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꺼리면 안된다"

구영식 2025. 6. 26. 19: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대중의 국정노트> 펴낸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①

[구영식 기자]

 최근 <김대중의 국정노트>를 펴낸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
ⓒ 오마이뉴스 구영식
요즘 언론사에서 긴 호흡으로 큰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는 기자들이 드물다. 그런 점에서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는 귀감이 될 만한 저널리스트다.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진지함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노선이자 조직이었던 'NL'(민족해방그룹)을 통해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고(<NL현대사>), '김대중-노무현-문재인-노회찬'을 통해 한국 진보의 한계와 가능성을 분석했다(<진보를 찾습니다>). 최근 펴낸 <김대중의 국정노트>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시 작성한 27권(대학노트)의 친필 국정노트를 분석하며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을 탐색했다.

박찬수 대기자는 지난 13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대중의 국정노트에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사적인 시간 없이 24시간 공공의 이익, 국민, 국가운영 등을 위해서 바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며 "그런 점에서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런 대통령직의 무게를 모르고 대통령이 됐던 사람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대중의 국정노트> 서문에서 "국정노트는 '대통령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라며 "자기 절제와 인내, 관용, 경청, 대화와 타협의 의지가 실제 국정을 운영했던 대통령의 친필 메모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라고 썼다. '12.3 내란 두목'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는 그가 '성공하는 대통령의 덕목들'로 열거한 "자기 절제와 인내, 관용, 경청, 대화와 타협의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박찬수 대기자는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많이 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뒤 "권력자는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꺼리면 안된다, 그것을 꺼리는 순간 민심과 멀어지고 오만한 길로 가기 쉬워진다"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오광수 민정수석을 바꾼 것은 잘했다고 본다, 그런 것도 국민의 여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관련,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일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앉히고 있는데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만 고르는 경향이 있어 그 인사의 폭이 좁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폭넓게 유능한 사람을 쓰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오광수 민정수석 사퇴에서 그 교훈을 얻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인사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라며 "'일을 잘하는 사람이면 남녀는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야 맞는 말이지만, 여성 장관을 몇 명 기용하느냐가 국민의 절반이고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 상징성이나 메시지 같은 것들을 옆으로 밀어내고서 실용성만 갖고서 인사를 하는 것들이 좀 보완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찬수 대기자는 <NL현대사>와 <진보를 찾습니다>, <김대중의 국정노트> 외에도 <청와대 VS 백악관>, <사소한 것들의 현대사>(공저) 등을 썼다. 지난 1989년 <한겨레>에 입사했고, 청와대 출입기자와 워싱턴특파원,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지난 2월 퇴임한 이후 처음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인터뷰해 주목을 받았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내가 윤석열 정부 탄생에 제일 큰 책임이 있다"라며 처음으로 '윤석열 검찰총장 발탁'과 '윤석열 정부 탄생'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다음은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김대중의 국정노트'가 20여 년 만에 공개된 사정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가 최근 펴낸 <김대중의 국정노트>.
ⓒ 한겨레출판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대학노트 27권의 국정노트를 남겼는데, 역대 대통령 중에 이런 노트를 남긴 경우가 있나?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것이 공개되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거의 매일 일기처럼 썼다. 그 분량이 두꺼운 대학노트로 27권이나 된다. 부처 장차관이나 수석비서관들, 외부 전문가들과의 회의가 있으면 회의 전에 관련자료들이 올라오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자기가 어떤 얘기를 해야 하고, 어떤 점들을 중점적으로 토론해야 할지를 자기만의 언어로 정리했다. 외부공개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의를 효율적이고 성과있게 이끌기 위해 쓴 것이다.

공개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퇴임할 때 가지고 나왔다. 그때는 국가기록물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개인 일기 같은 것이어서 퇴임 후 본인이 갖고 나와 보관하고 있다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이희호 여사가 보관했다. 그런데 이희호 여사도 돌아가시니까 그때 문제가 됐다. 개인이 쓴 메모(사적기록물)이긴 하지만 국정 현안들과 관련된 것이어서 공적 의미도 있는 자료였다. 그래서 원본은 국가기록원에 넘겼고, 사본(1부)은 김대중평화센터에서 보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한 것이 2003년 2월이니까 그 뒤로 20년 넘게 보관만 하고 공개되지 않다가 작년에 내가 그 자료를 보고서 <한겨레>에 연재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

- 그렇다면 그것이 왜 20년이 넘도록 공개되지 않았나?
"책 속에 실린 국정노트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거기에는 한자가 많이 섞여 있다. 게다가 한자가 굉장히 흘림체이고, 일본식 한자가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를 다녀서 그렇다. 한자를 막 흘려서 썼기 때문에 일반인이 읽기가 굉장히 어렵고, 한자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면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공개가 어려웠고, 20년 넘게 봉인돼 있었던 것이다."

