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 봐도 눈물 나는 광경... 한국에 이런 곳 또 있을까
위기와 생태학살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과연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다. 다른 세계는 물론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다른 행성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아직 푸른 하늘과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무와 새들, 함께 호흡하는 뭇생명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자 한다. <기자말>
[변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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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의 버드나무 |
ⓒ 이인식 |
해지는 저녁과 동틀 무렵 새벽의 우포늪은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인식 선생은 해가 막 솟기 전 여명의 순간 우포늪을 "한 편의 시와 그림"이라고 표현했고 해가 지고 난 직후의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서 "말이 필요 없다. 되게 예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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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식 선생 |
ⓒ 이인식 |
우포늪은 낯선 자연의 소리로 가득했다. 우포에 머물렀던 사흘 동안 우포늪을 다 볼 수도 없었고 그나마 본 것은 글로 담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우포늪, 그 안에서 평화롭게 유영하는 새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몰라 가슴이 동동거렸다.
"이제 새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거든요. 고니는 4~5천km 가야 해요. 왕복으로는 약 8천km인데 서울과 부산을 20배 왕복하는 수준이에요. 쟤가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큰고니고, 얘가 큰 부리 큰 기러기인데 큰고니도 알고 보면 채식주의자예요. 우포늪이 만들어 놓은 열매나 풀뿌리를 먹지요."
4000여 마리 기러기가 우포늪을 떠나고, 남은 150여 마리가 농경지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늪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끼욱" 고음으로 소리를 내자 노을이 내려앉은 우포늪에 웅장한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다른 물새들이 멈칫 고개를 들어 화답하고 다시 저녁 만찬을 즐겼다.
큰기러기와 쇠기러기는 러시아의 콜리마, 아디날, 캄차카 지역에서 번식하고 가을이 되면 우리나라의 철원 평야, 우포늪, 주남저수지, 서해안 및 남해안의 호수와 농경지로 이동해 겨울을 보낸다. 우포늪을 찾는 새는 약 250종이다. 칼새의 경우 땅에 내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잠자리만 먹고 그대로 지나간다. 유럽 칼새는 매일 새벽이나 황혼녘에 30분가량 서서히 비행고도를 낮추는데, 이때 잠을 자는 것으로 추정한다. 우포늪에 살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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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의 큰고니와 큰기러기 |
ⓒ 이인식 |
1991년 3월 구미공단에 있던 두산전자에서 페놀 30톤 이상이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페놀은 낙동강을 따라 밀양과 함양, 부산, 마산까지 흘러들어 1천만 명이 사용하는 상수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민들이 구토, 설사, 복통 등을 호소했고 수조에 금붕어가 모두 죽어 나갔다. 유산한 임산부들이 아무리 신고해도 시 공무원들이 받아주지 않자, 가톨릭으로 제보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제보를 받은 가톨릭여성회관 조현순 관장은 마산시청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페놀은 독일에서 신속한 사형 집행과 홀로코스트를 위해 사용하기도 했던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물질이다.
"저는 전교조 상근자로 평소에도 회관을 사용하기도 했으니까 위로하러 갔어요. '아이고 단식하느라 수고가 많으시죠' 했더니 내 손을 딱 잡는 거야. 해직 교사니까 일 시켜 먹기 좋잖아. 내가 또 깡다구가 있으니까.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잖아요."
페놀 사건을 계기로 '마산창원공해추방시민운동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이인식 선생은 교육과 환경을 결합한 교육 환경운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페놀 사건을 밝히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때 100개 정도의 늪이 존재했으나, 우포늪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수문으로 막히면서 자연늪이 사라진 기록을 찾았다. 선생은 자연정화 장치인 늪의 기능을 확인하고 습지 복원 운동을 시작했다. 우포늪을 보존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만들어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을 활동 목표로 삼았다.
2000년도에 낙동강 하구 수문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습지와 새들의 친구'라는 단체를 만든 이유도 습지가 수많은 생명과 지구 생태계를 지탱하는 소중한 보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개발로 파괴된 습지와 철새들의 삶터를 새들의 친구인 인간이 함께 지키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런 늪이 있으면 공장 오염이 터져도 늪이 흡수해 주잖아요. 일단 완충 저류조 역할을 하거든요. 일반 공장지대 옆에 연못 같은 거 많이 만들어주는 이유가 그래서거든요. 페놀 사고 이후 우포늪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우포늪은 중요한 자연유산입니다."
습지 보전과 주민 갈등, 그리고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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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 자유로운 새들의 자리 |
ⓒ 이인식 |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선생이잖아. 수업 시간에 100번 배워봤자 기억이 안 나는데, 우포늪에 와서 직접 보고 얘기한 건 기억하거든요.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보는 자연과 농사의 중요성을 동시에 느끼는 거죠."
귀환 준비
우포늪은 한때 자취를 감춘 따오기의 귀환으로 유명하다. 한반도에서 멸종되었던 따오기 복원을 위해 이인식 선생과 조류학자 김수일 교수가 의기투합했다. 안타깝게도 김수일 교수가 2005년 작고하면서 따오기 복원 사업은 차질을 빚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전문가와 언론은 김수일 교수가 없는 상태에서 따오기 복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그럴수록 이인식 선생의 마음은 더 탄탄하게 견고해졌다.
