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이 아닌 일상을 돌봅니다"...건강주치의제도, 국내.외 사례는?

홍창빈 기자 2025. 6.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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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출범과 제주형 건강주치의 제도] (2) 타 지역 사례와 시사점
유럽은 주치의 제도 일상화...국내에도 '취약계층' 중심 확산
주치의는 지역 건강 '문지기'...환자 중심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료 소외지역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과 아동을 대상으로 포괄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제주형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분야 전국적 관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서 제주도에서 건의한 건강주치의 제도를 반영하면서, 새정부 국정과제로 제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쏘아 올린 일차의료 혁신의 시동이 새정부의 주요 국정의제로 다뤄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제주도에서 당초 계획한대로 국내에서 선제적 시행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여러가지 과제들이 있다. <헤드라인제주>는 새정부 출범에 즈음해 제주형 건강주치의 제도와 관련해 그동안의 추진 상황을 정리하면서 향후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쟁점과 과제, 타 지역 사례 등에 대해 2회에 걸쳐 보도한다.  <헤드라인제주>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분명 세계적으로 살펴봐도 훌륭하지만, 그 실력을 실제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체계'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지역마다 많은 병의원들이 있지만, 대부분 개별 의사가 전문과목을 기반으로 단독 운영하는 형태로, 진료중복과 의료낭비가 이어지고 있다.

감기나 고혈압, 요통과 같은 경증 질환도 과잉진료를 유발하고, 환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아 환자에 대한 연속성과 책임성도 약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의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건강주치의' 모델이다.

'건강주치의'는 환자가 자신의 건강을 장기적으로 맡길 수 있는 '단골 의사'를 의미한다. 단순히 병이 생겼을 때 치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질병 예방과 상담, 교육을 진행하며, 질환을 조기 발견해 진료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2차 의료기관 진료를 받도록 함으로써 1차 병원과 2차 병원, 3차 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를 구성해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도록 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의료 취약지역 주민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원격협진 모습.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주형 건강주치의 실행모델(안)은 의료 소외지역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과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국내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건강주치의제 도입 추진은 제주도가 처음이다.

반면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는 시행 대상과 내용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미 시행되고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고양특례시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일차의료 개발센터, 서울 성북구보건소의 어르신주치의 사업이 대표적 우수 사례로 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의 다른 지자체들도 앞다퉈 '어르신 주치의', '경로당 주치의', '초등학생 치과주치의' 등 다양한 주치의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거점병원-일차의료기관 협업 '지역중심 돌봄' 구축, 일산병원 사례는?

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설치한 공공기관 중심의 모델 센터로, 건강보험 기반의 일차의료 전달체계 개편을 위한 거점으로 조성됐다.

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의 일차의원들과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이미 여러 의원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중 단독개원의원은 재택의료를 시작하고 있으며, 공동개원의원은 재택의료센터로 성장하고 있다.

이상현 일차의료개발센터장은 "재택진료는 단순히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을 넘어, 병원 중심에서 환자의 생활 중심으로 의료를 옮기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며 "동네의원이 그 연결고리를 맡는다면, 진짜 지역 중심 돌봄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센터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3명과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영양사, 운동처방사 등 10명이 활동하며 의료와 돌봄의 통합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환자 관리는  △건강군(1군) △만성질환군(2군) △거동불편군(3군) △와상군(4군)으로 분류해 등록.관리하고 있으며, 각 군별로 진료와 비대면 모니터링, 재택방문, 사회복지 연계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환자를 관리하면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이 심각해 지기 전에 관리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환자의 부담도 줄어든다. 결과적으로는 환자 가족의 부담도 줄어들고, 건강보험에서 지출도 감소하는 등 사회적으로는 이익이 되는 것이다.

현재 750명 가까이 환자를 관리하고 있는데, 센터 내 의사들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개원한 의원들과 협력해 외래진료부터 의사들이 환자들을 찾아가는 '재택의료'까지도 진행하고 있다.

