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유배제도와 변방 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책
[김용찬 기자]
유배(流配)는 조선시대의 형벌 가운데 하나로, 죄를 지은 사람을 먼 곳으로 보내 그곳에서 거주하도록 하는 조치가 수반된다. 죄인은 고향을 떠나 유배지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했기에, 유배형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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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명의 <증참의공 적소시가> 표지. |
| ⓒ 지만지한국문학 |
이진유가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촉발된 당쟁에 연루돼 1731년에 유배지에서 죽은 이후, 당쟁이 격화되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광명을 비롯한 가문의 젊은이들은 과거를 포기하고 지내야만 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진유가 죽은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이광명을 비롯한 가문의 후손들에게 단지 그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유배형이 내려졌다. 이광명은 55세의 나이로 유배를 떠나야 했으며, 유배 당시까지 관직 경험이 전혀 없던 포의(布衣)의 신분이었음은 물론이다.
'삼수갑산'이라는 지명으로 대표되는 갑산은 조선시대의 가장 먼 변방에 속해 있었고, 그곳으로 유배를 떠난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광명 역시 백부의 죄에 연좌돼 갑산으로 유배를 간 후, 그곳에서 생을 마친 인물이다. 그가 남긴 몇 편의 시가와 한글 산문 기록은 당시 함경도 갑산 지역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외지에서 온 낯선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변방의 풍속은 생소하기만 했을 것이고, 자신이 살던 한양이나 물산이 풍부한 지역과도 다른 문화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이광명은 낯선 유배지에서 접한 변방의 문물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자신의 관점으로 정리한 기록을 남겼다고 하겠다.
먼저 이 책 <증참의공 적소시가>에 수록된 가사 <북찬가(北竄歌)>는 '북쪽으로 내쫓김을 당해 부른 노래'라는 의미로, 자신의 유배에 대한 과정과 감상 위주로 내용을 채우고 있다. 작품에는 억울하게 유배를 떠나야 했던 자신의 심경과 낯선 곳으로 향하는 고독한 처지, 그리고 노모를 두고 떠나야하는 자식으로서의 애절한 마음 등이 절절하게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한 줄기 희망을 품어보지만, 작자인 이광명은 끝내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처럼 조선시대 유배를 떠난 이들이 창작한 가사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을 일컬어 기행가사라고 분류하고 잇다.
삭풍(朔風)은 들어치고 사산(四山)은 우거진 골에 / 해묵은 얼음이오 조추(早秋)에 눈이 오네 / 백초(百草)가 션영(先零)커든 만곡(萬穀)이 될리 업네 / 귀보리밥 못 이오니 쌀밥이아 구경할까 / 소채(蔬菜)도 주리거니 어육(魚肉)을 생각할까 / ... (중략) ... / 맺힌 시름 풀려면은 분내(分內) 곤고(困苦) 요란할까 / 토산(土産)의 박박쥬(薄薄酒)도 그나 마나 매매(買賣) 업고 / 기악(妓樂)은 있지만은 어느 경(景)에 금가(琴歌)할까 / 장평산(長平山) 허쳔강(虛川江)에 유람(遊覽)에도 뜻이 없네 / 민풍(民風)도 후(厚)하지만 웃거리도 아니 온다 / 봇 덥고 흙 인 방에 두문(杜門)하고 홀로 있으니 / 승예(蠅蚋)는 폐창(蔽窓)하고 조갈(蚤蝎)은 만벽(滿壁)하니 / 앉은 곳에 해 기울고 누운 자리 밤을 새워 /잠을 깨면 한숨이오 한숨 끝에 눈물이라
인용한 내용은 유배지인 갑산에 도착한 직후의 상황을 형상화하는 부분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쌓인 지형, 이른 가을부터 눈이 내리는 날씨, 먹을 것조차 변변치 않은 형편 등에 대해 토로하는 화자의 모습이 제시된다.
게다가 돈이 있어도 술조차 사먹을 수 없으며, 주변의 명승지에 유람도 갈 수 없었던 유배객의 처지가 드러나고 있다. 방안에서 마주친 풍경은 창을 뒤덮은 '파리떼(蠅蚋)'와 벽을 기어다니는 '벼룩과 전갈(蚤蝎)'로 표현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한숨을 짓는 화자의 상황이 형상화돼 있다.
이 책에는 가사 <북찬가> 외에 유배지인 갑산에서 창작한 시조 3편 그리고 당시 오랑캐의 땅이라는 의미인 '이주(夷州)'로 불렸던 갑산의 풍속을 한글로 기록한 <이주풍속통>이라는 산문이 함께 수록돼 있다.
전체적으로 한글 자료의 원문과 함께 현대어 번역과 주석을 덧붙인 체제를 취하고 있다. 원저에는 저자의 한시까지 포함돼 있다고 하는데, 옮긴 이는 그 가운데 한시를 제외한 국문 자료만 취해서 원문과 함께 번역해 엮어냈다. 이 책을 통해 당시로서도 낯선 변방의 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며, 또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유배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덧붙이는 글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 (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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