"내가 복원해 낼 거야. 나는 서식지 복원 전문가이고, 많은 생명을 보고 있잖아. 김수일 교수와 내가 열심히 준비했는데 반드시 성공시켜야지.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서 다짐하는 거야. 반드시 성공시켜서 김수일 교수에게 욕 안 되게 하겠다는 다짐이었어요."
2008년 10월 17일, 중국이 따오기 한 쌍을 기증하면서 한반도에서 사라졌던 따오기가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뒤이어 10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경남 창원에서 열린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선생은 우포늪의 생태적 가치를 알렸다. 이 총회는 한국의 습지 보존 인식에 전환점을 가져왔으며, 이후 각 지역에서도 습지 복원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에서 40년 만에 날아오른 따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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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서 멸종되었던 따오기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는 모습 |
ⓒ 이인식 |
옛날에 따오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는 백로처럼 흔한 겨울 철새였다. 따오기의 귀환은 사라진 종의 복원은 물론, 야생동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주변이 변화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야생동물 서식지 보존 운동가 이인식
이인식 선생은 인터뷰하다가도 물새들의 소리에 귀를 쫑긋한다.
"잘 들어보십시오. 여기 재미납니다. 무슨 소리가 나죠? 바삭바삭바삭.... 저 소리. 애들이 먹는 소리가 들릴 거예요. 꼭 물소리 같기도 하고. 애들이 물 위에 식물들을 입안에 넣고 먹어요. 이게 식사입니다."
불과 10여 미터 앞에 물새가 고개를 숙여 물 밤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바삭거렸다가 촵촵거리는 소리에 숨을 죽였다. 고요함과 간혹 불어오는 바람만 가득한 호수에서 물새들은 고개를 숙였다 들기를 반복했다. 귀를 모으자 훨씬 크게 들리는 소리. 낮에는 들을 수 없는 소리라고 했다.
"고라니가 어디에 사는지 아세요? 고라니는 Water deer라고 해요. '물사슴'이에요. 습지나 물가 근처를 자주 다녀서 붙은 이름이지요. 숲이나 산에 있는 이유는 연애하거나 둥지를 만들고 숨기 위해서입니다. 새순을 먹고 사는데, 어디에 사는지 보려면 먹이활동을 어디서 하는지를 보면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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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라니가 우포늪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 |
ⓒ 이인식 |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24년 창녕군 전역(530.51㎢)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높은 생물다양성 가치를 지닌 우포늪 습지보호지역과 억새 군락지로 알려진 화왕산 군립공원 두 곳이 핵심구역이다. 우포늪은 국내 최대 내륙습지이자 자연 배후습지다. 특히 큰기러기, 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등 10여 종의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종 다양성의 측면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겨울 철새들이 오가는 중간 기착지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창녕도 다른 시골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인구 5만 6천 명을 사수하자는 플래카드가 걸릴 정도로 창녕도 인구문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귀촌 귀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순천만에 가면 인안 초등학교가 있는데 15~16명도 안 돼서 폐교 위기였어요. 제가 강의 가서 순천만을 예로 들어서 학교 살릴 방법을 말해줬어요. 지금은 100명이 넘었어요. 제주 선흘 초등학교도 폐교 위기였어요. 그곳은 동백 람사르 습진데 지역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지금은 학생이 120명 가까이 와서 본교가 됐어요. 살기 좋으니까, 화가, 사진작가, 글 쓰는 사람들, 예술가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어요."
이인식 선생은 지역 언론에 우포의 역사와 생태를 주제로 매월 글을 연재하면서 지역 역사 공부와 탐조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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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의 석양 |
ⓒ 이인식 |
흙 대신 콘크리트 골조물을 사랑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럴수록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훼손되고 파괴되었다. 하나로 연결되었던 산과 들, 강과 숲길이 끊어졌다. 늘 다니던 길이 사라지자, 야생동물들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다치거나 죽임을 당했다. 국립생태원 자료에 의하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발생한 동물 교통사고로 1만 4566건에 달하는 생명이 사라졌다. 고양이, 고라니, 너구리, 개, 노루, 오소리, 멧돼지 순이다.
이인식 선생은 차에 치여 죽거나 다친 동물들의 안식처인 자연동물원 건립을 자신의 마지막 과제로 설정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동물원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을 구조해서 치료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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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포늪 비밀의정원 |
ⓒ 이인식 |
인간과 자연의 지속 가능한 공존은 이 희망의 소리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생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이인식 선생은 희망의 출발점을 지역으로 보았고 결승점도 지역으로 여겼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 큰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생태환경의 복원은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들의 복원만이 아니라 생명과 생명이 날마다 새롭게 관계 맺는 일이다. 다치고 지친 생명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꿈꾸는 선생은 단단하고 조용한 확신으로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필자소개] 변정윤: 작은책 편집위원 /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밀양을 살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등을 함께 썼다.
덧붙이는 글 |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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