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에 불이 났다, 카메라를 들고 뛰며 만든 이 다큐
[김성호 기자]
2023년 4월 초, 서울 복판에 큰 불이 일었다. 흔히 말하는 바, 축구장 면적 8개 이상을 태운 산불이었다. 불이 난 곳은 인왕산,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려 일어난 실화였다. 불길은 산불진화헬리콥터 15대, 진화인력 2800여명 등 소방력을 총력 동원한 끝에 25시간 만에 꺼졌다. 인근 120가구가 대피했다 귀가하고 삼림 6헥타르(ha)가 소실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던 이 화재로 태어난 영화가 한 편 있다. 상당히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테이큰>이 바로 그것이다. 양지훈 감독의 14분짜리 단편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상영작으로 선정돼 섹션3에 묶여 관객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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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이큰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자칫 국가적 비난으로 화할 수 있는 사건을 접하고 키우는 개 루루의 안전부터 확인했다는 감독은 곧장 카메라를 들고 불이 나는 현장으로 뛰었다고 전한다. 그 순간 감독의 가슴을 채운 건 축제에 참여한다는 감정이었다니, SNS 상에 창궐하던 강 건너 불구경 이미지들과 이 영화 <테이큰>의 감각이 완전히 달리 자리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앞서 언급했듯 <테이큰>은 실험적 특성이 역력하다. 통상 재난을 마주한 다큐멘터리가 갖는 자세를 이 영화 가운데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환경이나 사회적 메시지, 구조와 피해상황 인터뷰, 사건의 사회적 의미 부각 같은 요소가 전무하단 이야기다. 좌와 우, 둘로 분할된 화면은 얼핏 대동소이해 보이는 장면을 포착한다. 그러다가는 어느 순간 한 쪽이 제멋대로 생각을 뻗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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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이큰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양지훈 감독은 영화제에 전한 연출의도를 통해 작품이 보이는 비약의 의미를 해명한다. 그는 제9회 대구사진비엔날레가 공개한 개요 '동시대 비엔날레를 휩쓸고 있는 거대 담론인 사회·정치, 생태, 재난, 디아스포라, 소수자 등에서 벗어난다'는 문구를 앞세워, "마치 역병인 것처럼 하나하나 친절히 언급하고 있는 그 거대 담론에서 벗어난다면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고 밝힌다. 양지훈은 이어 "<테이큰>은 사진비엔날레에서 배제하기로 선언한 모든 일들은 사실 사진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비약한다"며 "비극의 풍경은 기록되기 위해, 멋진 피사체가 되도록 처음부터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영화는 산불을 추적하며 그 산불이 사진으로 찍히기 위하여 일어났다고 논증해간다. 그를 위하여 소독차가 사라진 이유가 그를 찍는 이들의 소멸이라고, 기차가 아직은 남아 있는 이유는 또 그를 찍는 소위 '포머', '토리테츠'라 불리는 일군의 철도사진 마니아들의 존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무리한 주장, 궤변일 밖에 없는 이 이야기를 영화는 10여 분 간을 유지하는데, 기차가 뿜어내는 연기와 헬기가 쏟아내는 물이 최루탄과 물대포, 핵폭탄의 이미지와 연결돼 찍음직한 피사체로 귀착된다는 결론에 이르러 할 말을 잃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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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이큰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무엇보다 두 개의 영상으로 나누었단 점은 이 작품의 주된 성격을 확인한다. 한쪽은 한 차례도 멈추지 않는 원테이크 영상으로 집에서 산불을 관측하는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나아가며, 다른 한 쪽은 사안을 비약하는 독자적인 사진과 동영상의 연결로 나눈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분할의 이유를 밝혔다.
양지훈은 "한쪽은 고군분투하는 사진가 모습, 한 쪽은 전시를 준비하며 푸티지로 모이고 비약해나가는 과정을 담았다"며 "상영환경에서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양지훈은 궤변처럼 느껴지는 사진과 비극의 선후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다큐 영화제가 지속되려면 계속 비극이 있고, 불합리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며 "물론 그 사람들이 그걸 원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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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한편으로 부조리를 들추는 일군의 다큐 작가들이 무엇보다 그와 같은 사건을 없애고자 하는 이라는 점을 감독은 강조해 말했다. 양지훈은 "부조리한 것들이나 비극, 불합리한 것이 없어지면 다큐를 직업이라고 했을 때 작가들은 직업을 잃을 것"이라면서도 "그들이 다른 누구보다 직업을 잃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산불과 그를 찍겠다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는 감독, 그렇게 모아온 엉성한 푸티지와 그를 무기 삼아 온갖 궤변을 펼쳐나가는 영상이 이 영화 <테이큰>의 실체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세상의 주요한 사건을 사진이란 매체와 별개로 놓고 보자며 순수주의를 주창하는 사진예술계와 이에 불편함을 느끼는 감독의 충돌이 <테이큰>의 기저에서 작동한다. 그 결과로써 무리한 궤변, 전복적 사고 위에 사회적 문제가 꿰여 등장한다.
시각적 공통점이 있는 하얀 연기와 물보라가 무리한 논리전개와 사회적 의의, 또 연출의도 사이를 간신이 이어낸다. 그 간신한 이어짐이 영화와 관객 사이 또한 역시 간신히 연결짓는다. <테이큰>을 관객 앞에 선보이길 택한 제3회 반다페의 의지는 이 같은 전략이 간신히나마 먹혀들었음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이 실험 또한 완전히 실패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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