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대학살, 사냥꾼이 밝히는 뉴트리아 박멸 정책의 실체
김성호 평론가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이 고르고 골라 선보인 27편의 작품 가운데, '씨네만세' 선정 작품상으로 꼽을 단 한 작품을 놓고 오래 고심한 영화가 <박멸의 공존>이다. 말 그대로 박멸하고자 했으나 공존할 밖에 없게 된, 그럼에도 불가능해진 박멸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인간과 유해조수의 이야기로, 눈을 떼지 못하고 보도록 하는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다.
'박멸의 공존'이란 제목에서 박멸의 주체는 정부요, 객체는 뉴트리아다. 환경부가 멸종대상 유해조수로 지정한 이래 정부가 뉴트리아와 이어온 어처구니없는 싸움의 진상을 이 다큐 한 편이 낱낱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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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멸의 공존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무튼 뉴트리아는 약 30여 년 동안 한국 자연에서 발붙이고 살아왔다. 뉴트리아가 벼나 배추 같은 농작물을 갉아먹는 통에 농부들 사이에선 원성이 자자했으므로, 유해조수 지정은 시간문제였다. 여기에 더해 민물고기까지 사냥해 토종생물의 씨를 말리는 외래종이란 편견은 뉴트리아에 대한 적개심에 불을 붙였다. 한국에 들어와 자리 잡은 수많은 외래종 가운데서 뉴트리아만큼 커다란 적개심을 받은 건 황소개구리와 배스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도 어쩌랴. 뉴트리아는 30여 년을 버텼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한 세대가 지났다. 과연 그를 더 외래종이라 불러도 좋을까.
그러나 정부는 포기하지 않을 기세다. 11년 전인 2014년부터는 민간에 용역을 주어 포획해 죽여서 사체를 가지고 오면 보상금을 주고 있다. 두당 2만 원, 뉴트리아 사냥을 업으로 삼은 사냥꾼까지 있을 정도다. 지난 10여 년 동안 잡아 죽인 뉴트리아만 4만 마리 가까이 되는 가운데, 사실상 토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완전 박멸이란 목표를 버리지 않은 채, 적어도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한 인간의 개입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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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멸의 공존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영화는 2019년 매일 같이 습지에 덫을 놓고 뉴트리아를 잡아오는 전홍용씨의 모습을 비춘다. 그는 2010년부터 뉴트리아를 10년 넘게 잡아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남의 논을 빌려 배추농사를 하던 그가 뉴트리아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게 출발이었다. 농사를 망치고 분통이 터진 그는 골프채를 들고 밭을 지키며 뉴트리아가 보이는 족족 때려죽였다. 처음 보는 생김에 포털사이트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는 뉴트리아의 정체를 그는 해외 사이트며 도서관 외국 책자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전홍용씨는 온갖 자료를 뒤져 뉴트리아의 생태 특성을 공부하고 약점을 찾아 사냥을 시작했다. 그렇게 전국구에서 제일가는 뉴트리아 포획꾼이 되고, 2014년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조직한 뉴트리아퇴치반 반장으로 임명됐다. 온갖 뉴스에 뉴트리아를 잡아 1억 번 사나이로 소개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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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멸의 공존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처음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뉴트리아를 사냥하는 듯 보였던 전홍용씨다. 영화는 차츰 그의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한 사명감, 유해조수를 그저 지나칠 수 없다는 책임감이 그가 뉴트리아를 사냥하는 이유라는 게 차츰 확인된다. 새끼를 밴 뉴트리아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서 보내는 장면 등이 바깥에선 함부로 재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황을 알도록 한다.
상황은 실제로 그러해서, 감독이 낙동강유역환경청 공무원이니 동물자유연대 활동가와 만나 인터뷰하는 모습을 통해 그 진상이 확인된다. 뉴트리아를 박멸해야 할 종으로 지정한 정부는 정작 박멸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그 생태적 특성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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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여러모로 인상적인 영화다. 뉴트리아 박멸의 첨병으로 십 수 년 간 수만 마리 뉴트리아를 잡아죽인 전홍용씨다. 그러나 일선에서 뉴트리아를 잡아 죽이는 그가 동물을 위한다는 동물보호단체며 환경을 수호한다는 정부 공무원보다도 훨씬 더 인간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 느껴지는 건 당혹스런 일이다. 뉴트리아 박멸계획은 허울 뿐인 계획이지만 정부는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미 한국에 정착한 뉴트리아를 오로지 농사짓는 인간을 위하여 거듭 사냥하기를 선택하는 게 현실이다. 명분이었던 생태계 파괴가 과연 그리 심각한 것인가 하는 물음을 영화는 넌지시 관객 앞에 던져놓는다. 뉴트리아가 마치 천연기념물 민물고기를 사냥하는 듯 주장했던 일부 농민들의 음모가 까발려지는 순간은 민망하기만 하다.
감독이 2023년에 찾은 전홍용씨는 뉴트리아를 더는 죽이지 않는다 했다. 뉴트리아를 많이 죽인 동료들의 끝이 좋지 않더라는 게 이유다. 제 안위가 아닌 생태계를 위해, 사명감을 위해 뉴트리아를 죽였던 그다.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박멸정책을 펴온 정부며, 제대로 된 연구조차 않은 학자, 오로지 귀여운 동물만 아끼는 동물보호단체, 무관심한 우리 모두를 이 영화는 은근하면서도 선명하게 비판하고 있다.
<박멸의 공존>은 그 마지막에 이르러 뉴트리아의 시선을 관객 앞에 펼친다. 과연 이들이 유해조수인가를 그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통하여 되묻는다. 누구에 대한 유해인가. 그 껍데기를 벗겨 옷을 만들어 팔겠다며 대륙 반대편에서 뉴트리아를 들여온 인간이, 제가 방치하고 풀어 번성케 한 종을 유해조수로 지정한 뒤 4만 마리나 살상해온 인간이, 야생동물의 터전을 점령해 개발하고 개간해온 인간이 더욱 유해하지 않은가를 묻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영화의 끄트머리, 뉴트리아 목에 달린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말 그대로 평온하고 순수하다. 그 일상으로부터 해로움을 발견하는 건 아무리 보아도 우리 인간이 해로운 탓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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