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돌아간 큰고니 '여름'... 멸종 되돌리는 첫 비행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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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고니의 비행모습 |
| ⓒ 에버랜드 |
그러나 여름의 비행은 단순한 철새 귀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인간이 사라지게 만든 생명을 복원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며,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되돌려보려는 치열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었다. 부모 고니인 '날개'와 '낙동'은 각각 총에 맞아 날지 못하게 된 후, 1996년부터 에버랜드에서 보호받으며 살아왔다. 자연에서는 더 이상 짝짓기도, 번식도 할 수 없었던 이들은 인공 서식지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2023년, 이 부부는 드디어 한 생명을 품어냈다. 그것이 바로 '여름'이다. 이름처럼 뜨거운 희망을 품은 생명은 인공 부화와 인공 서식지에서 자란 뒤, 같은 해 10월 부산 낙동강 하구 을숙도로 옮겨져 야생 적응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와 조류생태환경연구소, 에버랜드, 환경부의 협업 아래 여름은 매일같이 하늘을 연습하며 스스로를 야생에 맞춰 나갔다. 몸에 부착된 GPS 위치추적기는 그의 움직임을 기록했고, 대장정을 성공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2024년 4월 30일, 여름은 을숙도를 떠났다. 울산을 지나 북한 함경남도 신포와 함경북도 김책을 경유해 북상했고, 마침내 한 달 가까운 비행 끝에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에 도착했다. 지도도, 길도 없는 하늘길. 여름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하늘을 본능만으로 날았다.
인간이 손수 인공 부화하고 훈련시킨 큰고니가 본래의 번식지에 스스로 도달한 사례는 한국 조류보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것은 단지 한 마리 새의 성공이 아니다. 자연 본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인간의 책임감 있는 손길이 그것을 깨워낼 수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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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치추적기를 다는 모습 |
| ⓒ 에버랜드 |
이들은 보통 습지와 강 하류, 얕은 호수 주변에서 서식하며 수생식물과 수초를 주로 먹는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지는 않지만, 그 존재 자체가 자연의 건강성을 드러내는 지표종이다. 큰고니가 돌아오면 습지가 건강하다는 뜻이고, 고니가 떠나면 그 땅은 병들고 있다는 경고가 된다.
여름의 성공은 기적 같지만,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값진 시간과 자원이 들었는지는 평가가 필요하다. 27년간 보호받아 온 고니 부부, 많은 예산과 수년간의 연구, 그리고 여러 기관의 협업이 필요했다. 여름이 돌아간 그 장면 뒤에는 생명을 되살리기 위한 인간의 분투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을 들인다고 해서, 멸종된 생명을 반드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복원은 실패로 끝난다.
멸종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하지만 복원은 수십 년이 걸려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사라진 종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살아남은 종마저도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 점점 버티기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원' 이전에 '보존'의 가치를 다시 배워야 한다. 생명을 잃지 않도록,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가 먼저 자연에 다가가야 한다.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생태 복원이다.
지금 여름은 러시아 어딘가에서 짝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먼 하늘 너머에서 다시 을숙도 하구로 내려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만을 기다릴 수 없다. '여름'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멸종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리고 복원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생명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 무게로 날아 보여주었다.
그가 돌아온다면, 그것은 단지 한 마리 큰고니의 귀향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 우리를 다시 받아들인다는 신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기적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기적이 필요 없는 세상, 그것이 진짜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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