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검찰이 김익진 검찰총장을 기억했더라면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
|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 ⓒ 이정민 |
1987년 이전과 이후의 두 시기에 정치검찰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것은 고도의 권력 지향성이다. 권력의 시녀가 된 것도 권력 지향적 태도에 기인한다. 법을 신성하게 다뤄야 할 법률가 본연의 소명을 외면한 채 정권과 더불어 뭔가 해보고자 하는 정치검찰의 그릇된 욕망이 검찰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들었다.
검찰이 그런 식으로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법적 원리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 검사가 있었다. 말로만 외친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오롯이 보여준 검사가 있었다. 제2대 검찰총장 김익진이 그 주인공이다.
김익진이 검찰총장에 임명된 날짜는 한국 현대사에서 큰 의미를 띤다. 1949년 6월 7일 자 <동아일보>는 윤보선 상공부 장관, 이기붕 서울시장 등의 6월 6일 인사조치를 보도하면서 김익진 대법관이 대검찰총장이 된 일을 전했다.
일제강점기의 검사국은 법원 소속이었다. 미군정 때도 대법원 검사국이 있었다. 법원과 검찰이 미분화된 시절을 경험했던 1949년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대법관이 대검찰총장으로 옮겨가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김익진 대법관이 검찰총장이 된 1949년 6월 6일은 이승만이 총으로 세상을 위협한 날이다. 그날 이승만은 친일청산을 그만하라며 무장 경찰을 파견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청사를 공격했다. 반민특위에는 조사위원 외에도 경찰에 해당하는 특경대, 법원 및 검찰에 해당하는 특별재판부와 특별검찰부가 있었다. 반민특위 공격은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법조인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띠었다. 그것은 권력의 시녀로 살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검찰총장이 된 김익진은 정치적 중립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경무대의 수사 중단 지시를 거부한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은 진정한 검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그의 신념을 증명한다.
김익진처럼 정치적 중립 견지하며 수사권 행사했다면
대한정치공작대는 제3공화국 시절의 중앙정보부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 불법 사찰과 공안사건 조작이 이들의 업무 매뉴얼에 있었다. 정규진 북한지역개발연구소 연구원의 <한국 정보조직>은 "대한정치공작대는 1950년 2월부터 조직을 준비해 3월 30일에 설립하고, 약 100여 명의 대원들에게 '상기자는 사전 승인 없이 심문, 검거를 불허한다'는 신분증을 지니게 했다"라며 "신분증에 '대한민국 내무부', '치안국장'이라는 표기와 도장, '국방부 헌병사령관'이라는 표기와 도장 등이 찍혀" 있었다고 기술한다.
이 공작대는 야당인 민주국민당 지도부를 내란죄로 엮고자 했다. 이런 음모가 5·30 총선을 앞둔 시점에 적발됐다. 위 책은 "그 소속원들이 '군·경에 잠입한 남파간첩들과 김성수·김준연·백관수·조병옥 등 민국당 지도자들이 내통해 선거를 방해하고 이승만과 정부요인을 살해한 후 정부를 전복할 음모를 꾸몄다'는 조작극을 만들다 발각되었다"고 설명한다.
2006년 대검찰청 공보관실이 발행한 <자랑스런 검찰인상 관련 검토보고서>는 위 사건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첩보가 입수된 뒤 검찰이 수상히 여겨 수사하려 하였으나" 경무대가 제동을 걸었다고 알려준다. 이승만은 "검찰은 이 사건에 일체 관여하지 말라"고 특명을 내렸다. 그러나 김익진은 이 지시를 한 귀로 흘려버렸다. 보고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통령의 특명에도 불구하고 서울지검의 정보부 검사를 투입하여 1950년 4월 정치공작대원 108명을 검거하였다. 김 총장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직접 지휘하여 수사·기소하도록 지시하였다. 5월 19일 정치공작대장 김태수 등 11명이 기소되었다."
김익진은 대통령의 개입으로 인해 일선 검사들이 정치적 외풍에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는 대통령의 간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시적으로 표시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을 기소하지 말라'는 친서를 보냈으나, 담당 검사들이 소신껏 기소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김 총장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현행법상 불기소처분이 불가능하다'는 회답을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한다"라고 위 보고서는 기술한다.
