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의 역습, 제주 농업이 위험하다
감귤이 쩍쩍 갈라지고...콩.메밀 농사 망치고, 밭 갈아엎기 일쑤
농민들 "최대 문제는 기후재난....해결 안되면, 제주농업 생존 어려워"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땅도, 바다도 뜨거워지고 있다. 폭염과 폭우, 해수면 상승 등 지구 온난화로 인한 극단적 기상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여름철 내내 역대급 폭염이 지속되는가 하면, 가뭄이 장기화되기도 한다. 장마도 여름철에 국한되지 않고, 때 아닌 늦가을 장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겨울철에는 북극한파의 내습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 기후 현상은 1차산업에는 그야말로 위기다. 밭작물에서는 어느 계절 할 것 없이 재난 수준의 피해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수산업에서도 여름철을 중심으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축산업도 마찬가지다. <헤드라인제주>는 기후위기, 기후재난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지구온난화가 제주 농업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제주농업의 위기 상황에 대해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1) 농촌을 덮친 기후재난
2024년 제주도에서 나타난 기후특성은 그야말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름에는 역대급 폭염, 해수면 온도의 상승, 그리고 겨울에는 북극한파가 내습했다. 세계적 이슈가 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문제가 바로 우리 일상의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여름철 고온은 9월까지 이어지면서, 연간 폭염일수는 평년(3.9일)보다 5.5배 많은 21.3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연간 열대야일수도 평년(25.2일)보다 약 2.5배 많은 63.5일로 역대 최다였다.
강수 패턴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작년 제주도 연강수량은 1928.9mm로 평년 수준(1545.5mm~1792.6mm)을 크게 웃돌았다. 제주도는 일 년 중 8월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특징이 있는데, 지난해에는 6월에 가장 많은 비(연 강수량의 22%)가 내렸으며, 11월에도 폭우가 이어지며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양을 기록한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기후특성은 1차산업 현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농촌 현장은 예측불허의 기후 패턴에 아우성이 이어졌다. 이젠 어느 작물에서도 농사를 짓기는 어렵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봄에는 메밀이 수발아 현상으로 많은 농가들이 밭을 갈아엎어야 했다. 여름에는 폭염으로 인해 당근 농사를 망쳤다는 아우성들이 터져 나왔다. 감귤에서는 낙과 뿐만 아니라 '열과(裂果)' 피해까지 확산됐다.
◇ 감귤이 쩍쩍 갈라지는...'열과 피해' 급속 확산
감귤에서는 지난 해 많은 피해가 속출했다. 6월 장마철부터 이어진 국지성 호우,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 등의 영향으로 인해 감귤 열매가 한창 커가는 과정에서 쩍쩍 벌어지는 이른 바 '열과(열매 터짐)'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피해는 서귀포시 지역은 물론 제주시 지역으로도 크게 확산됐다. 제주시 애월읍의 강모씨(60대)는 작년 여름 상황을 회상하며, "열과는 매년 어느정도 발생하지만 작년에는 좀 심각했다"며 열과현상은 껍질이 생장과 과육의 생장 속도간 차이가 클때 껍질이 찢겨져 썩는 현상으로, 이상기후가 더해지며 감귤이 쩍쩍 갈라지는 피해가 많이 났다"고 토로했다.

서귀포시 지역에서 감귤을 재배하는 김모씨(50대)는 "열과 피해는 평년에도 조금씩은 나타났지만, 근래처럼 피해 양이 늘어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작년에는 20% 정도에서 열과 피해가 있었다. 농사를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열과'는 노지감귤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위적 조절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해 온 시설 내부에서 재배가 이뤄지는 레드향 등의 만감류에서도 열과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제주도농업기술원이 열과 피해가 속출한 레드향 재배 시설에서 문제를 확인한 결과, 지난 해 7~9월 폭염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시설 내부의 온도가 올라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빅데이터를 통해 생육기간 시설 내 온도를 분석한 결과, 실내 평균온도가 전년보다 약 1.2도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온도가 높을 수록 열과율이 높았다. 반면 적정 기온을 유지한 시설에서는 열과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 당근 파종기마다 반복되는..."가뭄이 들어도, 비가 너무 와도"
일반 밭작물에서도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해 8월에는 국내 최대 당근 주산지인 제주시 구좌읍 지역에서는 밤낮으로 계속된 폭염으로 인해 갓 파종한 당근 밭에서 새싹이 말라죽는 고사 피해가 급속히 확산됐다.
당근 파종은 보통 7월 중순에 시작해 늦어도 8월 중순에는 마무리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나타난다.

