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칭송하는 미국 전쟁영화, 한국인에게 '불편'한 까닭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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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틸 |
| ⓒ 와이드 릴리즈㈜ |
명령에 충실한 밀러와 달리 대원들은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4형제 중 3명의 형이 노르망디와 뉴기니에서 동시에 전사한 라이언이란 병사를 구출해 데려오라는 게 임무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확인 불가 상태의 병사 한 명 구하겠다고 독일군 점령지역으로 8명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작전을 수행한다는 게 불공평하단 푸념이다.
전투를 거듭하며 특수임무부대는 한 발 한 발 적진 깊숙이 들어간다. 온갖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라이언이 생존했음을 발견한다. 얼른 그를 빼내 복귀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독일군의 반격에 맞서 힘겹게 전선을 사수하는 전우들을 놔두고 자기 혼자 돌아갈 수 없다며 라이언이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치른 희생만 해도 분통이 터질 지경인데 남의 속도 모르고 계속 전선을 지키겠다는 상대를 어찌해야 할까?
전쟁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전과 후로 구분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돌아왔다. 그것도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 재개봉이다. 영화가 처음 공개된 게 1998년이니 어언 27년만의 귀환인 셈이다. 현대 전쟁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 게다가 할리우드 영화를 대표하는 존재라 할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요즘 재개봉작이 한둘이 아니더라도 그 의미가 가벼울 리 없다.
여러모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단순히 잘 만든 한 편의 전쟁영화가 아니다. 전쟁영화 장르는 본 작품의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개별 작품의 흥행 성공을 넘어 거대한 파장을 미친 결과물이다. 몇 년 후 또 다른 거장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과 함께 전쟁영화의 스타일을 통째로 뒤바꿨다고 평가되는 영화는, 예전까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주인공 중심의 드라마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다르게 '전쟁' 그 자체가 주역이 된 것마냥 실감 넘치는 시청각 효과를 강조하고자 총력을 집중했다. 실제 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간접체험을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마치 판타지 장르에서 (역시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반지의 제왕> 3부작처럼 이후 나올 전쟁영화의 난도를 대폭 끌어올리는 효과도 파생됐다. 전쟁영화 대작이라면 누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기는, 버금가는 같은 수식어를 붙여 홍보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제작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 넘어설 수 없는 막강한 경쟁자를 선망과 원망이 뒤섞인 감정으로 참고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 영화가 이룩한 기술적 성취와 패러다임 변화의 충격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영상물에는 처음 0초/분 법칙이란 게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처음 몇 분, 광고나 뮤직비디오는 몇 초 내에 보는 이의 시선을 확 잡아끌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아예 본편을 보기 전에 사전 예고편으로 승부를 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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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틸 |
| ⓒ 와이드 릴리즈㈜ |
감독은 실제로 상륙작전 최선두에 붙어 촬영을 남긴 전설적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의 사진 모음, 훗날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제목으로 공개된 현장 기록을 고스란히 노르망디 전투 장면으로 재현하길 목표로 삼았다. 칼 각으로 정교하고 떨림 없는 구도로 찍어야 잘 나온 사진이란 선입견과 달리 자기 목숨 챙길 새도 없이 눌렀던 셔터의 결과물을 교범 삼은 셈이다.
덜덜 흔들리고 초점도 잃었기에, 누가 봐도 이건 정말 바로 곁에서 찍었다는 실감이 전해지던 카파의 사진을 활동사진으로 재현하고자 촬영감독은 일부러 카메라를 고장내 엉뚱한 각도와 타이밍에 촬영했고, 그런 현장감을 더욱 증폭하고자 영화음악 거장 존 윌리엄스의 배경음악은 의도적으로 소리를 줄인다. 오직 전장의 효과음만 남긴다. 시청각 효과를 극대화한 극장 환경일수록 관객은 자신이 전장에 함께 있다는 착시에 빠진다. 20세기 말~21세기 초 무렵에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정훈 시간에 실제 전쟁은 이렇다며 단골로 보여주던 데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영화에서 조명되는 전쟁터에서의 죽음들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명백하게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미군 장병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고 감사하는 의미로 제작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성조기가 펄럭이며 단정하게 관리된 잔디밭에 끝도 없이 전몰자 추모비가 늘어선 공동묘지 장면으로 연결된다.
