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 섰다 빚에 쫓긴 남자의 30년, 빚 탕감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미선 2025. 6. 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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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푼도 갚지 않은 사람의 빚 갚아주는 제도 아니야... 바닥으로 떨어진 그들에게도 패자부활 필요

[김미선 기자]

 서울 서대문구 한 상가에 임대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IMF 이전 친구 부탁으로 보증을 섰을 뿐인데, 30년 이상의 시간을 저당 잡혀 살았어요."

30년 전 빚 보증으로 제대로 된 직장, 가정, 자녀를 가져본 적 없는 P씨는 12.3 계엄 등으로 대한민국의 시계가 제로인 때 지방 건설 일을 알아보며 낡은 컨테이너에서 하루 하루를 버텼다. P씨는 자신은 써보지도 못한 빚 3천 만 원을 갚기 위해 반평생 안 해 본 일이 없다. 원금 3천만 원에 연체 이자와 법비용 등을 합한 1억 원 넘는 돈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끼니를 거른 그의 발 아래 쌓여 갔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3주가 되어간다. 내란으로 갈기갈기 찢긴 민생 경제와 대외 무역, 개혁과제와 외교 국방 등 새 정부가 챙겨할 업무에 우선 순위가 있을까 싶을만큼 급박한 과제가 산더미다. 대통령이 지속해서 주문하는 것은 "민생"이다. 무엇보다 내수 침체가 심각하다.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 화폐 등의 지원금과 오래된 채무에 대한 빚 탕감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남이 아닌 내가 혜택을 보게 될 소비 쿠폰이나 지원금과 달리 빚 탕감은 다른 이유로 뜨겁다.

내가 낸 세금으로 타인의 빚을 대신 탕감해 준다는 의심과 편견의 색안경을 낀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라는 단어로 그 수혜를 입을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빚탕감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최근 회자되는 '빚 탕감'은 한푼도 갚지 않은 사람의 빚을 갚아주는 제도가 결코 아니다.

30년 가까운 시간, 새정부 출범 때마다 마련된 배드뱅크 제도
▲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 총 30.5조원 기획재정부 임기근 2차관이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공용 브리핑실에서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용불량자", "부실채권" "공적자금"과 같은 생소한 단어가 일반 시민에게까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11월 발생한 'IMF, 외환 위기' 이후다. 금융소비자나 기업이 갚지 못해 발생한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공적자금'은 IMF 이외에도 2002년 LG 카드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난 금융시스템 위기로 위축된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 마련되었다.

신용회복위원회,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회사,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한마음, 희망모아, 국민행복기금, 장기소액연체자지원재단 그리고 새출발기금까지... 운영 주체에 따라 다양한 배드뱅크 제도가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새정부 출범 때마다 마련되었다.

재활용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못해 집 안에 쌓이고 쌓인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씩 있다. 비위생적인 건 둘째치고 물리적 한계가 있는 주거공간에 차오르는 쓰레기는 몹시 불쾌하다. 부실채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재활용 쓰레기라 할 수 있다.

정리하지 않고 누적된 부실채권은 금융회사의 존립을 위협한다. 상환여력과 한도를 넘은 대출계약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은행을 공격하고, 은행과 기업 그리고 나라의 근간을 흔든다. 경제적 파산 선고로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자존심 세고 주체의식 강한 국민은 나라 빚 갚으라고 사재(금 모으기 운동)를 내놓았다. 한푼의 이자나 구상권 청구라는 단서 하나 없이. 그 덕에 대한민국은 3년 만에 IMF 차관을 모두 갚았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의 문턱까지 가장 빠른 시일 내 전세계 최초로 도달했다.

만약 개인의 부실채무를 이와 같이 도와준다면 어떤 미래와 내일이 존재할까? 서두에 언급한 P씨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30년 동안 자신은 써보지도 못한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리고 다시 그 빚을 갚으려 일했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아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하지만 P씨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어느 정도 상환을 했을 때 남은 빚을 정리해주거나 조정해 주었다면,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아마도 직장에 다니고 세금 납부하며 결혼해서 자녀를 출산하는 등 좀 더 밝고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며 살았을 것이다.

새정부가 빚 탕감으로 구제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100만 명이 넘는 이들 중 재기에 성공하여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의 황금기 날려버린 이들이 대상
▲ '코로나 빚 탕감' 규모 커지고 속도 빨라진다... 배드뱅크 본격화 이재명 정부 출범에 맞춰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의 채무 소각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 논의가 본격화됐다. 8일 금융당국과 정치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공약으로 언급된 코로나 대출 탕감·조정 방안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사진은 8일 서울 명동 거리.
ⓒ 연합뉴스
재활용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던 기분 나쁜 경험이 있다고 물건 구매를 중단하지 않는 것처럼, 대출계약과 부실채권도 금융시스템과 경제 생태계에서 끝없이 순환한다. 빚탕감이란 단어를 보곤 갚지도 않은 돈을 탕감해 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구매한 새 물건을 사용하지도 뜯지도 않은 채 버리지 않는다. 대출 계약 후 한 번도 갚지 않는 이들까지 빚을 탕감해주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빚 탕감은 시효관리하며 회수하기 위해 갖은 추심 과정을 거쳤지만, 갚다 갚다 못 갚아서 다중 채무자로, 채무불이행자로 인생의 황금기를 날려버린 이들이 대상이다.

지금은 새정부 출범과 함께 나라의 재건을 이야기하며 내일을 꿈꾸는 시간이다. 빠른 시간에 초고령사회가 되어 버린 한국에 청년 혹은 중장년의 시간까지 몽땅 사장시키는 것은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재 낭비다. 패자부활을 통해 우리 모두 끊어진 성장의 길을 이어 붙여야 할 시간이다. 손이 없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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