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석류나무 화분을 사자고 했던 이유
급격한 고령화와 충분치 않은 노후대비는 노후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1955년생, 은퇴 후 전업 살림을 하는 남편으로서의 제 삶이 다른 퇴직자와 은퇴자들에게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자말>
[이혁진 기자]
"여보, 요즘 석류꽃이 하루가 다르게 예쁘게 자라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도 꽃에 물 주셨겠지요?"
아내가 며칠 전 사온 베란다 석류꽃화분을 보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한 말이다. 그러면서 "비오는 날에는 물을 주지 않아도 돼요"라며 지청구도 잊지 않는다.
은퇴 후 전업 살림을 하는 남편으로서 집안 살림을 하다 보면 동네 구석구석 돌아가는 것도 예사롭지 않게 보게 된다. 귀동냥해 들은 싸게 파는 가게나 맛집 식당은, 메모해 뒀다가 반드시 찾아가는 편이다. 발품을 파는 만큼 얻는 게 많다.
딱히 살 것이 없더라도 가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평범한 삶과 일상을 잘 누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은퇴하기 전에는 이러한 일상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일하느라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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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가게(자료사진). |
| ⓒ ellicia_ on Unsplash |
드디어 개업하는 날, 가게 앞에 꽃과 화분 여러 개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지난 주말 시내를 나가다 꽃가게 앞 빨갛고 예쁜 석류화분을 사자로 우리는 약속했다. 그런데 귀가하면서 보니, 그 석류화분은 팔렸는지 원래 있던 곳에서 보이지가 않았다.
그 꽃에 욕심 내던 아내는 약간 실망스러운 눈치였다. 이에 나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일요일에 좀 더 근사한 석류꽃을 보러 인근 광명화훼단지에 갑시다"라고 말하며 아내를 다독였다. 광명화훼단지는 예전에도 꽃구경을 좋아하는 아내가 종종 갔던 곳이다. 특히 봄에는 내놓는 꽃들이 많아서, 한 두 개 화초를 골라 사오곤 했다.
안 알아보고 그냥 왔구나, 이대로 허탕인가 싶어 씁쓸한 표정을 지었더니 주인이 웃으며 '모르고 오셨으니 석류 화분이라도 가져가세요' 한다. 그는 마치 내 속마음을 읽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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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명화훼단지의 석류꽃화분, 화훼류는 대부분 인터넷으로 유통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
| ⓒ 이혁진 |
이번에 석류화초는 키가 크고 색깔이 곱다. 화분값도 1만 5000원으로 가격이 매우 착한 편이었다. 아내는 횡재한 듯, 자기 품에 안은 석류꽃이 보물인 듯 기뻐했다. 아내는 시골에서 자라 야생화 이름을 많이 안다. 길 가다가 구청에서 심은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내처럼 나도 닮아가고 있다.
그런데 아내가 유독 '석류꽃'을 고른 건 조금 의외다. 연유를 물어보자 아내는 어렸을 때 언니가 있는 대구에 가면 늘 석류나무가 심겨져 있었다며, 그게 내심 참 부러웠다고 한다. 석류가 부잣집을 상징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그때 담장 밖으로 뻗은 큰 석류열매들이 얼마나 탐스러운지, 손으로 따서 가져가고 싶을 정도였다"라고 회상했다.
석류나무의 꽃말은 다산, 풍요, 결실 등 여러 개이고 '원숙한 아름다움'을 뜻하기도 한다고. 아내는 우리 집안이 늘 풍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에 석류꽃을 고른 것 같다.
나는 예전에 꽃에 무관심했다. 아내가 꽃을 사러 가면 꽃 구경할 동안 나는 나 혼자 따로 일을 봤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내가 좋아하니, 살림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꽃을 구경하고 싱싱한 꽃 사는 법도 새롭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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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란다의 석류꽃이 화사하다. |
| ⓒ 이혁진 |
우리는 함께 웃었다. 남편인 내게 꽃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걸 보면, 아내는 미적 감수성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다. 한동안 무미건조했던 집안이 석류화분 하나로 따뜻하고 밝아진 느낌이다.
꽃 덕분에 행복해진 아내가,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도 바라볼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도 만족스럽기다. 집이 좁아져도, 앞으로 아내가 어떤 꽃이든 사달라 하면 반대하지 말아야지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매일 아침 베란다 석류꽃에 물을 주고 있다. 이 장면을 아내가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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