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커칠' 서울여대의 '다시, 봄'... "이러한 연대 지속되길"

주혜영 2025. 6. 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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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지성, 신뢰를 기반으로 무너진 공동의 가치를 회복할 것"

[주혜영, 정윤희 기자]

 ‘다시, 봄’ 개최 이후 서울여자대학교 50주년기념관의 모습. 건물 기둥에 천이 덮여있다.
ⓒ 정윤희, 주혜영
지난해 4월, 서울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C 교수의 성범죄 사실이 교내 상담센터에 신고 접수되었다. 하지만 학교는 가해 교수에게 3개월 간의 징계 처분을 내렸고,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 이후 C 교수의 성범죄를 고발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이 교내에 부착되었고, 서울여자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무소의 뿔'이 성명문을 발표하면서 사건이 공론화되었다. 하지만 되려 C 교수는 본인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부착한 학생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였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은 지난해 11월부터 학교 측에 교수의 처벌과 피해 학생의 보호를 목적으로 포스트잇 시위, 과 잠바 시위, 대자보 게시, 집회와 행진 등의 시위를 진행했다. 하지만 학교의 가시적인 대응이 보이지 않자, 곧바로 래커칠을 동원한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후 학교가 해당 교수의 사직 사실을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알린 후 시위는 마무리되었으나, 래커칠이라는 흔적이 남게 되었다.
 시위 당시 본교 학생누리관의 모습
ⓒ 학우 제공
이후 몇 개월간 학교는 래커칠 자국에 대한 논의로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 4월, 서울여자대학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봄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박진규 학생처장은 "학교는 이번 래커칠 제거 작업에 대해 학생들에게 비용을 청구할 계획은 없었다. 학교와 학생이 함께 참여할 방안을 고민한 것"이라고 프로젝트 시작 동기를 설명했다. 이어 "작년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었던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조율하여 하나의 마음을 만드는 것이었다"라며 "그 결과가 '다시, 봄'이었다. 프로젝트를 통해 더 나은 배움의 공동체로 나아가길 고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시, 봄 프로젝트 사이트의 메인화면
ⓒ 서울여자대학교 홈페이지 화면 캡처
서울여자대학교의 '다시, 봄' 프로젝트는 작년 학내 사태 재발 방지와 래커칠 해결을 위한 것으로 첫 행보는 지난 4월 29일 공동선언문 낭독이었다. 대학 본부, 교수, 학생, 교직원, 동문 등 학내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작성한 공동선언문에는 지난 사태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미래를 위해 안전, 지성, 신뢰의 다짐이 담겨있다. 이후 총장과 총학생회 비대위원장이 래커칠 자국이 남겨진 기둥에 천을 감싸고, 행사에 참여한 구성원들이 건물 유리 벽의 래커칠 지우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는 무너진 공동체의 신뢰와 연대를 회복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현재 학교는 '다시, 봄' 프로젝트를 통해 래커칠 제거를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 중이며, 프로젝트의 진행 현황 보고와 공표를 위한 전용 웹사이트도 개설하였다. 웹사이트에는 공동선언문, 제도 개선 사항, 프로젝트 활동사진들이 게시되어 있고, 누구나 프로젝트에 대한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다.
 시위 당시 사진(왼쪽), ‘다시, 봄’ 시작 이후 사진(오른쪽). 유리벽에 래커칠이 지워졌다.
ⓒ 학우 제공, 정윤희, 주혜영
이소윤 학우(언론영상 23)는 "'다시, 봄' 프로젝트에 많은 학우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단순히 미관을 이유로 래커칠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교 구성원이 함께 사태를 해결하고 사건을 기억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행사에 참여하면서 학교가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문제 해결 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연대가 지속되길 바란다"며 실질적 변화와 공동의 노력을 촉구했다.

방승미 학우(중어중문21)는 "시위라는 행위는 종결되었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사건의 마무리를 치유의 방향으로 다잡고, 래커칠의 의미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내 사안 집담회 '공명'에서 다양한 학우들의 생각을 나눈다. '다시, 봄' 프로젝트 아래 실시된 것으로, 학교가 제시한 앞으로의 방향 중 의미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6월 19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공명'은 일반 학우를 비롯하여 교내 동아리 및 연합 동아리의 본교 지부 등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져 있는데, 정기적인 논의를 이어간다. 주최자들은 학내 구성원의 인권 침해 해결에 대한 방안을 함께 논의한다.

반면, 회의적인 반응도 있었다. 이예진 학우(언론영상21)는 "프로젝트는 우리의 깊게 파인 잘못, 상처를 인정하고 있다. 대학 입장에서 공동의 상처를 인지하고, 그 아픔을 통감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는 매우 인상적이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프로젝트에 대한 여러 입장들을 본 적이 있다. '가해 교수가 학생들에게 취한 손배소는 여전히 유의미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어떤 의미이냐, 무마하고 지나가려는 수습 아니냐'라는 일부 여론을 보며 프로젝트를 다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일부 비판 여론을 언급했다.

이어 더 나은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학생이라는 개인에 학교가 결부된 구조적 일이라는 걸 통감하고, 학우들의 손해배상에 대해서도 학교가 어떠한 액션이 있으면 좋겠다. 가해 교수의 사직 이후 행보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피해 학생과 대자보 건으로 고소를 당한 학생들에 대한 보다 강력한 보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시위는 가해 교수의 사직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그와 동시에 학교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는 공동체 전체가 고민해야 할 몫이다. 본질은 낙서가 아니라, 그 행위가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서울여자대학교는 <다시, 봄> 프로젝트를 통해 신뢰 회복을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학교와 학생이 함께 모든 학내 공동체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이는 과오의 반복을 막기 위한 신중한 발걸음이며,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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