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일해야 할 판" 캐나다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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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섭 기자]
"평생 일해야 할 판이다."
요즘 '은퇴'라는 말이 더 이상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마주한 은퇴의 풍경은 생각보다 낯설고 냉정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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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멧을 쓴 채 일터에 나선 고령 근로자. 은퇴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되어버린 시대, 캐나다의 낯선 은퇴 풍경을 대변한다. |
| ⓒ 김종섭 |
'수고한 당신, 떠나라!'의 의미는, 열심히 일하고 고생한 자신에게 여행이라는 보상을 주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던 시대의 상징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수고한 당신, 어떻게 하면 더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최근 발표된 한 캐나다 설문조사 결과는 그 변화의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응답자의 59%가 "평생 일해야 한다"고 답했다. 충격적이지만, 나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이제 은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겠다'는 각오가 아니라, 움직일 수 있으면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처럼 다가온다.
과거 캐나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연금 시스템과 저축 기반 위에 서 있었다. 노년의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나 또한 50이 넘은 나이에 이민을 결심하며 시민권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삶의 풍경은 급격히 혼탁해졌다. 물가는 무섭게 치솟고, 돈의 가치는 빠르게 하락했으며, 수입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변화는 캐나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도 고령화, 연금 불안, 청년실업 등의 복합 문제로 인해 은퇴가 더 이상 '쉼'이 아닌 '연장의 노동'이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은퇴 없는 은퇴 시대'가 서서히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은퇴를 앞둔 이들은 이제 '쉬고 싶은' 마음보다 '불안감'이 더 크다. 은퇴 후 가장 큰 문제는 단연 재정이다. 건강보다 돈이 먼저 언급되는 시대다. 돈이 많아서 부를 추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굶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계가 절실한 현실이다.
나 역시 60세에 은퇴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60세는 은퇴할 수 있는 나이인가?" 은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은퇴'는 단지 이름뿐인 환상일 뿐이다. 현실은 냉정하다. 조건이 없다면 은퇴도 없다.
캐나다도 70세까지 일하라는 분위기
얼마 전, 작은 아들의 생일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은퇴 이야기가 불쑥 나왔다.
"아빠, 우리 회사에 은퇴 앞둔 분이 있는데요. 자식이 아직 직업도 없고, 결혼도 요원하다며 은퇴를 미루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아빤 자식 잘 두셨잖아요."
맞다. 아빠의 짐을 줄여주는 것이 요즘 세상에선 최고의 효도다. 아들은 덧붙였다.
"아빠는 아들 둘 다 장가보내셨고, 집에 갚을 모기지도 없잖아요.이 정도면 성공적인 은퇴 시작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조건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캐나다는 65세부터 연금 수령이 가능하고, 의료비도 대부분 국가가 부담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미 은퇴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내가 은퇴자가 아니라, 무능력한 백수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특히 자식들 앞에서 '일 안 하는 아버지'가 무기력하게 보이지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몇 달간의 공백기를 보내던 중, 아내가 말했다. "이참에 그냥 은퇴하세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조심스레 '은퇴자'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잠시 쉬고 있는 사람'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다.
요즘은 "은퇴 후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들린다. 나이 들어도 계속 일해야 하는 세상이다. 물론 캐나다는 연령차별이 심하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그렇지 않다. 일 할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적다. 게다가 인도 출신 이민자들이 대거 노동 현장에 진입하면서, 고령자의 선택지는 더 줄어들었다. 이제는 나이든 사람에게도 안전지대란 없다.
결국 은퇴 후 가장 중요한 건 자존감이다. 자존감을 잃으면 삶을 다시 시작할 용기마저 사라진다.나는 지금 은퇴자가 아니라, 잠시 휴식기를 보내는 사람이다. 언젠가 다시 일을 구할 수도 있고, 진짜로 내 은퇴의 날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은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낯선 풍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이제는 누구도 쉽게 "수고했어요, 떠나세요"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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