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보 농성장 인근의 '꾀꼬리 둥지'가 뜻하는 것

이경호 2025. 6. 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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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 소식 425일] 여름 생명의 노래는 계속 들려야 한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6월의 금강의 세종보 농성장 주변은 녹음으로 가득하다. 세종보 농성장의 서쪽 제방에 자라는 나무 사이, 뙤약볕을 뚫고 익숙한 울음소리가 매일 같이 들려온다. 꾀꼬리가 새들 키우는 소리이다. 꾀꼴꾀꼴 울며 날갯짓하는 꾀꼬리의 모습을 농성장 주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금강변에서 꾀꼬리를 만나는 일은 흔하지만, 둥지를 실제로 확인하는 것은 놀랄 일이다. 강이 흐르고 수풀이 살아나고 생명이 깃든다는 건 곧 새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고, 이곳에 꾀꼬리가 매년 번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둥지에서 입을 벌리며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들
ⓒ 김재민
농성장 주변을 둘러보던 김재민 학생은 이날, 한 그루 작은 나무의 가지 끝에서 정교한 꾀꼬리 둥지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부리를 벌린 새끼 세 마리가 서로 어미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깃털이 제법 윤기를 띠었고, 이미 둥지 가장자리로 나와 몸을 일으키기도 했다. 곧 둥지를 떠나 하늘을 나는, 이소(離巢)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소를 하는 새끼 새들은 노란색과 함께 연두색을 띠고 있어 연둥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둥지 밖으로 이소를 준비하는 꾀꼬리 새기인 연둥이
ⓒ 김재민
꾀꼬리 둥지가 발견된 자리는 다름 아닌 1년 넘게 시민들이 지켜온 세종보 농성장 인근이다. 2021년 1월,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세종보 해체를 결정했지만,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환경부는 "보 활용 방안"을 들며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핑계삼아 2023년 사실상 해체 결정을 보류했다. 이에 반발한 환경단체와 지역 시민들이 2024년 4월 29일부터 금강 세종보 남측 둔치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그 농성은 420일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농성장은 단지 피켓과 현수막이 세워진 공간이 아니다. 물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머무는 생활의 자리이며, 강이 회복되는 변화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생태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꾀꼬리가 둥지를 틀고, 번식하고, 새끼들이 이소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자연 관찰의 차원을 넘어선다. 강이 여전히 살아있으며, 보 개방 이후 자연이 스스로를 회복해가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새끼를 키워내고 있는 꾀꼬리의 모습
ⓒ 김재민
꾀꼬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름철새다. 보통 4월 말에서 5월 사이 한반도에 도래해 활엽수가 무성한 산림이나 강가의 수풀에 둥지를 튼다. 암컷이 거미줄과 식물섬유로 그물처럼 정교하게 엮은 밥그릇 모양의 둥지에 알을 낳고 품은 뒤, 약 18일 후 새끼가 부화한다. 부화한 새끼는 약 2주간 둥지에서 자라다 날갯짓이 완전히 갖춰지면 비로소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번에 세종보 농성장 인근에서 발견된 꾀꼬리 둥지는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지나고 있었다.

새로운 새끼의 등장은 세종보의 보 개방 이후 강 생태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수문이 열리고 모래톱이 드러나자 수서생물과 어류가 돌아왔고, 이를 먹이로 삼는 조류도 다시 찾아들기 시작했다. 흰목물떼새가 강가에서 보의 직접적인 변화를 증명하고 있다면, 금강변의 숲을 번식지로 꾀꼬리가 안전하게 매년 번식하는 것은 강변의 생태계의 안정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강이 흐르는 곳에 생명이 돌아온다는 단순한 진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장면이다.

고대 고구려 유리왕의 서정시인 '황조가'에도 꾀꼬리가 등장한다. 유리왕은 짝을 지어 노래하는 꾀꼬리 소리를 들으며 떠나간 아내를 그리는 자신의 외로움을 노래했다. 그러나 지금 이 강변의 꾀꼬리는 외로움의 상징이 아니라, 회복과 연결, 그리고 희망의 상징으로 우리 곁에 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새가 머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켜낸 자리에서 새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며칠 후면 꾀꼬리는 둥지를 떠날 것이다. 그 작고 여린 새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농성장 사람들은 조용히 지켜볼 것이다. 무언가를 바꾸려는 다짐이나 선언 없이도, 새끼 꾀꼬리들의 날갯짓은 이곳에서의 시간과 노력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꾀꼬리가 자라고, 떠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강. 그 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강은 흐르기를 원한다. 생명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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