- 박지원 의원이 추천사에서 "그의 일상은 공부-사색-메모-말하기-글쓰기의 반복이었다"라고 썼듯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성실한 메모광이었다.
"맞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메모광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회의를 할 때나 텔레비전 앞에 설 때만 공적인 것은 아니다. 회의가 끝나고 집무실이나 관저로 돌아가서도 국정을 고민하고, 그것을 메모하고,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전문가들하고 통화하고 토론하는 것들이 백그라운드(배경)로 깔려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란 그런 자리다. 김대중의 국정노트에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사적인 시간이 없이 24시간 공공의 이익, 국민, 국가운영 등을 위해서 바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런 대통령직의 무게를 모르고 대통령이 됐던 사람이다."

"국가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찰력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뒤 노트에 작성한 '대통령 수칙'.
ⓒ 한겨레출판-김대중평화센터
- '김대중의 국정노트'를 보면서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채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우편엽서)이 떠올랐다. 그때도 정성을 다해 자기의 얘기를 썼듯 국정노트도 정말 꼼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대 옥에 갇혔을 때 썼던 옥중서신을 보면 그가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대통령에게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하겠지만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면 매일 신문이라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신문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안들의 이면에 뭐가 있는지를 사색하는 것이 국정운영의 방향을 바로잡는 데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각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과에 대해서야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대통령은 굉장히 사색하는 자리다. 활자, 즉 책이든 신문이든 읽으면서 조금 더 깊게 사회적 이면을 들여다보고 사색하는 자리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유튜브만 봤다는 것 아닌가? 결국 책이나 신문을 안 봤다는 것인데 유튜브를 통해 단편적으로 돌아다니는 것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올바른 국가운영 방향을 잡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워낙 방대한 정보를 다루면서 정책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터넷 초고속통신망 구축 등 전자정보화를 이끌었는데, 그런 대통령이 아날로그적인 손글씨로 국정노트를 남겼다는 것이 경이롭고 흥미롭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실 컴퓨터 자판도 잘 못 쳤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컴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컴퓨터가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이었다. 1980년대 중앙정보부(중정)에서 수사받으면서 잠깐 수사관과 대화하는 영상자료가 남아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거기에서 인터넷 세상을 예언하는 얘기가 나온다. '인터넷'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컴퓨터에 온갖 정보를 다 집어넣고 그것으로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했다. 당시 컴퓨터가 생소할 때고 본인이 컴퓨터도 잘 쓰지 못하는데 그런 세상을 내다봤다. 이것이 통찰력이다. '국가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볼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면 통찰력인 것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냐 없느냐를 떠나서 앞으로 우리 사회와 나라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를 내다보는 능력이 통찰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왜 '국정노트'를 썼나?
 2003년 2월 24일 오후 5시 15분경 동교동 사저 입구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환영나온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왜 재임시에 이런 국정노트를 쓴 것인가?
"사실 올라온 회의자료를 보고 그냥 말하면 되는데도 굳이 이렇게 자기만의 노트를 쓴 이유가 뭘까? 그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격이 아닐까 싶다. 조금이라도 성과있게 능률적으로 회의를 하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론을 진행하려면 자기가 먼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꼼꼼한 성격이 많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절제를 하고 자기관리를 한 것이다."

