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또 올 수 있을까, 그리운 망양정

박도 2025. 6. 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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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울진 망양정

[박도 기자]

▲ 망양정 경북 울진 동해 바닷가 망양정
ⓒ 박도
망양정
하늘 끝은 끝내 못 보아 망양정에 오르니,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
-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에서

위의 글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일절을 현대어로 풀이했다. 고교를 졸업하신 분들은 아마도 이 시가가 눈과 귀에 익을 것이다. 이 노래는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뒤, 관내를 순시 하는 과정 가운데, 금강산 일대와 관동 팔경을 탐방하면서 그 감흥을 읊은 기행 가사다.
나 또한 고교 시절 이 시가를 당시 은사 김영배 선생님으로부터 감명 깊게 배웠고, 나 자신 고교 국어 교사가 돼 이 시가를 여러 차례 숱하게 가르친 탓으로 여태 입과 귀에 익다.
▲ 동해 바다 망양정에서 바라본 경북 울진 동해 바다
ⓒ 박도
올 봄은 유난히 비가 잦았다. 해마다 모내기 철 전후는 가뭄이 몹시 심하여 '몇 십 년 이래 가뭄'이라는 상투어가 난무했지만, 올 봄은 그런 가뭄이라는 말은 미처 나오지도 않은 채 여름으로 접어든 느낌이다.

지난 주중(6. 16-23) 내내 질금 질금 내리던 철 이른 장맛비가 그치고 지난 일요일(22일)은 모처럼 하늘이 아주 산뜻하게 개였다. 아침을 먹으면서 차창 밖 하늘을 바라보자 그동안 내린 비로 공기 중의 미세 먼지조차 모두 씻어 내린 듯 그렇게 날씨가 청명(淸明)할 수가 없었다.

팔십이 돼도 아직 소년인 나는 그 순간 역마 끼가 발동했다. 어디든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기왕이면 바다로, 그 가운데 가장 넓고도 수심이 깊어 푸른 동해 바다로.

그런 가운데 문득 몇 차례 그곳을 지나치면서 늘 교통이 불편하기에 다음으로 미뤘던 동해 울진의 망양정이 떠올랐다. 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지도 책을 찾아 펴고 망양정이 있는 울진을 확인한 뒤 스마트폰을 열어 우선 동해로 가는 열차표를 예매했다.

식수 한 병만 가방에 넣은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점심은 어떻게 될지 몰라 원주 시내 단골 맛집에서 김밥 한 줄을 사고, 바로 옆 햄버거 가게에서 그것도 한 팩 사서 담았다. 오랜 열차 여행에서 주전부리를 하는 즐거움 또한 크지 않은가.
▲ 예미 역 태백선 예미 역
ⓒ 박도
송강의 절창 '관동별곡'

원주 역 11: 04 발, 동해 역 14: 22 착, 무궁화 열차를 타고 동해로 향해 달렸다. 도중에 스마트폰으로 울진으로 가는 열차를 조회하자 14: 37분 울진 행 바다 열차가 있기에 차내에서 예매를 했다. 동해를 가는 태백선은 아직도 단선이라 요즘 그 흔한 KTX 열차가 없다.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태백산맥을 넘어가면서 '느림의 미학'을 잔뜩 즐겼다. 김밥과 햄버거 포장지를 동시에 펼쳐 놓고 먹으면서 차창 밖을 바라보는데 언저리 풍경이 온통 초록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달리는 열차가 잠시 쉬어 가는 곳 차창 밖을 바라보자 조그만 간이 역으로 역명이 '예미(禮美)'다. 그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으나 굳이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그래도 카메라에 담고자 객차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이 잠겼다. 지난번 그곳 태백선 민둥산 역 플랫폼에 내렸다가 열차가 떠나는 바람에 혼줄이 난 적이 있기에 차창을 통해서 셔터를 누르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후 차내 방송은 "마주 오는 임시 열차를 피하고자 한 간이역에서 10여 분 정차" 한다고 했다. 갑자기 동해 역에서 남행 열차로 환승할 시간을 놓칠까 안절부절 하던 중, 마침 지나가는 여객 전무에게 그런 사정을 말하자 그분은 친절히 어디론가 통화를 한 후, 조치해 뒀으니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 시켰다.

14: 38에야 10여 분 늦게 동해 역에 도착했다. 여객 전무는 내 자리로 와서 철로 건너 4번 홈으로 가서 바다 열차를 타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동해 역 플랫폼에 내리자 다행히 남행 열차는 그때까지 역 구내에 진입초차 하지 않았다.

곧 플랫폼에 정차한 바다 열차를 타고 삼척, 임원, 근덕 역을 지나 오후 4시 직전, 울진 역에 도착했다. 새로 지어진 울진 역이 바닷가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산중에 있었다. 길을 모를 때는 택시 이용이 가장 편리하다. 역 앞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의 문을 열자 '어서 오십시오'다. 기사에게 사장을 말하고 왕복 이용을 하겠다고 말하자 'Welcom'이다. 거기서 10여 분 달리자 '망양정' 정자 아래 주차장이다.

10여 분 쉬엄쉬엄 오르자 망망대해 동해 바다가 일망무제로 펼쳐졌고, 우뚝 세워진 망양정이 눈앞에 마주섰다. 아! 동해 바다… 순간 나는 두 팔을 들고 심호흡을 했다.

뎐근을 못내보와 망양뎡에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ᄂᆞᆯ이니 하ᄂᆞᆯ 밧근 므서신고.

4세기 전에 이미 유명을 달리한 고 송강 시백(詩伯)의 시가 읊조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낭랑히 들리는 듯하다. 망양정 일대를 미음완보(微吟緩步)하는 순간 '돌아가는 열차를 놓치면 이곳에서 일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뒤돌아 일망무제의 동해 바다를 한참 더 바라본 뒤 곧장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망양정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본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내 언제 그 바다를 다시 바라보리요. 아마도 내 여생 중, 숱한 명승지를 제쳐 두고, 아마도 그곳을 다시 찾기는 그리 쉽지 않을 듯하다. 안녕! 망양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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