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로 혼란스러운 학교, 이재명 정부가 나서라

박정일 2025. 6. 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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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교육 공정성과 학생 중심 교육 강조... 현장 목소리 반영한 보완책 내놔야

[박정일 기자]

 경기도교육청과 경기광명교육지원청이 광명시청소년수련관에서 연 고교학점제 기자 브리핑.
ⓒ 경기도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고 학점을 이수해 졸업하는 제도로, 대학 수준의 수업 선택권을 고등학교 교육에 도입한 개혁적인 제도다.

2017년 방향을 잡고, 2020년부터 시범 운영을 거쳐 2025년 전면 시행을 목표로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 시행 초기부터 현장에서는 심각한 혼란과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좋은 취지에도 제대로 된 인프라와 실행 계획 없이 제도만 앞세운 탓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 교육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우선,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핵심은 '진로 맞춤형 선택'이라는 이상과 여전히 입시 중심으로 굳어진 교육 구조 간의 괴리다. 현재의 대학입시 체계는 상대평가에 기반한 내신, 서열화된 대학구조, 주요 과목 위주의 평가로 고정되어 있다.

이 속에서 쉬운 과목, 내신 관리가 용이한 과목, 자습이 가능한 과목 위주로 학생들이 몰린다. 친구 따라, 학원 강의 과정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정작 자신의 진로나 적성과는 상관없이 수업을 듣는다. 고교학점제가 '입시전략 게임'으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교사들의 업무 과중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선택 과목이 다양해지면서 한 명의 교사가 세 과목 이상을 동시에 담당하고, 그에 따른 수업 설계, 수행평가, 생활기록부 기록, 출결 관리까지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생명과학 전공 교사가 지구과학을 가르치고, 프로그래밍 과목은 담당 교사가 없어 자습으로 처리되는 일도 있다. 교사 수급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수업의 다양성과 자율성만 강조한 결과다.

특히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을 위해 학생이 다른 학교로 가는 사례에서는 교사의 수업 외 업무까지 많이 증가했고, 안전 문제까지 우려된다.

학생들은 진로 탐색의 시간도 없이 수강 신청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선택한 과목이 진로 변경 시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특히 '최소 성취 수준 보장제'로 인한 미이수 제도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부담이 되고 있다.

형식적으로 출석과 성취도를 충족하기 위한 억지 이수와 쉬운 시험 출제는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미이수를 피하려고 수행평가의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결국 학생은 더 불안해지고, 사교육 의존은 더 커졌으며, 학부모는 더 지쳐가고 있다.

껍데기만 남는 제도로 만들 것인가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위험은 '지역, 학교 간 격차'를 더욱 벌린다는 점이다. 자사고, 특목고 등 일부 고교에서는 다양한 선택 과목, 토론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이 가능하지만, 일반고 특히 농어촌 학교에서는 과목 개설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동일한 제도 아래에서 학생들의 교육 경험과 생활기록부 내용, 평가의 질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 혼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고교학점제의 성공은 단지 '도입'이 아니라, 제도를 뒷받침할 '실행력'에 달려 있다.

첫째, 교육부는 제도의 전면 시행을 강행하기보다 지역별·학교별 실행 여건을 철저히 분석하고 단계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시범 운영 기간을 연장하거나 일반고는 연기하는 방식의 차등 적용도 필요하다.

둘째, 고교학점제는 입시제도와 연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교육부는 대학입학전형을 고교학점제 취지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고교 내 다양한 과목 이수와 성취가 실질적인 대학 입시 평가에 반영되어야만 학생들이 진로 중심의 선택을 실천할 수 있다. 대학들이 평가 기준을 공개적으로 명시하고, 선택 과목의 중요도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교사 수급 및 연수를 위한 대규모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과목별 전담 교사 확보, 중등교원 양성체계 개편, 교사 간 협업 구조 마련, AI 기반 교사 보조 시스템 도입 등 종합적인 교원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농어촌이나 소규모 학교에는 원격 수업 시스템, AI 교과 콘텐츠, 협력 교사 파견 등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넷째, 학부모와 학생에게는 정확하고 신뢰 가능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청과 학교는 수시로 설명회를 열고, 진로 설계 전문가와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AI 기반 진로 설계 플랫폼이나 이수 과목 추천 시스템 등도 활용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미래 교육의 전환을 위한 중요한 제도지만, 준비 없는 전면 시행은 오히려 제도의 신뢰를 잃게 한다. 이재명 정부는 '교육 공정성'과 '학생 중심 교육'을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고교학점제를 다시 점검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보완책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그 약속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껍데기만 남는 제도로 만들 것인가, 진짜 변화를 이끌 미래형 교육 제도로 만들 것인가, 이재명 정부의 선택이 필요하다.

/전 경기도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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