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을 바라보는 시선, 개인의 고통에서 공동의 책임으로

싱그러운 여름의 문턱, 일상에 활기가 더해지는 요즘이지만, 우리는 출산율이라는 숫자 이면에 가려진 누군가의 절실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출산을 원하지만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난임 부부들을 향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대응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난임은 더 이상 일부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난임 시술 건수는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9년 대비 36.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체외수정 시술 비중이 크게 늘고 있으며, 시술자의 평균 연령은 37.9세로 집계된다. 연령대별로는 체외수정은 35~39세, 인공수정은 30~34세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최근 5년간 난임 시술을 받은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확인됐다.
조사 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39세였으며, 대다수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였다. 절반 이상은 정규직 근로자이거나 무직 상태였고, 직장생활과 시술 치료를 병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시술 과정에서 휴직이나 사직을 경험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경제적 부담 역시 상당했다. 응답자의 60% 이상이 치료비와 교통·숙박비를 '크게 부담된다'고 응답했으며, 수도권 의료기관으로 전원한 비율도 높아 지역 내 '의료 접근성'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심리적 고립감'이다. 많은 여성들이 시술 과정에서 불안, 우울, 무력감을 경험하면서도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혼자 견뎌내고 있는 실정이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5%가 심리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실제 상담을 받은 비율은 여전히 낮았다. 난임은 신체적 고통에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실패와 높은 비용으로 인한 정서적·경제적 부담까지 더해지며 삶의 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삼중고'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난임 부부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사회 문제임을 방증한다.
과거에는 난임을 주로 여성의 문제로만 인식하곤 했지만, 최근 들어 남성 난임 진료 인원 또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30대 난임 진료 인원이 전체의 71.8%에 이르며, 난임은 이제 젊은 세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상적 건강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낭성난소증후군, 뇌하수체 기능 저하, 음낭정맥류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난임은 보편적 건강 이슈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시술비를 일부 지원하는 '난임부부 지원사업'과 '난임치료 휴가제도' 등을 통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일정 부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난임 시술의 성공률은 높지 않으며 대부분 1~2차 이상의 반복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신체적 고통과 정서적 스트레스, 경제적 부담이 누적되며, 직장과 치료를 병행하지 못하고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들도 많다.
따라서 단순한 비용 지원을 넘어서는 보다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 체계가 요구된다. 난임 부부에 대한 정서적 지지 강화, 심리상담 확대, 직장 내 유연근무제 도입, 치료 병행이 가능한 근무환경 조성 등 실질적이고 입체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난임은 개인의 선택이나 책임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출산과 양육은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공적 과제로, 공동체 전체의 관심과 연대가 필수적이다.
직장에서는 난임 치료를 위한 유연근무와 휴가 사용이 적극적으로 보장돼야 하며, 지역사회는 난임 부부를 위한 상담 및 정보 제공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출산은 선택이며, 아이를 갖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존중받아야 할 권리다. 난임 부부가 좌절하지 않도록 제주가 먼저 따뜻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낳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기다려주고 함께하는 정책'이 절실한 지금, 아이를 꿈꾸는 부부들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제주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여진 /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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