- 저자 서문에서는 "국정노트는 '대통령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자기 절제와 인내, 관용, 경청, 대화와 타협의 의지가 실제 국정을 운영했던 대통령의 친필 메모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라고 적었다. 이것이 국가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들이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런 덕목을 갖췄다. 미국은 대학이나 학계, 싱크탱크 등에서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 순위를 매긴다. 그때마다 항상 탑5에 드는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객관적으로 대통령을 평가해서 수치화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기관은 없다. 만약 수치화해서 국정운영을 평가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1위에 오르지 않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긴 하지만 재임 5년의 정책 성과 측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갈 대통령은 없다고 본다. 보수진영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와 고도성장을 이뤘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18년'이라는 장기집권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5년 만에 IMF 극복, 정보화고속도로망 구축, 일본문화 개방,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도입,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등을 해냈다. 5년 만에 이런 성과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대통령마다 잘한 정책, 못한 정책이 있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잘한 정책이 많은 대통령은 찾기 어렵다."

- 개인적으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적 헌신'과 '책임'이라고 생각하는데, 김대중의 국정노트가 바로 그것을 잘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통령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자리"('공적 헌신')라고 생각했고, "대통령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과 그걸 지탱하기 위한 성실함"('책임)으로 일관했다.
"맞다. 꼼꼼하게 쓴 국정노트를 보면 대통령이 퇴근한 이후에도 항상 국정을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24시간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쓰이는 시간이다. 그런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용산 대통령실은 대통령부터 신문 자체를 안 봤던 것 같다"

-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런 덕목과는 정반대였다. 사적 이익에 몰입한 대통령이랄까?
"윤석열 전 대통령은 우선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많이 마시면 정책이나 국가 현안을 고민하고, 지시할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시간을 갖기 어렵다. 그러면 정책 결정 등에서 자꾸 문제가 생기고, 관료사회를 제대로 통제하고 지휘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여 일 지났는데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든다. 대통령은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하는 자리다. 폼잡고 권위를 내세우면 안되는 자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폼만 잡았지 실제로 국가를 돌아가게 하는 데서 한 일이 없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잘 알고, 지시하고, 점검해야 하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것을 전혀 안 했다. 국정이 무너져 있었고, 지금은 그것이 정상화되고 있는 과정이다."

- 책에 보면 2024년 4월에 용산 대통령실 비서관과 점심을 함께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이 김대중의 국정노트를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는데, 그 비서관이 "윤석열 대통령은 가치와 지향이 다른데 굳이..."라며 필요없다는 투로 답변했다고 회고했다. 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김대중의 국정노트를 정독했다면 달라졌을까?
"그때 용산 대통령실 앞에 있는 고깃집에서 비서관과 점심을 먹었다. 그때는 여당(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했을 때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 '술을 많이 마신다', '너무 즉흥적이다', '정보를 유튜브에서 얻는다'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마침 제가 '김대중의 국정노트'라는 연재를 하고 있어서 '그 연재를 봤냐?'라고 물었더니 '안 봤다'고 하더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겨레>를 굳이 볼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용산 대통령실은 대통령부터 조중동을 포함해서 신문 자체를 안 봤던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나면 <한겨레>를 비롯해 주요신문들의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꼼꼼하게 다 봤다. 다 읽으면서 사회면의 1.2단 기사라고 해도 눈에 띄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신문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안들을 집대성해서 그날의 이슈를 보여주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섭렵하지 않고 유튜브에만 의존해서는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나 정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니까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것이라고 오판한 것 아닌가?

대통령은 열심히 공부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관료사회를 움직여 정책에서 성과를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시 '좌익 척결'을 많이 얘기했다. 그래서 '그런 것 말고 정책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김대중 노트를 보면 그런 것들이 담겨 있다'는 얘기를 그 비서관에게 하면서 '김대중 국정노트를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회의 하나 할 때마다 사전에 얼마나 철저하게 예습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은 이래야 하니까 윤석열 대통령도 이것을 보면 자기성찰도 하고 좋지 않겠냐?고 얘기했는데 책에 쓴 그대로다.

일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으니 볼 필요가 없겠다는 투였다. 그러니까 진보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진보, 보수를 떠나 대통령만이 갖고 있는 외로움, 성실함, 결단 등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얼마나 고독한 자리인지,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인지 안다는 것이다. 그런 공감대를 갖고 있으면 대통령으로서의 덕목이나 행동 같은 것들 중에 좋은 것이 있으면 따라하면 된다. 그런데 진보, 보수 이념으로 나눠서 진보 대통령이 한 것이니까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보수 대통령의 모범을 따라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텐데 진보, 보수를 떠나 모든 대통령들은 적어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자기를 바쳐야겠다는 소명 의식과 책임감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런 소명 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러니까 나중에 '그깟 대통령 3년 하나, 5년 하나 마찬가지'라고, 대통령직의 무게를 완전히 부정하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 쉽게 대통령이 됐으니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그냥 한번 왔다가 권력 한번 휘두르고 가는 자리로 생각했던 것 아니겠나?"