공작대원의 신분증 기재사항과 이승만의 수사 개입에서 나타나듯이, 이 사건은 정권 핵심부와 맞닿아 있었다. "검찰 수사가 치안국장·내무부장관 등 배후 권력층까지 확대되자, 이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국가의 치안을 맡고 있는 경찰을 파괴하고 있다며 격노하였다고 한다"라고 위 보고서는 말한다. 이랬기 때문에 사건을 계속 파헤치는 것은 위험을 부르는 일이었다. 김익진은 이에 개의치 않고 소신을 밀어붙였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는 것이 비판을 받게 된 본질적 이유는 그동안 검찰이 수사권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수사권을 남용한 것이 지금의 검찰 위기를 초래한 주요 요인이다. 김익진 검찰총장처럼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며 수사권을 행사했다면, 검찰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달라졌을 것이다.
검찰이나 법원 기관장이 국민 직선제로 선출되는 구도였다면, 김익진의 소신 행보가 그의 신변에 악영향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검찰이 행정부의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에 김익진은 불이익을 피할 길이 없었다. 한국전쟁 전날 발행된 <조선일보> 기사 '검찰총장 경질'은 1950년 6월 22일 자 검찰 인사이동을 보도하면서 "검찰총장 김익진 보(補)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이라고 전했다. 이승만은 서울고검장으로 강등시키는 방식으로 그에게 치욕을 안기고자 했다.
|
|
| ▲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김익진 제2대 검찰총장(왼쪽 하단). |
| ⓒ 대검찰청누리집 |
그 길을 쭉 걸어갔다면 십중팔구 친일파로 규정됐을 그는 31세 때 그 걸음을 뚝 멈춘다. 일본 정부가 군국주의 노선에 뛰어든 1927년 그해에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된다.
그 뒤 그는 독립운동가를 지키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항일투쟁과 관련된 각종 시국사건에서 변호를 담당했다. 도산 안창호 등이 검거된 공안사건인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흥사단 사건) 때는 김병로 등과 함께 변호에 나섰다.
김익진은 해방 직후에는 일제잔재 청산에 뛰어들었다. 조만식이 이끄는 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의 지도부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그의 이름은 북한 현대사에 등장한다. 김성보 연세대 교수의 <북한의 역사> 제1권은 해방 이틀 뒤에 출범한 이 기구의 무임소위원단에 김익진의 이름이 있었다고 알려준다. 김익진은 1945년 11월에 조만식이 창당한 조선민주당에서는 총무부장이 됐다.
그는 이북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조만식이 신탁통치를 반대해 호텔 연금을 당하고 조선민주당 간부들이 체포되는 속에서 그는 38도선을 넘었다. 그런 뒤 1948년 11월에 대법관이 되고 1949년 6월 6일에 검찰총장이 됐다.
이승만이 민감한 시점에 그를 총장으로 발탁한 것은 월남 경력을 감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월남인 상당수는 이승만의 동맹자들이었다. 하지만 이승만이 사람을 잘못 봤다는 점은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이 증명한다. 그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원리원칙에 충성하는 법률가였다.
이승만을 제대로 건드린 김익진의 시련은 서울고검장 강등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1952년 6월 25일에 독립운동가 김시현·유시태에 의한 이승만 암살미수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는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위 검찰 보고서는 "김익진 서울고검장은 이 사건의 주모자로 알려진 김시현과 알고 지냈고, 서로 교분을 나누던 야당 인사들과 사석에서 이 대통령과 정부시책을 비판한 언사 때문에 7월 2일 육군특무대에 구속되었다"고 기술한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결과였다. 1심과 2심은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공소권이 없다는 면소판결을 내렸다.
김익진은 1970년에 7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신념과 행적이 검찰과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된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검찰의 주류세력이 김익진 같은 인물을 사표로 받들고 정치적 중립의 길을 밟았다면 한국 검찰이 지금의 위기에 봉착했겠나를 생각하게 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임자들과 다를 바 없다"... 지지층에게 경고받은 트럼프
- "계엄 발동 못 막은 것보다...이재명 대통령 만드는 게 더 큰 죄"
- 이 대통령, 민주당 지자체장엔 "이러면 곤란" 국힘 지자체장엔 "잘한다"
- 내란특검 "28일 지하주차장 차단, 대기해도 출석 불응 간주"
- "상은아, 생일 축하해" 딸 없는 생일 잔치 3년째 여는 어머니
- '오징어 게임' 시즌3 보기 전에 꼭 기억해야 할 3가지!
- 정신을 강타한 끔찍한 물고문, 이을호는 무너졌다
- 윤석열, 내란 특검 출석... 지하 출입 포기
- 박정훈 옆에 선 해병대원들 "이 대통령님, 참군인을 복귀시키십시오"
- 김만배 측 최후변론 "삼인성호 동조했다면 이재명 구속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