이한 2011년은 평화의소녀상이 세워진 해로, 이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자 시민운동의 성장을 기록한 해였다."

2011년 이후 형성된 뚜렷한 변화는 위안부 의제를 식민지배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여성과 약자의 문제로 보편화시키는 노력이 강화된 현상이다. 위 논문은 "위안부운동은 이전과 다른 차원의 국제여성운동을 준비했다"라며 "전시성폭력 피해여성 및 아동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2012)의 설립"을 일례로 제시한다. 그런 뒤 "2011년 이후는 일본군 위안부운동이 탈식민운동으로 성장하며, 이를 통해 페미니즘 실천까지 추동하는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평한다.

위안부운동이 세계여성운동으로 본격 업그레이드되는 이 시기에 초대형 장애물이 출현했다. 극우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과거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아베 신조 내각의 출범이 그것이다. 2006년부터 1년간 내각을 이끈 아베 신조는 2012년 12월부터 2020년 9월까지 8년간 내각을 이끌면서 한·일 역사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위안부운동이 한 단계 도약하는 시기에 등장한 제2차 아베 내각은 극우세력과 연대해 위안부 문제를 한·일 민족분쟁으로 격하시키고 위안부 피해자와 위안부운동을 모독하는 접근법을 구사했다. 이런 시도는 한때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의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는 반성과 배상 없이 위안부 문제를 적당히 봉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합의는 2016년 한국 촛불혁명의 결과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에 폐기됐다. 2021년 1월 1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이 합의를 되살리기는 했지만(공식적 합의임을 인정), 이는 위안부운동과 소녀상의 전진을 막을 수 없었다.

일본 정부의 방해와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 속에서도 위안부운동과 소녀상은 인류의 보편적 지지를 받으며 세계 각지로 진출하고 있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국가권력의 폭력을 비판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인류가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해외 곳곳의 소녀상들은 웅변하고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