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출근했는데, 밖에서 아들 고성... 허리춤을 낚아챘다
이 글은 2025년 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이윤재씨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이윤재]

"엄마, 그럴 시간 없어요. 월요일은 좀 일찍 가야 하는데 지금 너무 늦었거든요."
녀석은 엘리베이터가 멀리 있어 기다릴 수 없었던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막내는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장가는 안 가고 제 멋대로 살고 있다. 한때 저 혼자 산다며 방을 얻어 나갔었으나 밥 해 먹기 싫다며 다시 들어왔다. 녀석의 하는 행동이 우리가 젊었을 때와는 전혀 다르니 어떤 때는 안타깝기도 하다.
"여보, 민준이가 출근했으니 우리끼리라도 아침을 먹읍시다."
우리 부부는 식탁에 마주 앉아 늙은이들끼리의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소리에 아들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우리 애는 출근한 지 한참 되는데..."
아들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혼자 말을 하면서 베란다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게 웬일인가! 막내가 아파트 경비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가 하면 언성까지 높이고 있었다. 나는 놀란 나머지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살피며 아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아니, 이 자동차 주인은 싸이드(사이드 브레이크)는 채워놓고 왜 안 나오는 거야."
아들이 소리를 질렀다.
"연락했으니 곧 올 겁니다."
늙수그레한 아파트 경비원이 아들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며 대답했다. 그래서 주차장을 보니 아들의 자동차 앞에 다른 자동차가 이중으로 주차돼 있었다. 그 자동차를 빼주지 않아 막내가 출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경비란 것들이 주민들이 걷어주는 돈만 받아 처먹을 줄 알았지 제대로 일을 해야지."
나는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보도되는 뉴스 내용을 들어보면 주민이 아파트 경비한테 갑질을 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들이 아파트 경비를 향해 갑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거기다가 인격 모독적 발언으로 경비의 감정까지 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비라면 남의 자동차 앞에 주차를 못 하게 해야 할 것 아냐? 도대체 경비가 하는 일이 뭐야?"
아들은 나이 든 경비의 어깨를 툭툭 건들며 이제 반말까지 하고 있었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제 아비가 옆에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순간 나는 아들의 허리춤을 잡고 끌었다. 아들은 깜짝 놀랐다.
"야, 이놈아. 너 지금 하는 말이 그게 뭐야?"
그러면서 아들을 경비와 멀리 떼어놨다. 그리고 아내한테 빨리 택시를 호출하라고 했다. 녀석은 출근에 늦은 분풀이로 온갖 심한 말로 경비를 나무랐다. 그때 택시가 도착해 나는 녀석을 택시에 밀어 넣었다. 택시가 출발한 이후 나는 경비 곁으로 다가갔다. 내 아들이 내뱉은 상스러운 말을 주워 담기 위해서였다.
"아들 녀석 때문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출근에 늦어서 화가 났나 봅니다. 이따가 퇴근해 돌아오면 사과시키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세요."
그러자 경비는 마지못해 한마디를 던졌다.
"어디 이런 일이 하루이틀인가요? 주민들이 우리 같은 경비는 사람 취급도 안 하는데요."
감정이 상한 그의 말을 듣자니 모두가 내 죄인 양 마음이 짠했다. 나는 경비의 어깨를 토닥이곤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오늘 일을 곱씹어 봤다.
떡을 사왔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다
요즘 감정 노동자의 처우를 높여주고 인격을 존중하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렇다면 감정 노동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이는 직장에 근무하며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일이 업무의 40% 이상이라면 이를 감정 노동자라고 부른단다. 호텔 직원, 항공기 승무원, 백화점 판매 직원, 음식점 직원, 간호사, 교사, 경찰, 소방관, 연예인, 경비, 캐디 등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감정 노동자이다.
그들은 외부인의 간섭과 참견, 심지어는 인격적 모독에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혹은 회사에서 정한 감정대로만 표현하면서 생활해야 한다고 한다. 민원인 혹은 고객이 자신을 향해 아무리 궂은 말과 행동을 한다 해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고객의 막무가내식 인격모독에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이 억제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민원인과 혹은 고객과 또는 직원 간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갈등이 있을 때 감정을 추스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나도 교육공무원으로 42년을 근무하다 정년을 치렀는데 학부모와 수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때 학부모가 한 서운한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박혀 고생을 한 일이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아들이 경비한테 한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처럼 감정 노동자한테 인격모독의 말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 아들이 한 행동이었다.
아들이 저지른 행동을 생각하자니 하루종일 마음이 우울했다. 나는 아파트 앞 상가에서 맛있는 떡 두 덩어리를 샀다. 그리고 아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둑어둑한 시간 아들이 퇴근을 하자 나는 아들과 마주 앉았다.
"민준아, 오늘 아파트 경비한테 네가 한 말과 행동을 보고 이 아버지는 실망했다. 다시 말해 아들을 잘못 가르친 죄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더구나. 아무리 우리 주민들이 돈을 걷어 아파트 경비의 월급을 준다 해도 말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야. 그건 인격모독인 거야."
내가 일장 연설을 늘어놓자, 아들은 한숨을 크게 한 번 쉬더니 입을 열었다.
"늦잠을 자서 지각할 것 같은데 자동차를 꺼낼 수 없다는 마음에 욱해서 그만..."
아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마디를 더했다.
"저도 나이 드신 경비한테 갑질을 한 것이 죄송해 하루 종일 찜찜했어요. 그래서 퇴근 후 사과를 드리려고 마음먹고 왔어요."
녀석도 하루 종일 갈등하며 후회한 듯했다.
"자, 이 떡 가지고 경비를 찾아가 잘못을 빌고 무릎이라도 꿇어라. 용서해 주기 전에는 돌아오지 마라."
아들을 경비실로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정 노동자에 갑질을 한 일은 없었는지... 감정 노동자들에게 심한 말을 해 그들이 상처를 받은 일은 없었는지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아버지, 경비 아저씨한테 사과드렸어요. 용서를 해주시더라고요."
경비실에서 돌아온 아들의 얼굴이 해맑게 빛났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서로 상한 감정을 화해하고 용서함으로써 명랑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부자는 식탁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민준아, 너 혹시 라면 상무라는 말 알고 있니?"
"아! 우리나라 유명기업의 임원인 상무가 항공기 일등석에 앉아 여자 승무원에게 라면을 끓여오라더니 괜한 투정으로 짜다느니 싱겁다느니 트집을 잡다가 결국 냄비를 집어던지며 갑질을 벌인 사건이죠?"
나는 아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의 상무라는 사람이 인천에서 LA로 출장을 가면서 우등석에 앉아 그 지위를 이용해 감정 노동자인 승무원을 괴롭혀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다. 당시 그 여자 승무원은 흩어진 라면을 치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잠시 승무원이 돼 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민준아! 오늘 너한테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한 아파트 경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다음부터 오늘처럼 그런 행동을 한다면 아무리 아들이라 하더라도 '감정 노동자 보호법'에 의해 내가 관계기관에 고발할 거다."
나의 엄포에 아들은 한 손을 올려 거수경례하면서 다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감정 노동자들에게 따뜻하고 공손한 말로 대하겠습니다."
우리 부자는 맥주를 한 잔 더 마시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2018년 10월에 시행된 '산업 안전 보건법 개정안'에 따르면 '고객 응대 근로자'가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그밖에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 때문에 건강 장해를 입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감정 노동자들도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됐다.
법을 지켜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감정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주고 받아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이 노동자들도 우리의 형제이며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포근한 말과 행동으로 감싸안는다면 사회는 명랑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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