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사용 금지, 5분 간 어둠을 견뎌야 만날 수 있는 작품
[전사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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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mes Turrell, 2022. Courtesy Pace Gallery. Photo by Kyle Knodell |
| ⓒ Pace Gallery |
내 존재가 빛에 들어가는 느낌. 강렬한 색이 다가오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면서 색 그 자체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색과 공간과 빛.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최신 작품을 서울 이태원 페이스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작가가 '빛의 예술가'로 불리는 이유
창 밖이 온통 보랏빛, 핑크빛으로 물드는 날이면 자연의 빛이 주는 감각에 잠시 넋을 잃고, 경비행기를 타고 자연이 만든 이 아름다운 색감 속을 날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몽상과도 같은 꿈이지만 제임스 터렐은 이를 일상적으로 누리고, 경험한다. 그는 15세에 조종사 자격증을 딴 뒤, 8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광활한 대지와 하늘을 누빈다. 그는 지난 1월 국제미술페어 '아트 바젤' 측과 한 인터뷰에서 하늘을 날며 느끼는 경험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 특유의 아주 낮고 짙은 안갯속을 비행하던 중이었어요. 그 위에는 성층운이 떠 있었고, 태양이 막 떠오르려는 순간이었죠. 하늘은 붉은빛에 물들기 시작했고, 주황색을 거쳐 노란색으로 변해갔어요. 완전히 추상적 풍경(abstract landscape) 속을 날아가는 경험은 정말 강렬했죠."
터렐은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없는 빛의 경험과 감동을 작품을 통해서라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빛과 공간이 주는 숭고한 경험을 온몸으로 흡수한 그는 1960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동한 미술 운동 '빛과 공간'(light and space) 미술 운동에 참여한다. 전통적으로 '보기만 하는' 회화나 조각이 아닌, 관람자들에게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주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페이메이르, 카라바조, 그리고 인상주의 화가들은 회화에 빛을 담았다. 어떤 디지털 기기도 없던 시절 그 그림을 봤더라면 어쩌면 우리도 그 화가들이 그린 빛 안으로 들어가, 빛의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터렐의 말처럼, "우리는 회화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잃어버렸다."
그는 빛과 공간, 색이 주는 경험을 위해 공간에 LED 빛과 색채 조명을 투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빛과 색채 조명은 공간의 입체성을 보여주거나, 3차원적 공간을 평면적 작품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페이스 갤러리에서도 터렐 작품을 관람할 때 어지러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만큼 터렐의 작품을 보다 보면 비행기 이륙 시에 느끼는 탈 현실의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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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mes Turrell, 2022. Courtesy Pace Gallery. Photo by Kyle Knodell. (아래 나오는 사진들은 갤러리 측에 요청해서 받은 보도자료 사진임) |
| ⓒ Pace Gallery |
보통 요즘 핫하다는 전시에 가면 실로 카메라와의 전쟁이다. 전시는 SNS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벤트가 된 지 오래다. 맛집에서 카메라가 빠질 수 없듯이, 사실상 모든 남기고 싶은 순간 우리는 이제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찾는다.
하지만, 핸드폰을 드는 순간 '그 순간에만 오롯이 존재하는 경험'이 깨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강박과도 같은 욕구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는 욕구에 앞서곤 한다.
나도 전시를 보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찍어온 사진을 보며 그때의 감정을 다시금 되새긴다. 사진이 없으면 불러낼 수 있는 기억이 빈약해진 지 오래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 터렐의 전시처럼 촬영이 금지된 전시에 들어갈 때면, 더 긴장하고 날을 세우고, 내 감각을 가다듬으며 전시장에 들어서게 된다. 기억을 불러낼 수 있는 이미지가 없기에 온전히 나의 감정과 감각에 충실해야 한다.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작품 하나하나의 색채, 빛,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파동에 집중했다.
전시장에 들어가, 색이 점차 스며들듯 변하는 작품 앞에 앉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몰입의 경험이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찰칵' 소리에 방해받지 않았으나 쉼 없이 움직이고 시간에 쫓기는 일상의 번잡함이 내 안에서 쉽게 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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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mes Turrell, 2022. Courtesy Pace Gallery. Photo by Kyle Knodell |
| ⓒ Pace Gallery |
터렐의 숙원 사업, 50년 째 진행 중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에서 관람을 하다 보면, 상공에서 찍은 분화구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속 분화구는 작가가 애리조나에서 1970년대부터 진행 중인 프로젝트, '로덴 크레이터'이다.
1974년 비행기를 조종하던 중, 터렐은 애리조나에서 사화산을 발견한다. 하룻밤을 사막에서 지낸 그는 육안으로 하늘을 관찰할 수 있는 관측소를 만들고자 대지를 매입했다. 지름 3.2km에 달하는 분화구 내부를 터널로 만들고 건축가들과 천문학자들이 동원되어 육안으로 별빛, 자연광, 하늘의 색을 관측할 수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40만 년 된 죽은 화산의 분화구는 고대 문명의 관측소와 같은 모습으로, 육안으로도 빛을 가장 감각적으로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사막에서, 자연이 만든 가장 원초적인 건축을 따라, 인위적인 암실이 아닌 무한한 우주 같은 어둠 속에서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체험하는 기분은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황홀해진다.
아직까지는 후원자와 예술계 인사 등만이 초대되는데, 이곳을 방문한 뮤지션 칸예 웨스트는 "인생이 뒤바뀌는(life changing)" 경험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이후 그는 1000만 달러를 이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유튜브 영상으로 로덴 크레이터의 일부분을 감상하기만 해도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초월적이며 숭고한 경험을 주는지를 알 수 있다.
아직 로덴 크레이터에 방문할 수는 없지만, 서울에서는 페이스 갤러리에서 그리고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볼 수 있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당신의 빛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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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mes Turrell, , 2018. 페이스 갤러리 1층 오설록 카페에 설치 되어 있는 작품이다. |
| ⓒ 전사랑 |
해당 전시는 9월 27일까지. 무료이나, 예약이 필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관련영상 https://youtu.be/udlzm3Ea3RE?si=CT1TB3Q0qFdU3fsj https://youtu.be/6TGzvDamBZQ?si=SYIh2eGbtMdX9rPD https://youtu.be/FIjPmoUtfIk?si=SHIqoxHHRN73Fb-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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