당근 농사를 20여 년째 하고 있다는 김모씨(60대)는 "작년 당근 가격은 나쁘지 않았지만 작황이 너무 안좋았다"고 했다.
그는 "파종할 당시 가뭄이 들었고, 폭염과 열대야로 발아가 안되는 피해, 그리고 재파종, 생육기에는 일조량 부족, 병해 발생 등 기상 악조건이란 것은 모두 발생한 한해였다"며 "그래서 상품 비율은 70% 정도 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부모씨(50대)는 "당근이 다른 작물에 비해 가격이 안정적이지 않나 하는데, 당근농사는 그해 하늘에 운이 달려있다"며 "요즘 기후재난이다 뭐다 하는데 정말 실감한다. 갈수록 더워지고, 뜨거워지며 농사짓기가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파종시기가 여름철이다 보니, 비가 내리더라도 적당히 내리느냐가 관건이다. 어렵게 싹을 틔웠다가도 폭우가 쏟아진다고 하면, 물줄기에 쓸려나가면서 농사를 망치게 된다. 가뭄이 들어도 걱정, 비가 너무 와도 걱정이다.
한 농업회사법인 관계자는 "요즘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당근 농사는 날씨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며 "농사를 짓는 사람의 정성과 나름대로의 노하우에 의해 상품성이 좌우돼야 하는데, 요즘에는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1차적 조건은 '하늘'이다.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지어야 하니, 농민들이 많이 답답해 하시는것 같다"고 말했다.
◇ 수확 앞두고 계속된 비...콩 '수발아' 피해로...결국 갈아엎었다
밭작물 중 콩 농사에서도 피해가 반복되다.
지난해 가을에는 콩 농사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수확기를 맞았지만 잦은 비와 고온다습한 환경으로 곰팡이균이 확산되고 '수발아' 피해가 속출했다. 수발아는 수확하지 않은 곡식의 이삭에서 낟알이 싹이 트는 것을 말한다.


제주시 구좌읍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모씨는 "50년 넘게 농사를 지었지만, 근래와 같이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날씨 때문에 걱정을 하고, 이렇게 농사를 망쳐보기도 처음"이라며 "재해보험이 있기는 하지만 보상 기준이 너무 낮아, 어디 하소연할데도 없다"고 토로했다.
애월읍 지역의 강모씨(60대)도 "작년에는 여름철에는 가뭄으로 흉작이었고, 수확철인 11월 중순부터 폭우와 계속된 비날씨로 수발아도 문제였지만, 곰팡이균까지 번지면서 손실이 컸다"며 "정말 최악의 해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확을 포기하고 밭을 갈아 엎은 농가가 속출했다. 설령 수확작업을 했다 하더라도, 고온 및 잦은 비 날씨로 인해 콩 수확량은 반토막이 났다.
◇ 메밀밭에서는 비 날씨로 '수발아' 피해 반복
메밀농사도 예외가 아니다. 2023년 6월, 제주지역 메빌밭에서는 때 아닌 '수발아' 현상 확산으로 재배 농가들이 망연자실하는 일이 있었다. 수발아가 생기면 사실상 수확을 포기해야 한다. 애지중지 키운 메밀을 수확도 해보지 못한채 밭을 걸어 엎어야 했다.

수발아의 가장 큰 이유는 이상기후다. 당시 비 날씨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피해가 생겨난 것이다. 메밀은 성숙기 고온과 다습한 환경이 24시간 이상 지속될 경우 수발아가 현저히 증가한다. 특히 장마철과 수확시기가 겹치면 수발아로 인해 수확량이 줄고, 수확 작업 시 손실률도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농민들은 "수확을 못해 대출 이자 상환, 비료값 등 각종 농자재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며 "봄 메밀은 농작물재해보험 대상도 아니다 보니 하소연할 곳도 없는 실정이다"라고 호소했다.
문제는 요즘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서는 이러한 수발아가 반복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올해에는 장마가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면서 곳곳에서 수발아 피해가 확인됐다.
초당옥수수, 단호박 등에서도 이상기후로 생육이 늦어지는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겨울철에도 걱정이 크다. 북극발 한파가 덮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월동무 등에서 냉해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다. 농민들은 나락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농촌 현장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 농민들 "기후재난 문제 해결 안되면, 제주농업 생존 어려워"

김만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의장은 "이제 기후재난으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적으로 일어날 농업의 문제가 되었다"며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선제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장은 "우리 제주농업의 미래를 위해 진정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전제한 후, "기후재난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제주농업과 농민들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조속한 기후재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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