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규모 여성기업가는 한국인, "람보르기니 의미 없다"는 이유
거상 김만덕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이름이 오른 여성 리더입니다.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았지만, 혼자 힘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부를 쌓았고, 이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눈 삶의 가치가 실록에도 남게 된 거죠. 그가 처했던 상황, 문제의식 그리고 걸어왔던 길은 지금과도 통합니다. 유리천장은 아직도 튼튼하니까요. '오늘의 김만덕 이야기'를 매주 전합니다. <편집자말>
[이주연 기자]
자수성가한 미국 여성 부호 5위. 포브스는 지난 6월 이 순위를 발표하며, 그녀의 재산을 61억 달러(한화로 약 8조 3253억 원)로 추정했다. 그녀의 성은 Lee, 이름은 Thai(한국명 이태희, 67세)다. 부모 모두 한국인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사업가다. 타이 리가 CEO로 있는 SHI 인터내셔널은 최적화된 IT 제품 및 서비스를 기업에 제공하는 업체로 보잉과 AT&T(미국 시장점유율 1위 통신사) 등 1만 5000개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다. 매출 규모는 150억 달러(한화로 약 20조 4600억 원)에 달한다.
2015년부터 포브스의 '자수성가한 미국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녀에게 '억만장자가 된 기분'을 묻자 "집을 사고 쇼핑하는 건... 뭔가, 의미가 없다"(애머스트 매거진, 2016년 1월)고 답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람보르기니 모두 "그건 낭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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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 리 SHI 인터내셔널 CEO |
| ⓒ www.shi.com |
그 믿음을 기반으로, 타이 리는 2025년 현재 직원 6000명을 이끌며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내 여성이 소유한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다. 31세이던 1989년, 직원 5명의 망해가는 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을 시작한 것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비약적 성장이다. SHI 관계자는 타이 리에 대해 "함께 일하기에 최고"라며 "수년 동안 배송 일을 해왔는데, 그녀가 와서 테이프 건을 들고 합류하곤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타이 리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루 안에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민첩하게 대응하는 비결은, 타이 리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고 언제 큰 방향 전환을 감수해야 하는지 인식하고 있으며, 결코 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머스트 매거진, 2016년 1월)
그의 멘토 '아버지', 이기홍... "어디에 있든, 인생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겸손한 거물', 타이 리는 2015년 포브스가 자신을 집중 조명하자 "내 이름을 빼달라고 신신당부"했을 정도로 주목 받는 걸 꺼려하는 성격으로 알려졌다. 언론 노출도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 그가 한 해 뒤 애머스트 매거진과 인터뷰에 응한 이유,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녀가 미국 명문 공립대 애머스트를 졸업한 첫 번째 아시아계 여학생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애머스트를 졸업한 첫 번째 한국인이라는 점도 인터뷰 수락 이유로 작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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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홍 전 차관보가 2009년 용산구 자택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경제 외교' 분야에 대해 구술하고 있다. 자녀 소개를 해달라는 말에 이 전 차관보는 '타이 리'에 대해 "옛말에 '자식 자랑하는 바보'라는 말이 있는데, 자식들에 관한 한 주위에도 우리만큼 기가막히게 성공한 사람이 없어요. 우리 둘째 딸이 한국 여자 최초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나왔어요. 지금 1500명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어요. 고객이 IBM, 마이크로소프트 그런 데야. 소프트웨어를 우리 딸한테서 사간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
| ⓒ 한국학중앙연구원 |
'교육의 힘'을 믿게 된 것도, 이기홍 전 차관보가 겪어낸 삶에서 기인한다. 학비조차 낼 수 없었던 가정 형편 속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며 버텼고,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대학 진학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으나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탄약 공장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히로시마가 미국 원자폭탄에 파괴되기 직전 한국으로 송환됐고, 5개 국어를 구사하던 그는 미군 통역사로 발탁됐다. 이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애머스트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고국으로 돌아와 경제 관료로 일했다. 아버지의 인생 역경을 찬찬히 전한 그녀가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로 좁혀진다.
"서양 문화를 접해본 적도 없고,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경제적 수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이기홍)는 교육을 통해 삶을 개선하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어디에 있든, 인생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집중하고 계획하세요." (애머스트 매거진,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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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우먼 인 클라우드(여성 테크 창립자·임원 등의 네트워크)'에서 연설 중인 타이 리. |
| ⓒ 'women in cloud' 유튜브 갈무리 |
사업가가 된 것도 17세에 세운 목표를 실천한 것이었다. 그때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녀가 '겁쟁이였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미국으로 넘어간 그의 영어는 완벽하지 않았고 대학 진학 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리포트를 쓰거나 말하는 것이 필요한 인문학 과목은 완전히 피한 겁쟁이었어요. 그렇지만 성공하고 싶었죠.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이 없어 교수, 의사, 경제학자 등 다른 직업은 모두 (희망 직업) 리스트에서 지워야 했어요. 다른 어떤 일에서도 성공할 거라 상상할 수 없어서, 결국 사업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애머스트 매거진, 2016년 1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철저히 아웃사이더였다는 17살의 타이 리는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했고, 그 결과 사업가를 직업으로 택했으며, 이를 위해 10년 단위 목표를 설계했다고 한다.
"100세까지 살 거라 가정하고 각 10년에 대한 템플릿을 작성했어요. 20대는 기업가 정신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를 준비 시키는 기간이었습니다. 30대에는 일에 극도로 집중하고, 40대에는 아이를 가지려고 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여성 테크 창립자·임원 등의 네트워크 '우먼인클라우드' 연설 중,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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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 리가 운영중인 SHI는 미국 내 여성이 운영하는 기업 중 최대 규모의 회사다. 그녀는 6000명의 직원을 이끌고 있다. |
| ⓒ SHI홈페이지 갈무리 |
"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운도 좋았고 잘 준비했을 뿐이죠.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도리어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방향성 있는 에너지, 집중력, 노력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결과) 그 힘은 매우 강력해질 수 있었습니다." (애머스트 매거진, 2016년 1월)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그는 40년 전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21살의 저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덜 신경 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살아보니)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이걸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조금 더 행복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21살의 저는 제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믿음직한 사람 그리고 옹호자'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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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브스는 2025년 '자수성가한 여성 부호' 5위로 타이 리를 선정했다. |
| ⓒ Forb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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