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마리, 아마도 양경자, 대구에서 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유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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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 그리고 양경자. 그녀가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던 1971년, 마지막 주소지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382-14'였다. 홀트아동복지회가 있는 곳이다. 지난 6월 18일, 마리씨가 서울을 방문해 홀트아동복지회 건물을 등지고 있다. |
| ⓒ 유지영 |
'한국계 프랑스 입양인'인 그는 최근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방문해 자신이 유기된 것으로 추정된 대구 신암동 인근을 돌며 '부모님을 찾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제 프랑스 이름은 마리입니다. 저는 한국계 프랑스 입양인입니다. 제 입양서류에 따르면 저는 1971년 2월 8일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71년 10월 입양되어 프랑스로 갔습니다. 저는 대구 신암 5구에 있던 군부대 앞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리씨가 처음 발견된 곳으로 알고 있는 신암동 내 군부대의 존재 여부조차 주민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역 노인들은 마리씨의 물음에 1970년대 근처에 군부대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하거나, 미군 부대가 있었다고 했다.
지난 1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난 마리 드바기씨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한국을 처음으로 다시 찾은 마리씨는 그 후로 여섯 차례 한국을 방문해 가족을 찾았고,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 이렇게 이중 국적을 신청했다. 그는 "한국에 올수록 점점 더 편안해지고 긴장을 내려놓게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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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씨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서류의 일부. 비자 등 서류에는 마리씨가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갈 때 당시의 이름과 사진이 담겨있고, 프랑스로 입양을 가기 위해 비자를 받은 일시(1971년 7월 26일)도 나와있다. |
| ⓒ 유지영 |
'초기 사회 조사서' 하단에는 마리씨가 1971년 2월 10일 대구시 사회과(당시 명칭)를 통해 백합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2월 22일 다시 서울 합정동의 홀트 아동복지회로 보내졌다고 나와있다. "왜 아이가 원래 고아원에 맡겨졌는가?"라는 질문에는 '유기됨(abandoned)'라 기재되어 있다.
만으로 1살이 되기 전에 프랑스로 출국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배 위에 알파벳으로 '양경자'라 적힌 종이를 올려두고 촬영한 사진 세 장은 그녀가 한국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돼주었다.
그녀가 가진 최초의 기억은 만 3살에 마리씨보다 뒤늦게 한국에서 입양된 6살 '오빠'와 놀던 기억이다. 마리씨는 장난감 자동차를 오빠의 머리 위에서 굴리고 놀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마리와 그의 오빠는 어린 시절 생김새로 인해 프랑스 학교, 시장, 교회에서도 놀림을 당했다.
마리씨가 '양경자'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던 건 18살 무렵의 일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스스로가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 외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입양인이라는 정체성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것은 30살이 되던 해였다.
30살이 된 마리씨에게 그의 엄마는 1971년 입양 당시의 서류를 건네며 "이건 네 것이니 가져가라"고 했다. "너에게는 당연히 너의 뿌리를 알 권리가 있으니 언제든지 찾으면 된다"는 엄마의 말이 따라왔다. 마리씨는 그때 이미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때부터 마리씨의 전 생애를 걸친 질문이 시작됐다. "왜 나는 버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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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씨가 대구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붙인 '부모님을 찾습니다' 포스터. 마리씨는 이 포스터를 들고 여러 차례 프랑스에서 한국을 찾았다. |
| ⓒ 유지영 |
지난 여러 해 동안, 늘 부모님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른, 당신들만의 인생을 살고 계실 것을 알지만, 부모님을 뵙고 어떤 분들인지 알아 가고, 부모님께 저의 가족을 소개하고, 부모님과 연락을 계속 주고 받고 싶습니다." (마리씨가 직접 만든 '부모님을 찾습니다' 전단지 일부)
2006년 마리씨는 1971년 한국을 떠날 당시 마지막 주소지였던 홀트 아동복지회에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다. 홀트 측은 마리씨가 신암5구 군부대 앞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했으나, 그 외에 출생지나 친가족 정보나 버려진 이유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양경자'라는 이름 또한 '진짜' 이름인지 불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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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1년 마리씨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은 단 세 장뿐. 사진 세 장과 함께 마리씨는 프랑스로 입양되었다. |
| ⓒ 유지영 |
한국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자신의 오빠와는 달리 그는 여전히 자신의 부모님이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2022년부터 매해 대구에 방문했고 2024년부터 병원, 노인정, 시장 등에 전단지를 붙이면서 정보를 수집해보려 해도, 마리씨 스스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마리씨는 "입양 문서를 바탕으로 가족에 대한 정보를 알고자 해도 사실 입양 문서가 잘못되었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찾는 것이다"라면서 "이게 진실된 문서인지는 영원히 모를 것이나 그럼에도 내가 가진 것이 이것 밖에 없으니 이를 지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에서 입양인 커뮤니티 활동도 이어가는 동시에 지속적인 한국 방문도 염두에 두고 있다. 마리씨의 딸은 '엄마가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훨씬 더 기뻐 보인다'는 말을 남겼다. 올 때마다 점점 더 기쁘고 편안해지는 한국에서 그녀는 너무 늦기 전에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한다.
인터뷰 번역(프랑스어) 및 도움 : 최서영(국제정치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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