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상 선생을 아시나요?

이재승 2025. 6. 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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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소록도에서의 의혈 투쟁을 벌인 선각자, 이춘상 선생

[이재승]

필자는 2022년 6월 소록도를 방문하여 이춘상 선생을 기리는 조형물의 제막식에 참석하였다. 이춘상 선생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제막식 참석 이후 이춘상 선생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뭔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 그에 대해 쓰게 되었다.

이춘상은 소록도 갱생원에 수용된 한센인이었는데 1942년 6월 20일 갱생원의 일본인 원장 스오(周防正季)를 살해하였다는 혐의로 그해 8월 20일 광주지방법원(제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0월 2일 대구복심법원(제2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12월 7일 총독부 고등법원(제3심)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 당시 조선의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변론하였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사건들은 많은 경우 그 진실을 밑받침할 자료가 없거나 개인적인 서사에 의존한 것이어서 진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춘상 사건만큼 뚜렷한 증거와 맥락을 갖추고 있는 사건도 없다. 이춘상 사건은 오로지 재평가와 정당화만이 문제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식민지 법질서에 따라 이루어진 판결이라고 하더라도 문제의 행위를 재평가할 근거를 확립하지 못한다면, 당시의 유죄판결이 합법화되거나 정상화되기 십상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일본인이나 친일파를 향한 범죄의 경우에는 그 목적과 동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예컨대, 공갈이나 강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그 목적이 독립군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친일 지주의 곳간을 턴 행동이라면 대한민국의 법질서는 다르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건에서는 돈과 물자를 자발적으로 독립군에게 희사해 놓고 나중에 발각된 경우를 대비하여 강도당했다고 미리 입을 맞춘 흔적들도 발견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정치적 민족적 동기로 종로경찰서장을 살해하였다면 그 행위를 독립운동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반면,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살해했다면 독립운동으로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기와 목적을 중심으로 그 행위를 재평가하는 것이 과거사 정리작업의 핵심이다.

이춘상은 법정에서 "스오 원장을 죽인 것은 개인의 감정에서가 아니라 의분에 의한 것이다. 원장이 총애하는 사또(佐藤) 간호장이 원장의 앞잡이가 되어 확장공사 등 각종 사업에 동료 원생들을 혹독하게 사역시켰기 때문에 원장을 살해하여 여론화되면 이 기회에 소록도의 비참한 생활을 적나라하게 폭로 공개하여 시정을 바랐던 것이다"라고 살해 동기를 밝혔다.

2022년 여름, 이춘상 기념사업회는 소록도 공원에 그를 기리는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이춘상의 항거를 독립운동으로 인정하는 데에 소극적인 국가보훈부에 대해서도 항의하였다. 기념사업회는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을 3·1운동과 독립정신으로 건국하였다고 선언하는 대한 국민들을 향해 작은 동전의 외침에 공명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이춘상에 대한 평가에 앞서 우리들이 갖는 상식적 입장을 재검토해야 한다. 아마도 1351년 도입된 영국의 반역죄법(Treason Act)은 재평가 작업에서 관념적 걸림돌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이 법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거나 수사(修士)가 수도원장을 살해하거나 하인이 주인을 살해하는 범죄를 일반적인 살인죄가 아니라 소역죄(petty treason)라 부르고 중하게 처벌하였다. 국가와 국왕에 대한 반역을 대역죄(high treason)라고 한다면, 작은 조직 범위 안에서 발생한 반역을 소역죄(小逆罪)로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형벌 규정은 봉건사회의 위계구조를 엄격하게 보호하려는 가부장제적인 통치 규정이다.

한국의 전통사회도 이러한 관계에서 자행된 살인을 강상(綱常)의 법도를 파괴한 행위라며 끔찍하게 처벌하였다. 이춘상에 대한 재판과 처벌 과정에서도 소역죄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정책을 거부하는 불충한 대역죄인이라는 관념도 필히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가부장제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치료해주는 원장을 살해하다니 천하에 몹쓸 인간'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의 소록도 갱생원과 갱생원장 스오의 처사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소록도 갱생원은 근대 의료 문명의 식민지 표본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치료와 복리를 추구하는 빼어난 의료수용시설로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조선 식민 지배의 최고위 관료이고 식민지배의 첨병이었던 스오는 수용인들에게 고문, 신체절단, 단종, 인체실험, 강제노동 등 각종 비인도적 조치를 자행하였고, 내부에 별도의 감금시설까지 두어 수용인을 자의적으로 감금하였다. 소록도 역사박물관은 수없이 많은 생체의 표본들을 통해 잔학상을 보여준다. 갱생원은 한마디로 스오의 노예장원이자 인체실험실이었다.

갱생원은 의료의 미명 아래 인도에 반하는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이른바 총체적 인권유린 시설이었다. 그러한 인권침해적 유산인 갱생원이 한센인에 대한 의료적 무지와 더불어 해방 후에도 온존되었고, 이러한 연속성은 갱생원과 이춘상의 항거를 단절적으로 평가하는 데에 장해물이 되었다. 또한 한센인들에 대한 일반대중의 사회적 무지와 차별이 지속되었다는 사정은 이들의 명예회복에 가장 큰 장해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수용시설을 푸코의 통치성과 감금권력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그 본질이 더욱 잘 해명될 것이다.

식민 지배의 최전선에서 문명의 나팔수로서 소황제처럼 군림하는 갱생원장 스오가 자행한 인도에 반하는 범죄 그리고 자신의 동상을 세워 수용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하는 행태를 주목한다면 이춘상의 원장 살해는 식민 지배와 노예화에 대한 정당한 항거로 평가된다. 일제경찰, 일본군대, 일제의 통치자들에 대한 타격만을 독립운동으로 보거나 독립군이나 사회운동가, 특별한 우국지사만을 독립운동가로 협소하게 인정하는 관행은 대한민국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국가주의다. 우리는 작은 동전들도 근원적으로 정치적 주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춘상은 '민족의 이름으로', '내 칼을 받아라'고 갱생원장에게 지당하게 외쳤다. 그에게 독립운동가의 명예가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현재의 시각에서는 강제수용시설의 개혁을 촉구하는 선구적인 사회운동가로서의 영예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이여, 소록도에 가시거든, 소록도 역사박물관으로 발걸음을 떼어 놓으시라. 그곳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비참한 신체의 표본들도 있지만 결혼한 지 며칠 만에 나병(한센병)으로 판명되어 생이별하게 된 부부의 애틋한 글도 남아 있다. 그들을 위로하고 위로도 받으시라.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시인이 되어 죽어 갔다. 이제 그 고통도 '한센인'이라는 용어 대신에 시인 한하운의 이름을 따라 '한하운인'으로 고쳐 부르면 어떨까. 독자들이여, 작은 동전들의 독립선언에 공명하고 이춘상의 명예회복 운동에 동참해 주시라!

** 소록도 한센인 피해자들과 관련해서 인권의 훈풍이 이번에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불어왔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한일 변호사들의 공동 소송 대응이 성과를 거두어 한센인의 명예 및 피해 회복이 일부나마 이루어졌고, 그 여파로 한국에서도 2007년 한센인사건법이 제정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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