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 MBC 앵커 "시청자의 편인 앵커로 기억되고 싶다"

이영광 2025. 6. 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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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조현용 MBC <뉴스데스크> 앵커

[이영광 기자]

 조현용 MBC <뉴스데스크> 앵커
ⓒ 조현용 제공
지난해 5월 MBC는 자사 유튜브 콘텐츠인 <소비더머니> 진행하던 조현용 기자와 작사가로도 활약하는 김수지 아나운서로 <뉴스데스크> 앵커를 교체했다. 당시 윤석열 정권이 MBC를 흔들 때라, 새로 앵커 자리에 오른 이들도 얼마 못 가 교체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으로 MBC 사장 교체에 제동이 걸렸고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벌어지며 MBC 뉴스가 신뢰도는 물론 시청률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특히 내란 사태를 지나며 조현용 앵커는 시청자들의 속을 뻥 뚫어주는 클로징 멘트로 화제가 됐다.

그간의 <뉴스데스크> 진행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25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조 앵커를 만났다. 다음은 조 앵커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뉴스데스크> 앵커 맡은 지 1년이 지났는데 어때요?

"일단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모르겠어요. 일이 계속 많았잖아요. 시작할 때 목표한 게 있었거든요. 세속적인 목표이긴 하지만 저희 시청률이 맨날 2~3등 했어요. 물론 신뢰도는 1등이었지만요. 그래서 시청률 1등 하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 1년 전에도 시청률 잘 나오지 않았나요?

"시청률이 잘 나오긴 했지만 1등은 아니었거든요. 1등을 못 한 게 한 30년 정도 됐대요. 그래서 시작할 때 저 있을 때 꼭 1등 하면 좋겠다는 게 있었죠. 근데 1등 해서 좋고 유지가 되고 있어서 그것도 좋죠."

- 그러면 누구에게 엄청 고맙겠네요(웃음)?

"윤석열 전 대통령이요(웃음)? 근데 내란 하기 전에 가을부터 1등이 됐어요. 그래서 '1등 하고 잘리겠구나.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 22대 총선 개표 방송 끝나고 제안받은 거잖아요. 당시에 윤석열 정부였고, 정부가 MBC 사장 내보내려고 하던 상황이라 1년 넘길 거라 생각 못 했을 것 같은데.

"다들 빠르면 8월, 늦으면 10월에 잘릴 거라고 생각 다들 얘기해서 (앵커 맡을 때)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왜냐하면 미국 연수 가려고 했는데 그거 포기하고 앵커를 하는 거였거든요. 주변에 아끼는 사람들이 '그냥 미국 연수 가라. 중간에 잘리면 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라고 했거든요. 이렇게 할 줄 몰랐죠. 저도 마음속으로는 추석 전에 잘리는지 아님 추석 뒤에 잘리는지가 궁금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앵커에서만 잘리는 게 아니라 징계받고 해고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했었으니까 마음의 각오를 하고 한 거였어요. 근데 사실 앞에서 싸우자는 게 아니라 미국 가야해서 못 하겠다고 하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3개월이든 5개월이든 최선을 다해서 하고 날아가자는 생각이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 앵커 하기 전후로 달라진 게 뭘까요?

"전후로 달라진 게, 일단 주말에 쉰다는 거죠. 유튜브 할 때 주말에 못 쉬었거든요. 주말에 하루는 꼭 일해야 했죠. 그리고 되게 조심하게 되죠. 또 예전에는 관심 있는 뉴스 위주로 많이 봤었는데 지금은 다 봐야 되죠. 예전에는 콘텐츠를 만들면 그걸 보는 사람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MBC 뉴스 시청자가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많이 생각하게 됐죠."

- 유튜브에 댓글도 올라오잖아요. 보나요?

"당연히 진행할 때는 못 보고 중간에 김수지 앵커와 바꾸잖아요. 그땐 봐요. 아무래도 제가 유튜버 출신이니까요(웃음). 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시청자이기 때문에 반응 보죠."

- 뉴스 할 때 댓글 보면 반영이 되나요?

"'사람들이 이 꼭지가 나갔을 때 이런 반응을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다음 날이라도 아이템 선정하고 멘트 쓸 때 좀 다르게 하게 되고, 비판하는 기사가 나갈 때 비판 받는 쪽에서 와서 악플 엄청 달 때 있거든요. 그러면 '아 이거는 긁히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응을 보고 다음 날이라도 반영하려고 해죠."

