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안온하게 품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최은경 2025. 6. 2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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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화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 배지영 작가

[최은경 기자]

책의 '처음'이 궁금한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궁금해지는 이야기들이. '다음 추석에는 두발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라'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페달을 밟는 열살 민재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도 그랬다.

나는 뭔가 간절하게 바라는 게 있을 때마다 보름달을 보며 빌었다. 계획 임신에 자꾸 실패하던 첫 임신 때도, 치료약을 먹느라 둘째 갖는 일을 4년이나 미뤘던 때도 희망을 버릴 수가 없어 보름달이 뜰 때마다 빌었다.

"예쁜 아이를 갖게 해주세요."

그때마다 보름달은 내 소원을 들어줬다. 보름달처럼 환하고 밝은 두 아이가 내게로 왔다. 그 후로 나는 보름달 효험을 믿는 사람이 됐다.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이라는 책 제목에 솔깃한 건 그래서였다. 궁금했다. 보름달이 뜨면 뭐, 뭔데?

사실 나는 이 이야기를 몇 년 전에 미리 봤다. 잘 알고 지냈던 배지영 작가가 짤막하게 쓴 초고를 보여줬다. 책을 읽으면서 어디에서 본 듯 했던 이유다. 배 작가는 그때 내게 보여준 원고지 46매 원고를 220매 정도로 고쳐썼다. 기존 이야기에 '개미 똥구멍 냄새, 쫑찡이, 도둑게, 때 목걸이' 같은, 작가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 넣었다고 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내가 궁금했던 '책의 처음'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마치 내가 궁금해할 것을 알았다는 듯 작가는 114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에 밝혀 두었다.

텅 빈 학교 운동장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던 작가가 어느 날 우연히 혼자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를 목격하고는 생각했단다. '보름달 뜬 밤에 두발자전거를 배우면 무조건 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자란 아이들도 있긴 있겠지'라고.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이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처럼.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2025년 5월 출간)은 <내 꿈은 조퇴>, <나는 진정한 열 살>, <범인은 바로 책이야>에 이른 배 작가의 네 번째 동화다. 지난 16일 배 작가와 전북 군산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내 모습 투영된 주인공들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 배지영 작가
ⓒ 배지영 작가 제공
- 배 작가의 동화에는 예의 바른 어린이가 아닌가 하면 또 어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지만 마음이 사려 깊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아이가 매번 등장하는 것 같다. 이번 소설의 '민재'도 그렇다.

"그건 내 모습이 투영된 것 같다. 자랄 때 조금 버릇없이(?) 컸고 지금도 나이 많은 자매들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는다. 엄마는 나의 버릇없음을 허용해줬고 나도 엄마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어린이였다."

- 개인적으로는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예의 없는 것, 버릇 없는 걸 잘 못 보는 편인데... 작가가 동화에서 쓴 엄마의 모습은 그런 걸 좀 많이 허용하는 듯 보인다.

"독자들이 그러더라. 엄마가 너무 착하다고(웃음). 허용이라기보다는... 나도 그렇고, 우리 엄마도 그런 아이들 모습도 예쁘다고 봐줬다. 어릴 적 팥죽 먹을 때도 나는 새알을 안 먹고 밥상에 뱉어냈는데, 그게 보기 싫게 쌓여도 엄마가 다음부터 밥 안 준다는 소리를 안 했다. 그 옛날 시골은 지금보다 더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엄마는 혼내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안전망 같은 거였다."

- 동화 속에 등장하는 좋은 어른의 모습은 작가의 경험에서 왔다는 말인 건가.

"그렇다. 둘째 아이는 뭐에 하나 꽂히면(볼링, 큐브, 포켓몬 게임, 지금은 옷) 가산을 탕진하는 성격이었는데, 해도 되는 선을 있는 대로 높여 놓고 그냥 거기까지는 해도 괜찮다 하는 마음으로 키웠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애들이 엄마 머리 꼭대기에 있다', '애들이 엄마 이용한다'라고 해도 애들 상황에 맞게 그 선을 조정하며 잘 키웠다.