"권력자는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꺼리면 안된다"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이 열린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 그렇게 국정노트를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었다고 보나?
"저는 성공한 대통령이었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할 때는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지 못했다. 아들 2명이 구속됐고, '동교동계가 전횡한다', '호남을 너무 챙겼다' 등의 비판도 있어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만약 김대중 정부가 실패한 정권이었으면 정권교체가 됐을 것이다.

또 하나는 정책 성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 중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카드 발급을 남발해 가계부채가 폭증했다는 '카드 대란' 등이 있지만 그런 것 외에는 실패한 정책들은 많지 않고, 성공한 정책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임기 5년 동안에 이렇게 정책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보통신(IT)과 사회복지, 남북관계 등에서 명확하게 성과를 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아질 것이다."

- 이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김대중의 국정노트에서 뭘 배워야 할까?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이 되어야 하나'라는 질문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사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관료들을 움직여서 정책을 실행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뛰어난 것 같다. 지금까지 한 회의를 보면 허투루하는 얘기가 없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얘기를 한다는 것은 본인이 그만큼 그 전에 그 문제를 고민하고 공부했다는 얘기다.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얘기를 통해서 관료들을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관료들을 움직여서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다.

인사도 그렇다. 아직 장관 인사(이재명 대통령은 6월 23일 국방부와 통일부, 외교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기자주)는 나지 않았고,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인선을 보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 중심으로 인사를 했다. 가령 젊은 여성 총리 발탁 같은 상징적인 인사보다는 김민석 의원처럼 본인과 잘 알고 호흡이 잘 맞고, 국회의원을 해서 행정부처와 관료들을 잘 장악하고 바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중용했고, 수석비서관들도 당장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웠다. 일은 잘할 것 같은 실용주의적 인사여서 참신하다는 느낌을 주는 인사는 별로 없다.

김대중의 국정노트에는 정치에 관한 부분들도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동안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7번이나 여야 영수회담을 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여야 영수회담을 가장 많이 한 대통령이다. 이회창 총재와 여야 영수회담을 하기 전에 영수회담을 어떤 자세로 임할지, 무슨 얘기를 할지 등을 빽빽하게 메모했다. 1998년 무렵이면 보수가 주류인 사회였고, 한나라당이 국회 다수당이었다. 그런 구조적 측면이 있어서도 그랬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책 추진과 관련해 야당을 최대한 설득해서 야당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라고 생각했다. 이회창 총재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반박할 것은 반박하면서도 들어줄 것은 들어주려고 노력하면서 정책을 성공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이재명 대통령도, 민주당 정부도 배워야 한다. 물론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이니까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입법이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대선 결과에서 보듯 국민의 41%가 여전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 야당을 설득한다는 것은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상호 전 의원을 대통령실 정무수석에 앉힌 것은 야당에 바람직한 신호를 줬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대통령의 사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많이 했다. 국민들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이것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장 크고 극명하게 차이 나는 점 중 하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를 안 했다. 자기 아내를 둘러싸고 수많은 의혹들이 불거졌는데도 사과하지 않았고, 총선에서 참패했는데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사실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은 굉장히 쉽지 않다. 참모가 '이거 사과해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대통령 본인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든 언론에서 '이것은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했다'고 하면 마음을 돌렸다.

권력자는 국민에게 이렇게 고개 숙이는 것을 꺼리면 안된다. 그것을 꺼리는 순간에 민심과 멀어지고 오만한 길로 가기 쉬워진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에 오광수 민정수석을 바꾼 것은 잘했다고 본다. 역대 모든 정권들이 초기에 여러 명이 낙마했고, 어쩌면 이건 불가피한 일이다. '바꾸면 밀린다'는 생각에 자꾸 버티려 하지 말고, 여론과 언론이 지적할 때 빨리 과감하게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것도 국민의 여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민정수석을 바꾼 것은 잘했다고 본다.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되면 날이 갈수록 자기는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 그것이 최고 권력자의 속성이고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면 대국민 사과를 하기가 싫어진다. '나는 잘했는데 국민들이 잘 몰라서 그렇고, 국민들이 이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럴수록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자기절제는 이재명 대통령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가져야 한다. 민주당이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법안이든 밀어붙이면 못할 것이 없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이 법안이 지나치지 않는가 돌아보고 절제할 필요가 있다. 야당 때보다 훨씬 절제하는 자세를 민주당이 가져야 한다."

