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배우면 한국인 될 줄 알았는데, 정체성이 무너졌죠"

김영훈 2025. 6. 27. 11:3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디아스포라 영화제 개막작 '국도 7호선' 전진융 감독

[김영훈 기자]

[기사 수정 : 28일 오전 9시 58분]
 영화제에 참석한 전진융 감독.
ⓒ 전진융
두 나라의 목소리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 '국도 7호선(2024)'을 연출한 전진융 감독은 일본 아키타시 출신의 재일동포 3세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5월 20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영화에 담긴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이 점에서 비롯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말했다.

"말만 배우면 한국인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체성이 무너졌죠."

'국도 7호선'은 일본 아키타현 7번 국도변의 작은 마을에서 어머니 경자(야마모토 미치코)와 함께 50년간 파친코 가게를 운영해온 재일동포 영호(박소희)가 은퇴 기념으로 어머니를 해외여행에 데려가려 하지만, 어머니는 니가타에 가고 싶다고 한다. 니가타항에서 북송된 고모 순자를 떠올리며 영호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녀 앞으로 온 오래된 북한 편지를 발견한 영호는 일본에서 따로 살아온 딸 나나(기자키 미나)와 함께 그 편지를 따라 한국의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국도 7호선'은 '재일동포가 그린 재일동포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뿌리를 좇아 국도 7호선을 따라가는 여정을 그린 이 영화는 정체성과 소속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올해 5월 인천에서 개최한 제13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상영하는 79편 중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이번 영화제는 국내외 출품작 규모가 총 58개국 794편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예매율은 전년 대비 약 80% 증가해 1만 장을 돌파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도 고유한 문화를 지켜온 유대인의 삶을 뜻하는 말이다. 현재는 난민, 이민 등 여러 형태의 이주자와 소수자까지 포함해 사용된다. 여성주의 이론가 벨 훅스는 이들의 삶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계에 있다는 것은 전체의 일부이자 중심에서 벗어난 상태다."

'국도 7호선'은 777을 향해 돌아가는 파친코 기계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숫자 7의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다. 재일동포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의 후손이다. 해방 이후 남북 분단 등 복잡한 사정으로 귀국이 막혔고, 일본에서 차별을 받으며 정착했다. 이들은 공무원, 금융 등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어려워 규제가 덜한 파친코와 야키니쿠(고기집) 업종에서 일했다.

다음은 감독과 나눈 일문 일답.

-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뭔가요?
"정체성과 한일 관계, 두 가지예요.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하고 싶지만, 우선 재미도 있어야죠. 그래서 가족 드라마로도 볼 수 있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 어떤 영화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나요?
"관객의 내면을 자극하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영화죠"

-예를 들어줄 수 있나요?
"<리틀 미스 선샤인(2006)>이 그래요.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죠. 이 영화는 온 가족이 밀어야 움직이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이 나요. 주인공들의 목표는 이뤄진 것이 없죠. 하지만 관객은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변화를 알아차려요. 영화는 관객에게 대사 외의 방식으로도 말을 걸어요"
▲ 국도 7호선 현장 사진 좌측부터 기자키 미나, 박소희, 전진융 감독
ⓒ 전진융
-배우의 연기가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제가 100점짜리 시나리오를 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촬영의 재미는 늘 예상 밖에서 나와요. 배우의 뛰어난 연기나 스태프가 제가 놓친 그림을 잡아주면 120점이 나올 수도 있죠. 주인공 영호가 귤의 단 부분만 먹고 껍질을 버리는 장면은 배우의 제안이었어요. 반대로 어머니 경자는 껍질까지 다 먹죠. 두 인물의 차이를 통해 영호가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전 감독은 촬영에서 어려운 점으로 날씨를 꼽았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을 때는 원망도 하지만, 때론 도움도 받았다고 한다.'

"<국도 7호선>에 나오는 무지개는 실제 장면이에요. 항구 촬영 도중에 나타났고 배우들의 애드리브로 이어졌죠. 북송 사업 당시 북한을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는데, 무지개가 그 방향으로 뻗어있어서 상황과 잘 맞았어요."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건가요?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스페인문화)를 졸업한 것과 영화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다가 다른 언어에도 관심이 생겨 스페인어를 선택했고요. 그래서 멕시코로 교환학생도 다녀왔죠. 일본도 한국도 아닌 제3국에서 살아본 건 처음이라, 그때 정체성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어요. 멕시코에서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냥 동아시아인으로 보이니까요. 한일사전, 스페인어 사전을 끼고 저마다 다른 언어로 수업받는 상상을 해보세요. 언어를 배울 때 영화를 많이 참고했는데 <쇼생크 탈출(1994)>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창작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경험이 영화에 도움이 되나요?
"시상 소감을 스페인어로 조금 할 수 있습니다."

-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 영화를 동네 극장에서 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진융 감독은 2022년 LHIFF(Love & Hope International Film Festival)를 비롯해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전작 단편영화<민우와 리에(2022)>가 좋은 평가를 받아, 현재 일본 영화사 TOEI와 함께 장편영화 데뷔작인 한일합작 영화를 준비중이다. 전 감독은 일본과 한국 제작진 사이를 오가며 통역도 맡는다. 그는 이미 영화 속 메시지를 실천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규모가 커져서 스트레스도 늘었지만, 앞으로도 영화를 만들 계획입니다."
▲ 민우와 리에 포스터 「민우와 리에」 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이기도 하다
ⓒ 전진융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