"계엄의 밤, 잡혀간다고 생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앞에 등장한 무장한 계엄군들.
ⓒ 권우성
- 김수지 앵커와의 호흡은 어때요?

"환상의 호흡이라고 볼 수 있고 되게 말을 잘 들어줘요. 또 같이 대화를 많이 하고요. 수지씨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만 보통 사람의 감수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놓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수지 씨는 작사가잖아요. 그래서 문장 같은 거에 대한 느낌이나 어감이 어떤지 묻고 피드백 받을 수 있어서 되게 좋아요."

- 비상계엄 이후 국회에서 탄핵 2차 표결까지 <뉴스데스크>가 2시간 정도 했잖아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보도국에 있는 사람들 다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힘들다고 하기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걸(방송) 보고 있잖아요. 사회가 과거 독재 시대로 돌아가느냐는 심각한 상황인데 저 개인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솔직히 힘들었죠."

-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했을 때 어땠어요?

"그날 밤에 잡혀간다고 생각했죠. 계엄 소식 보고 가족들과 인사 후 회사로 차 타고 다시 들어오는데 이건 회사에서 징계받고 앵커 그만두는 문제가 아니라 잡혀간다는 생각에 착잡하더라고요. 근데 이걸 안 할 수는 없잖아요."

- 회사 올 때 계엄군이 와있을 걸로 생각했을 것 같거든요.

"생각도 했었고 물어보기도 했었어요. 고양시 쪽 부대에서는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그래서 차에 기름 얼마 있나도 보고 다 확인하고 왔죠.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착잡했죠."

-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 되고는 그래도 안심이 됐겠네요?

"처음에 계엄하고 나서 놀랐는데 아무래도 이게 되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여의도에 시민들 쫙 나와 계시고 정치인들도 메시지 내는 거 봤을 때 이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 저는 계엄 뉴스 보고 계엄과 계엄령이 다른 건가 했어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너무 가볍게 던지니까요. 그리고 국회에서 해제 결의하면 되니 금방 끝나겠다고 생각했어요, 군데 국회 봉쇄됐다는 뉴스가 뜨니까 무섭더라고요.

"법에는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총 들고 나온 걸 보면 그거 다 무시할 사람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조마조마했죠. 실시간으로 상황 지켜보다 한숨도 못 자고 아침까지 있었죠. 아침까지 지켜보다가 안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고요. 그 다음부터는 '뉴스 어떻게 어떻게 전달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찼죠."

- 어떻게 준비한 거예요? 탄핵 가결까지 한 열흘이었잖아요.

"그때는 아예 밖에 나가지도 당연히 못 하고 밥도 다 안에서 먹었어요. 근데 리더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보도국의 수장이 보도국장이잖아요. 보도국장의 판단력이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같이 가면 되겠구나 했죠. 어떻게 준비했다고 할 수 없이 그냥 하루 종일 돌아가고 주말에도 계속 나오고 밤늦게까지 하고 맨날 특보하고 아침에도 뉴스 들어갔어요.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은 거기 때문에 한 15년 이상 일해 왔던 경험이 다 쏟아졌어요. 다들 그랬던 것 같아요."

"클로징멘트, 12월 3일부터 한동안은 모든 노력과 마음을 다 해 썼다"

- 지난해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사태가 나고 클로징 멘트가 화제였잖아요. 부담이 있었을 것 같은데...

"부담이 있었고요. 당연히 엄청 위협 협박도 많았는데 말씀드렸다시피 보도국장 비롯한 주요 포스트에 있는 사람들의 판단을 믿었고 국장의 판단이 순간 순간 다 맞아 왔었거든요. 근데 사실 제일 힘든 건 내부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때문이었어요. 가령 '윤석열을 피의자라고 해도 되냐'나 '내란이라고 하는 건 너무 센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고 기계적인 균형을 맞춰야 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게 힘들었어요. 근데 저에게 이 일을 맡긴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처음에 사장이 '너도 너의 생각을 말해보면 어떠냐'고 클로징 멘트를 제안했었어요. 사장이 회사에서 저에게 맡긴 이유가 있을 텐데 제 경험이나 느끼는 감정를 잘 정제해서 전달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는 거 자체는 별로 문제없었어요."

- 화제가 되니까 시청자들은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도 부담이지 않았을까 해요.