또 지역사회와 연계해 만성질환자와 고령 환자들을 대상으로 식이·운동 교육, 심리정서 지원 등을 제공하는 건강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들은 자조모임과 함께 비대면 관리를 통해 생활습관 개선 정보를 공유하며 자가 건강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사회 연계 일차의원 건강자조모임. 사진=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
지역사회 연계 일차의원 건강자조모임. 사진=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

일차의료개발센터 박성배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일차의료는 병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는 것"이라며 "그 사람을 오랫동안 알고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환자들은 의사들의 진료를 받고, 필요에 따라 다학제팀이 개입해 식이요법과 운동, 사회심리적 연계 등 관리를 받고 있다.

다학제 팀의 활동은 환자의 진료 활동을 넘어 만성질환자 및 복합질환자 관리, 동시에 여러 종류의 약물을 복용하는 '다제약물' 복용자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일차의료개발센터 박혜민 전문의는 "의료와 돌봄이 앞으로는 따로 갈 수 없다"며 "그래서 그 둘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성배 전문의도 "일차의료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며 "간호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운동처방사, 필요하면 약사와도 함께해야 환자에게 지속적이고도 포괄적인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당뇨 및 심근경색 병력이 있는 60대 만성질환 환자가 다학제팀의 식이,운동 등 연계활동과 지역사회 건강관리자원 활용을 통해 6개월 만에 혈당이 정상화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알코올 의존과 당뇨 등 복합질환을 가진 60대 여성도 다학제팀 개입으로 식사, 간 기능, 우울, 음주 모두 개선됐다.

만성 신부전과 당뇨, 협심증 등 질환을 가진 90대도 이전에는 식사를 거부하거나 식사를 하더라도 구토를 하는 등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었는데, 다학제팀의 도움으로 약물 조정과 식사, 운동 등을 통해 신체 기능이 회복됐다.

암 말기 환자, 뇌신경정신질환인 섬망을 앓는 노인 등 가정에서 임종을 희망하는 환자들을 위해 재택의료와 정서적 지지, 보호자 교육을 결합한 '가정임종 케어'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 90대 폐암 환자는 병원 대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와 고양특례시 관계자들이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워크숍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이밖에도 일산동구보건소, 종합사회복지관 등과 협력해 건강 자조모임, 낙상 예방교육, 치매 인지 훈련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지역사회와 의료기관이 함께 만드는 통합 돌봄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상현 센터장은 제주도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건강주치의 제도와 관련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센터장은 '일회성 시범사업'이 아닌 '체계'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책이 바뀌더라도 센터가 지자체 내 건강관리의 허브로 살아남으면, 그 자체로 지속 가능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시스템은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치매 안심센터 등도 거의 10년에 걸쳐 정착됐다"며 그 구조 안에서 노인건강지원센터가 될 수 있다면, 지금 있는 구조를 활용하는 게 현실적일 수 있다"며 기존 조직을 재활용하는 것이 장기적 제도화를 위한 현실적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상현 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장. ⓒ헤드라인제주

◇ '지역사회 통합돌봄' 어르신 건강주치의...성북구 지역 사례는?

서울 성북구는 2018년부터 보건소를 중심으로 '어르신 건강주치의 사업'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통합돌봄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대상은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가진 건강취약계층 어르신이다.

전담 방문간호사와 행정인력으로 구성된 건강주치의팀이 기초 건강조사를 실시한 뒤, 대상자가 지역 내 동네의원 중 한 곳을 주치의로 직접 선택하면 1년 단위로 등록해 정기적인 상담과 진료를 받는 방식이다. 

보건소는 건강관리계획 수립, 예방교육, 복지 연계, 3만원 상당의 건강쿠폰 제공(연 1회) 등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정서적 지지를 위해 매년 건강마당, 케어컨퍼런스 등 지역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참여 어르신의 98%가 건강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하는 등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정책보다 구조를 남긴다'는 목표로, 성북구는 지역과 일차의료기관이 함께 어르신의 삶을 지켜내는 '지속 가능한 돌봄'을 실천하고 있다.

