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로 3개월만에 1억 번 언니가 폐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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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기자]
'불도저, 장군, 신기한 사람.'
이 세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나의 친언니, 이진리(25)씨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 친구와 함께 영국 맨체스터에서 한식당 '코드82'를 열었다.
어린 나이에 창업이라니, 그것도 외국에서. 부모님께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그 순간 직감했기 때문이다. 언니의 인생이 앞으로 범상치 않게 흘러갈 거라는 걸.
스물셋, 대부분의 청춘이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언니는 겁 없이 도전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 16시간, 18시간씩 몸을 던져 일했다. 언니는 이 험난한 도전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것을 얻었을까?
치열한 순간이 모인 도전기를 들으려 언니를 인터뷰했다. 아직 영국 체류 중인 탓에 지난 6월 15일, 비대면 줌을 통해 만났다. 가족이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원래도 평범한 길을 가는 언니는 아니었지만 왜 그런 선택들을 했는지, 어떤 가치관이 있는지, 앞으론 어떻게 살길 바라는지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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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접 만든 '코드82'의 로고 |
| ⓒ 이진리 |
영국 유학 시절부터 주변 유학생들을 자신의 요리로 먹여 살려온 언니에게, 한식당 창업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먹은 건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게 언니 성격이었지만, 들어보니 단순히 열정 하나로 밀어붙인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언니는 초기 자본을 모으기 위해, 6개월간 하루 4시간만 자며 아르바이트를 3개씩 병행했단다. 그리고 다른 한식당에서 수석 셰프로 일했던 친구를 무려 1년 가까이 설득해 함께 창업에 나섰다고.
"이걸 지금 왜 해야 하는지, 나한테 어떤 비전이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우리가 같이하면 좋겠는지를 1년 정도 설득했어."
가게 이름, 로고 등 손이 닿는 모든 것은 언니가 직접 만들었다. '코드82'는 한국의 국제 전화번호를 의미한다. 기존의 한식당 이름은 한국어로 되어, 외국 고객이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차별화를 위해 택한 이름이었다고 한다.
모두가 읽고 쓰기 쉬운 것을 고려하면서도 가게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고려했다고.
"K-pop이나 K-food로 새로 유입된 고객들이 많은데, 영국에 있는 기존 한식당들은 조금 올드한 이미지가 있었어. 대부분 10년~15년 된 가게들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젊음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로고, 이름, 메뉴 등 전반적인 브랜딩을 에너지 있고 젊은 느낌을 주려고 했어."
6개월 동안 4시간씩 자며 준비해 연 한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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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드82'의 메뉴들. 김밥과 비빔밥, 떡볶이 등 ?다른 한식당에서는 보기 힘든 메뉴들을 팔며 차별화를 두었다고. |
| ⓒ 이진리 |
"정말 힘들었지. 그런데 내가 힘들어도, 책임감 있게 가게를 잘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배우는 것도 많았어."
하지만 가게 운영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 문제였다. 함께 식당을 시작한 친구가 비자 연장에 실패하면서 출국하는 상황이 되었고, 뒤이어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도 문제를 겪었다.
"매일매일이 시행착오였어.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고객들 덕분이야.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고객들에게 '너무 맛있다', '이 식당을 열어줘서 고맙다'라는 메시지를 받았거든."
언니는 그 메시지들이 자신을 하루씩 더 버티게 했다고 말했다. 그 고마운 마음은 어느새 더 큰 보람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 일을 왜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되었다고 한다. 그 많은 기억 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었다. 배달 앱에서 1등 한식당으로 선정되어, 영국 모교 행사에 케이터링 파트너로 초청받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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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드82'의 학교 케이터링 행사를 도와준 친구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진리씨. |
| ⓒ 이진리 |
경험이 남긴 것들...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어"
지난 6월 13일, 동업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코드82' 여정이 마무리됐다. 약 2년 넘게 성실히 달려온 길의 끝이 찾아왔다. 가게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은 뒤 며칠 동안, 언니는 마지막 출근을 상상하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가게 문을 닫고 나오던 순간, 의외로 담담하고 후련했다고.
"되게 후련했어.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해봤으니까. 그리고 내 가게를 인수하신 분이 70세셨어. 그걸 보면서 생각했지. 나도 언젠가 돌아가고 싶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오히려 자신감을 얻고 온 것 같아."
'코드82'는 언니에게 큰 의미이자 인생의 중요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나한테는 정말 자식 같아. 내 손을 안 거친 게 하나도 없었거든. 지금 내게 남은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해. 돈 주고도 못할 값진 경험이니까."
낯선 도시, 낯선 언어, 청춘의 패기로 시작한 도전. '코드82'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언니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듯했다. 겁 없이 뛰어든 그 도전의 끝에는 한층 더 성숙해진 언니가 있었다.
"나는 앞으로의 삶을 새로운 도전들로 채워나가고 싶어. 계속 다른 것들을 시도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어. 나는 내가 겁 없이 도전하면서 살길 바라."
언니는 지금 영국에서 한숨 돌리며 쉬어가고 있다. '한식당을 운영하며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어서, 쉬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면서. 미래엔 영국 회계사 자격증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 고민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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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드82'를 정리한 이후, 이제는 자신을 되돌아보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 |
| ⓒ 이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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