"보수 대통령들은 이념 중시, 오히려 진보 대통령들이 실용주의적"
 제16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과의 회담을 앞두고 인수인계를 위해 작성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노트.
ⓒ 한겨레출판-김대중평화센터
- 김대중의 국정노트에 흐르는 기조 중 하나가 '실용주의'가 아닌가 싶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도 과거의 '전투적 진보'에서 '중도실용주의'로 전략, 기조를 바꾸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실용주의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도 상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문제는 '어떤 길로 가느냐'가 아니라 '그 길로 갔을 때 성과를 거둘 수 있느냐'다. 그런데 진보도 그렇고, 보수도 그렇고, 가치에 얽매이게 되면 '저 길은 진보가 가는 길인데', '저 길은 보수가 가는 길인데' 하면서 '우리는 이 길로 가야지' 했다가 정책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굉장히 실용적이었다. 그래서 보수적인 인식도 많이 했고, 보수적인 의견도 많이 듣고, 보수적인 정책도 많이 받아들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이 공격받는 것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노동 유연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아직도 노동계나 진보진영 일부에서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 당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정리해고를 안 받아들이면 돈(IMF 차관)을 못 빌려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리해고를 반대했던 사람이다. 자서전을 보면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되 그 대신 사회안전망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실용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그런 것들이 IMF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은 맞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한미 FTA도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진보진영에서 강하게 반대했지만 막판에 체결됐고, 이것이 한국 경제에 상당히 도움을 준 것도 맞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굉장히 이념적으로 행동했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진보 대통령들이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렇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렇다. 아마 이재명 정부도 그렇게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히려 이념에 더 사로잡힌 것은 보수 대통령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등은 훨씬 더 이념을 중시하고 이념에 오리엔티드 되는(oriented, 지향적인) 국정 운영을 했다. 반면 진보 대통령들은 진보라는 가치는 버리지 않으면서도 훨씬 더 실용주의적으로 국정 운영을 했고, 정책을 추진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그런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 특히나 말하기보다 경청에 집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에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디제이는 절대 자기 생각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외부인사가) 의견을 말하면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받아 적는다. 그러고는 배석한 수석이나 비서관에게 의견을 묻고 다시 나한테 물어본다. 마지막에 자기 생각을 반드시 밝힌다."(<김대중의 국정노트> 중에서)
"그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벤치마킹해야 한다. 대통령이 먼저 말하게 되면 그 누구도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그 회의의 방향이 그런 쪽으로 진행돼 버린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회의를 할 때나 외부 인사들을 만나면 '어떻게 생각하냐?'고 먼저 물어보고,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어본 뒤에 자기 생각을 밝히고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스타일이다. 인요한 현 국민의힘 의원 등 여러 명의 인사들이 그것을 증언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냈으니 그런 것들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경청하고 나서 자기의 의견을 밝히고 정책방향을 지시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따라서 하면 훨씬 풍부한 토론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것과 완전 정반대였다. "한시간 동안 59분을 떠든다"라고 해서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지 않았나?
"그러면 아무 얘기도 못한다. 경제 부처와 회의할 때도 윤석열 전 대통령은 1시간 중 50분 이상을 얘기했다는 것 아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은 거의 평생 특수부 검사만 했는데 경제를 알면 얼마나 알겠나? 자기가 특수부 검사를 하면서 재벌도 수사했고, 경제비리도 수사해 봤으니까 경제전문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오만이고 착각이다. 그런데 사로잡혀서 자기만 얘기하면 부처 공무원들은 얘기를 못 하고 거기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잘못된 정책이 나오게 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너무 쉽게 대통령이 됐지만 사실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이것이 본인에게도 불행이었다. 그런 윤석열 전 대통령을 모셔와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의힘도 문제다."

[인터뷰②] "이재명 대통령, 오광수 민정수석 사퇴에서 교훈 얻어야"(https://omn.kr/2ea56)로 이어집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