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땅 빼앗으려는 검사, 강원도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
김성호 평론가
고결한 희생자 효과(Virtuous Victim Effect)란 말이 있다. 흔히 어떤 사건으로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하여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 무엇보다 가해자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고결할 것이라 받아들여지는 대중심리학적 반응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도덕성에 대한 정보 없이 가해와 피해상황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심지어는 가해자 없이 피해사실만을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피해자가 도덕적으로 무결하거나 고결하리라는 믿음을 갖는다는 현상이다.
2021년 < Science Advances >에 실린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 질리언 조던(Jillian J. Jordan)과 마리암 코우차키(Maryam Kouchaki)의 연구에선 96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17번의 조사에서 이 같은 경향성이 확인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특정 인물이 피해를 입거나 입지 않은 사례를 각각 접한 뒤 인물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가 포함된 설문에 응답했다. 피해사실을 제외하곤 사실상 동일한 정보가 포함된 이야기를 접했음에도 참가자들은 대부분 피해를 입은 이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답을 내어놓았다. 이 같은 연구는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져 온 통념을 다시금 확인한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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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하별 포스터 |
| ⓒ 트리플픽쳐스 |
이러한 일련의 연구는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흔한 편견으로부터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케 한다. 실제로 온갖 뉴스기사의 댓글이며 커뮤니티 여론 등을 통해 확인되는 바, 대중은 명백한 근거 없이 이 같은 편견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고는 하는 것이다. 때로는 영화와 드라마, 문학작품에서도 약자의 선함과 강자의 악함을 반영하니, 이는 사회적 편견을 확대재생산하는 게으른 작법이라고 볼 밖에 없는 일이다. 작품, 또 예술의 역할 중 하나가 인간을 일깨우고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이처럼 편협한 작법이야말로 작가로서 지양해야 할 바라 하겠다.
25일 개봉을 앞둔 <세하별>은 그 따스한 의도와는 달리 예술의 역할이며 책임을 방기한 아쉬운 작품이다. 강원도와 철원군의 지원을 받아 철원을 무대로 촬영한 영화는 '자본주의에서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 삼아 '고향의 따스함'을 강조하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영화란 사실을 강조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한 쪽 손목을 잃고 장애인이 된 그 아들이다. 이들을 핍박하는 이는 과거 이 집안을 머슴으로 부리던 마을 부잣집 사람들로, 이 집안의 아들은 검사장을 노리는 잘 나가는 검사다. 가난한 장애인과 이들을 핍박하는 부자 권력자의 구도, 또 그것이 활용되는 방식이 너무나도 부적절하여서, 나는 이 영화의 다정한 태도를 알면서도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강원도 어느 산골 마을에 태원(조관우 분)이 산다. 지적장애인으로 마을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해온 태원이다. 그런 그를 그나마 챙겨주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마을의 실세인 어르신(이재용 분)이며 그 수족인 이들은 태원을 저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 시작에서부터 태원의 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데, 둘러앉아 닭발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다른 이들과 달리 멀찍이 떨어져 감히 겸상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태원의 모습을 비추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태원의 아들 칠성(장윤성 분)의 미래에 대한 것으로, 대학교 진학 대신 일찌감치 수도권 공장에 취업을 시켜 돈이나 벌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제 아들의 진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낼 수 없는 처지, 그것이 태원의 현실임을 이 장면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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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하별 스틸컷 |
| ⓒ 트리플픽쳐스 |
공장에서 팔을 잃는 장면이며, 위험한 노동을 2인1조와 같은 안전장치 없이 수행하는 상황, 그에 앞서 명절 선물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신세 등이 단 한두 신만으로 표현되는 건 기록할 만한 지점이다. 사회적 약자의 가장 상징적 장면들만 최소화해 이어 붙였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표현보다도 효율적인 선택에 치우쳤다 보는 편이 합당할 테다.
<세하별>은 강원도를 떠들썩하게 한 국제시골축제 개최지로 이 마을, 그중에서도 태원이 사는 집 주변이 선정되며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땅값이 폭등할 수 있다는 기대는 옛 주인집 어르신과 그 아들이 태원의 땅을 빼앗으려 드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장애는 물론, 문맹이기도 한 태원을 속여 부동산을 가로채려는 이들의 수작이 정도를 넘어서며 극적 갈등도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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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하별 스틸컷 |
| ⓒ 트리플픽쳐스 |
무튼 영화는 부패검사와 그 아버지, 또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태원을 핍박해 땅을 빼앗으려 드는 이야기, 태원의 아들 칠성과 그를 둘러싼 노숙자들 패거리가 이를 막아내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말하자면 검사와 공직자, 마을 실세가 악당 패거리를 이루며 장애인과 노숙자, 또 칠성이 공장서 연을 맺은 술집여자 선자(안이서 분)가 이에 대항하는 구도로 흘러간다. 사이사이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의사와 같은 사회적 기득권층은 인정 없는 이로 그려진단 점이 이 같은 이분법적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확인한다.
아쉬운 건 이 영화가 앞의 고결한 희생자 효과, 또 권력자며 부자가 도덕적 악한이라는 편견에 고민 없이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틀림없이 태원과 칠성, 가난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 또 노숙자며 성노동자에게 우호적 태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는 동정에 가까운 애정일 뿐, 마땅한 권리의 요구며 부당한 압제에의 저항이 되지 못한다. 따스한 태도는 베풀어질 뿐, 합당한 이유로써 주장되지 못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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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하별 스틸컷 |
| ⓒ 트리플픽쳐스 |
분명 누군가는 <세하별>을 따스하고 착한 영화라 말할 수가 있겠다. 나는 그를 부정할 생각이 없다. 직접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김우석 감독은 물론이고, 처음 영화 주역에 도전한 조관우,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열연을 펼친 이문식, 이재용, 강성진, 윤복인, 박노식 등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 또 신인다운 패기로 임한 장윤서와 안이서의 수고를 무시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이들을 존중하기에 나는 이와 같은 비판을 내놓을 밖에 없는 것이다. <세하별>은 다정함과 따스함에 앞서 이를 핍박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이해했어야만 했다. 무엇이 이 세상의 다정함을, 따스함을, 시골과 이웃을, 정과 추억을 해하는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여서 이 영화는 오늘과 같은 수준에 이르렀다. 나는 진심으로 이 영화가 저지른 실패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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