"그건 부담이 안 됐고요. 사실 저는 유튜브 했던 사람이잖아요. 욕먹거나 칭찬받는 게 부담이 아니라, 제가 생각했을 때 제대로 된 얘기를 하느냐에 대한 부담이 되게 컸어요. 또 이 판단이 사람들의 감정과 맞느냐가 되게 부담이 컸고요.

그래서 나눴어요. 느끼는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과거 80년 전후로 해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 기사들, 책들 많이 찾아봤고 과거에 기자 선배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또 정치인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었고 시민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찾아봤고요. 현재는 상황을 제대로 봐야 되는데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그 반응들이 어떤지 물어보고 듣고 또 윤석열은 뭐 하고 있는지도 취재하고 동시에 정치권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취재하고 현재 시청자들의 감정을 살피는 데 또 주력하는 등 세 가지를 신경 쓴 거예요."

- 클로징 멘트는 위에서 간섭 안 하고 온전히 두 앵커에게 맡긴 것 같아요.

"앵커 멘트나 클로징 멘트도 전혀 터치하지 않습니다. 의견을 주실 때는 있지만 최대한 그 의견도 저에게 전달하지 않는 편이고 특히 윗사람들은 맡겨두는 거죠. 그래서 더 고민되기도 해요. 그래서 이게 맞는지 혹은 위에서 뭐라고 안 하는지 같은 고민을 하는데 사실 그거에 대해서 제일 고민 많이 하는 사람은 저일 테니까요."

- 클로징 멘트 중에 스스로 봐도 잘했다고 느끼는 게 있나요?

"제가 하면서도 울컥한 적도 있고 해서, 그런 게 기억에 남는데... 12월 3일부터 한동안은 모든 노력과 마음을 다 다해서 썼던 것 같고요. 그 시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해요. 근데 어떤 선배는 '2024년 12월 3일 이후 클로징 멘트보다 그전에 멘트들이 평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기는 그게 더 좋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때는 날아갈 거로 생각했잖아요. 그걸 계속 얘기한 게 그게 더 기억에 남는다고 한 선배도 있었어요."

- 3일 있었던 개표 방송 진행했잖아요. 아마 4번째일 겉 같아요. 앵커 하기 전과 다르던가요?

"뉴스 진행을 더 많이 해봤으니까 기술적으로는 좀 더 자연스러운 게 있었겠죠. 근데 제일 큰 차이는 뭐냐면, 개표 방송이 저희 앵커 시작하고 한 1년 정도 지나서 한 거거든요. 1년 정도 저와 시청자들 사이에 일종의 교감이 생겼을 거 아니에요. 그게 제일 컸던 것 같고요. 근데 한 해 한 해가 지나가니까 이게 힘들긴 하죠."

- MBC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니까 그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거에 대한 생각이 있지만 내란 사태에 대해서는 고민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서 단호한 입장이고요. 당연히 뭐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 있죠. 전 세계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들을 부분 듣고 또 아닌 부분은 안 듣죠. 의도와 다르게 전달돼서 욕을 먹는 건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제가 더 명료하게 전달 못 한 탓도 있다고 생각해서 개선할 일이죠."

- 어떤 앵커로 기억이 되고 싶어요?

"사실은 시작하기 전부터 끝날 날을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마지막 인사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지금도 그렇게 차이는 없고 어차피 지나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래도 바라는 게 있다면 '저 사람은 시청자들의 편이었다'라고 기억에 남고 싶죠. 뉴스 할 때도 사실 경제부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내 리포트를 보는 사람들이 이번 주에 커피값 한 잔이라도 세이브하게 할 수 있을까 같은 거 생각했었거든요. 유튜브 할 때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그러나 뉴스는 여러 가지 영역을 하는 거니까 '저 사람은 MBC 사장의 편도 아니고 대통령의 편도 아니고 시청자들의 편이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 목표가 있을까요?

"일단 처음 목표는 이루어졌고 중간에 제가 1등을 하고 났으니까 하고 나서 목표가 또 생겼어요. 10%를 넘고 싶다는 거죠. 시청률 10%는 잘 안 넘거든요. 근데 그거 얘기한 게 계엄 전 주였어요. 계엄 주에 넘었죠(웃음). 저는 더 다양한 뉴스 많이 하고 싶어요, 다양하다는 게 좀 더 넓은 영역의 뉴스들을 다 전달하는 거죠. 외신들 보면 되게 깊이 있게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 하고 싶은데 사실 지금의 목표는 그냥 평화로운 뉴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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