내가 뭘 못 하는가 하면, 아이가 화내거나 그랬을 때 아이 심기를 계속 살펴야 하는데 그런 데 에너지를 쏟는 게 싫다. 싸우기 싫어서 원만히 해결하는 편이다(웃음). 어차피 스무 살 되면 끝이지 않나. 나도 떠나왔고 아이들도 떠나갈 테고. 때가 되어 헤어졌을 때 엄마랑 사이가 좋으면 좋겠다. 엄마 생각나면 좋겠다. 그리워할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내가 쓴 동화의 어린이들은 어쩌면 나를 닮은 어린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변 상황도 꼼꼼히 취재한다. 이번 책에 등장하는 호수공원자전거교습소 같은 것도 다 취재한 내용을 썼고, 예전에 <나는 진정한 열 살> 쓸 때도 생존수영 가르치는 강사분들 인터뷰하고 수영장에도 몇 번이나 갔었다. 그리고 애들을 키울 때 이웃(직장 다니는 친구의) 아이들을 정말 많이 데리고 다니면서 이야기를 듣고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동화를 쓸 때 적지 않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어려운 걸 해내는 기쁨, 아이들도 느꼈으면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 겉표지.
ⓒ 주니어김영사
- 아들과 아버지, 할아버지, 3대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실제로 가족 이야기를 많이 쓴 터라,(<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3대의 추억 거리를 담은 책이기도 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시골의 정취, 지금은 여기에 새만금공사를 해서 도둑게가 하나도 없지만 예전에는 있었다. 그런 것들을 넣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글을 쓰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예감이 들 때, 나도 울컥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내게는 없었고, 그런 아버지도 없었는데."

- 최근 방영하는 <미지의 서울>에서도 할머니가 부상으로 육상 선수라는 꿈을 잃고 힘들어하는 손녀에게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이다"라며 살자고 해주신 게 생각난다. 그렇게 말해주는 할머니나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는데, 동화 속 할아버지가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맞다. 애들을 안온하게 품어주는 존재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존재가 나는 엄마였다."

- 책 속에서 '어린이 말을 잘 들어주는 엄마'와 '엄마 말을 믿어주는 어린이'라는 문장이 좋으면서도 고개가 꺄우뚱 해지더라. 현실에서 이러기는 좀 어렵지 않나? 어린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부모도 많지 않을 것 같고, 아이들도 어른 말을 잘 안 믿는 시대 아닌가? 약간 판타지 같았다.

"맞다. 그래서 판타지다. 그런데 나는 어린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서(웃음). 이번 책은 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넣어보자 해서 넣었다. 구체적으로 지금은 없는 것들, 도둑게 이런 것들. 그런 것이 이제는 없다. 그리고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를 민재처럼 이렇게 좋아할 수도 없다.

나는 아직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야기를 꾸며 내는 걸 좋아한다. '아는 아이' 같은 어린이 이야기를 동화로 쓰는 이유다. 완전히 새로운 걸 꾸며내려면 아직은 힘들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박완서 선생님 작품도 맨날 비슷한 것 같은데 매번 달랐다. 나도 그렇게 가고 싶다."

-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할 말이 있다면.

"자란다는 건, 내가 못하는 걸 하나씩 알아가며 좌절하는 과정 같기도 하다. 친구들은 쉽게 하는데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걸 끝까지 해내고 나면 밀려오는 기쁨을 이야기 속 아이가 만끽하기를 바랐다. 읽는 어린이들에게도 그 기쁨이 가 닿기를 바라고."
 배 작가의 시아버지 납골묘가 있는 곳을 지나 열살 민재가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두발자전거 대장정의 길을 반대로 되집어 왔다. 군산 수산리 인근.
ⓒ 최은경
군산 갤러리카페 공감선유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배 작가의 시아버지 납골묘가 있는 곳을 지나 열 살 민재가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두발자전거 대장정의 길'을 반대로 되짚어 왔다. 옥구파출소와 옥구읍행정자치센터가 있는 회전로를 지날 때, 배 작가가 말했다.

"여기가 거기, 책 속에서 엄마가 스케치북 들고 있던 곳... 민재가 자전거 타고 이 길을 간다고 상상하면서 썼어. 지금은 평지화 되었는데, 여기서 수산리 갈 때 큰 언덕이 있었대. 배뫼산은 그걸 생각하면서 쓴 거야."

현실이 상상이 되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기분을 그때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동네 시골길을 차로 달리는 동안 익숙한 장면이 지나치는 듯했다.

민재가 왼발 오른발로 페달을 열심히 밟는 모습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은 할아버지의 응원 소리가, 혼자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배뫼산을 넘고 좋아서 혼자 팔딱팔딱 뛰는 모습이, 행여나 넘어져 다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도 감동했을 엄마아빠가, '할아버지를 태우고 강둑까지 가고 싶다'는 말을 속으로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민재가.

<학교 운동장에 보름달이 뜨면>은 '중학년을 위한 한뼘 도서관' 시리즈 69권으로, 주니어김영사가 펴냈다. 중학년은 '고학년과 저학년의 중간인 학년. 초등학교 3, 4학년'을 이르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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