◇ 주치의는 국민 건강 담당하는 '문지기'...정책 개혁과 보상 강화로 '일차의료 체계' 공고화

영국과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과거부터 일차의료 및 주치의 문지기 모델이 운영돼 왔고, 거듭되는 정책 개혁과 보상 강화로 일차의료 체계가 더욱 공고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경우 국민보건서비스(NHS)를 기반으로 전국 단일 공공시스템을 적용해 낮은 의료비와 높은 국민건강을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6년 민간 중심 사회보험 방식과 공보험이 혼합된 형태의 보건체계를 운영하면서, 주치의 제도를 통해 전체 의료 문제의 약 95%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치의가 국민들의 건강을 담당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고, 전문의에게 진료를 의뢰하는 경우는 6%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프랑스도 예방·건강증진·진료 조정 및 진료계획 수립, DMP(개인의료기록) 작성하는 등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자율적으로 주치의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주치의를 경유해 진료를 받을 경우 경제적으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주치의 제도는 국민 건강권 보장은 물론, 지역사회 일차의료 확립, 초고령사회 복합 만성 질환 시대의 효과적 대응책, 환자 중심 진료의 조정과 통합을 통한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의 측면에서도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주치의는 '한 사람의 일상' 돌보는 것...정책 바뀌어도 구조는 남아야"

제주형 건강주치의 도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고병수 탑동365의원 원장은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최대한 높은 수준의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해 오래전부터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주치의제도를 도입했다"며 "프랑스는 2004년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전국적 차원에서 주치의 제도를 성공적으로 도입했고, 2003년 독일은 국민 일부를 대상으로 가정의 중심의 선택적 도입을 한 후 확산에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선진 복지 국가 중 이런 흐름에서 벗어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도 국민 건강권 보장과 양질의 지속 가능한 보편적 건강 보장을 위해 주치의제도 도입을 더는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병수 탑동365의원 원장. ⓒ헤드라인제주

고 원장은 "지금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건강주치의 제도는 단지 한 번의 진료가 아니라, 환자와 의료진이 관계를 맺고, 일상을 함께 돌보는 시스템"이라며 "제도보다 구조를 남겨야 한다. 정책은 바뀌지만, 구조는 남아야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25개 전문과목이 전부 개원하면서 중복과 낭비가 발생하고, 의료 전달체계가 무너졌다"며 "의료가 너무 쇼핑식으로 흘러간다.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다 보니 진료의 연속성도, 책임성도 없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이어 "환자와 의사가 꾸준히 만나야 진짜 질 높은 의료가 가능하다. 주치의제도는 단골 의사를 만드는 일"이라며 "등록을 통해 환자의 생활습관, 가족력, 건강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비로소 진짜 치료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고 원장은 "양질의 상담과 교육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수가 보상이 거의 없어 의사들이 실천하기 어렵다"며 "제대로 된 건강주치의 제도를 운영하려면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의 수가 체계로는 의사들이 시간 들여 환자와 관계 맺는 구조를 실현하기 어렵다. 주치의제도가 작동하려면 수가 개편이 필수"라며 "지속적인 상담, 교육, 등록 관리 같은 보이지 않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수가로 인정해줘야 건강주치의 제도가 지속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지난 3월 열린 제주형건강주치의 시범사업 공청회에서 실행모델 및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고병수 원장.

고 원장은 "의료비 지출은 줄고, 건강은 좋아지고, 신뢰는 쌓이는 구조의 주치의제도 효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며 "제주형 건강주치의는 단지 노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위한 건강 돌봄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인센티브를 주며 등록을 유도하고, 상담과 교육 중심의 진료를 활성화하려 한다"며 "지역을 기반으로 건강을 책임지는 구조, 그것이 앞으로의 의료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과 취재협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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