생존자의 입을 빌려 막대한 희생자를 낸 그 전쟁은 독재와 억압을 막기 위한 정의의 전쟁이고, 고귀한 희생이라는 정당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살아남은 이는 죽은 사람들 몫까지 열심히 살려 노력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참전용사의 뒤에는 자식과 손자까지 3대가 뭉클한 표정으로 서 있다. 감동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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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틸 |
| ⓒ 와이드 릴리즈㈜ |
스필버그가 몇 해 후 제작한 또 다른 2차 대전물,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인공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속 내용과 거의 동일한 체험을 겪은 리처드 윈터스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는 지경이다. 역전의 용사들에게 존경과 헌사를 바치려는 의도와 달리 그들에게 지옥 같은 전장의 악몽을 되살리고만 셈이다.
오마하 해변에서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나간 인명을 극사실주의 형식으로 보여준 데 이어, 간신히 해변을 돌파해 수비하던 독일군을 물리친 미군이 분풀이로 항복 의사를 밝힌 적병을 서슴없이 사살하고 조롱하는 장면 역시 관객에게 이중적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혹자는 저쟁으로 선량한 청년들의 영혼이 파괴되고 황폐해진 실태를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몸서리칠 테지만, 누군가는 아군을 죽음으로 내몬 적군에게 동정심과 인도주의를 발휘하는 건 사치라며 당연하게 여길지 모른다.
적군이 은신한 벙커를 제압하기 위해 화염방사기로 불을 지르자, 온몸에 불이 붙은 적군이 고통에 절규하며 뛰쳐나온다. 이를 지켜보던 병사가 사살하지 말고 타 죽도록 놔두라며 무신경하게 등을 돌린다. 순간 오싹해진다. 단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일군에 강제 징집된 체코인 병사를 쏴 죽이고 실없는 농담으로 얼버무린다. 명백히 전쟁범죄로 규정된 행위인데 말이다. 그런 행위를 현장 지휘관은 못 본 척 넘어간다. 그게 '전쟁'이란 명목으로 포장되는 게 옳은 일인가? 물론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니 언제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은근히 불편한 죽음의 장면은 계속 등장한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벽이 박살이 난 민가의 가족은 어린 딸을 반대편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호소한다. 지휘관이 막지만, 동정심으로 아이를 안아 들던 병사는 적군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는다. 사로잡은 적군을 풀어준 대가는 다시 적으로 만난 상대에게 '죽느냐 사느냐'밖에 없다며 조롱을 당하듯 죽임당하는 결과다. 전장에서 평화시의 상식과 인정은 죽음으로 직결된다는 섬뜩한 결과다. 관객이 과연 이런 순간을 기억할 때 전쟁은 없어야 한다며 평화를 희구할지, 전쟁은 원래 저런 거라며 제네바 협약은 이상론일 뿐이라 치부할지 의문이다.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할 전쟁영화의 금자탑
오랜만에 재회한 영화는 과거와는 퍽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필 재개봉하는 날도 의미심장하다. 감독이 일생의 숙제처럼 차례로 내놓는, 미국이 참전한 20세기 전쟁 영상물을 봐도 언젠가 한국전쟁을 다룰 예감 때문에 더 그렇다. 과연 이 감독이 한국전쟁을 대하 드라마나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든다면 어떻게 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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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언 일병 구하기> 포스터 |
| ⓒ 와이드 릴리즈㈜ |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미국|액션/전쟁/드라마
2025.06.25. (재)개봉|169분|15세 관람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행크스, 맷 데이먼
수입 (주)컨텐츠썬
배급 와이드 릴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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