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자' 박형준·조희연 "공화와 분권 가치에 기반한 권력 운용 절실" [월간중앙]

2025. 6. 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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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공화주의자’ 박형준과 조희연, 국민통합의 길을 말하다

朴 “공화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겸손과 절제에서 시작…권력 남용 말고 공유해야”
曺 “보수·진보가 서로의 가치 융해해야…내 핵심가치 고수하되 상대방 가치도 수용”
朴 “초광역통합 이뤄낸 지방정부에는 중앙정부 기능과 권한 과감하게 이양해 주길”
曺 “서울대 10개 만들기처럼 서울대병원 5~10개, 실리콘밸리 5~10개 만들기 어떤가?”

6월12일 서울 여의도에서 보수적 공화주의자 박형준과 진보적 공화주의자 조희연이 시국을 진단하고 시대적 과제를 토론했다. 두 사람은 학자 출신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오랜 친분을 유지해오고 있다. 김정훈 기자

새 정부에 ‘국민통합’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월간중앙은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지성, 박형준(65) 부산광역시장과 조희연(69)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진정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위한 통합의 길’을 물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만큼, 새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의 어깨도 무거워졌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세력의 혁신을 통한 재건이 화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학계와 공직을 두루 경험한 두 인사는 6월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나 12·3 비상계엄에서 6·3 조기 대선까지 일련의 정치적 과정을 돌아보고 시대의 문제들을 진단했다.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골 깊은 진영 갈등을 완화할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한편, 궤멸적 위기에 빠진 보수에도 뼈를 깎는 혁신을 주문했다. 새 정부가 공화주의와 통합, 분권의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의 힘으로 ‘K-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두 지성의 발언을 경청해보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_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에서부터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판결, 그리고 지난 6월 3일 대선과 6월 4일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 현대사에서 결정적인 시기였고, 전환점이었다. 한국 사회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적 요소와 또 희망적 요소를 다 드러낸 시기였다고 본다. 우선 지난 6개월간 일련의 정치적 과정에 대한 진단과 평가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박형준 부산시장_ “지난해 비상계엄은 한국 현대사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탈(逸脫)이었다. 자유·민주·공화라고 하는 대한민국 헌법, 그 헌법에 기초해 이뤄낸 놀라운 발전의 토대를 와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계엄 이전에 벌어진 과정을 보면, 민주당이 의회에서의 권력을 남용하는 등 의회 민주주의 원칙을 이탈한 측면이 있었는데, 계엄 사태로 다 묻혀버렸고 오히려 현직 대통령과 그 주변, 국민의힘 집권세력과 그를 지지하는 지지층 모두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수가 철저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조_ “계엄이라는 비정상적이고 퇴행적인 통치방식을 선택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거대한 위기에 직면했었지만, 저는 그 위기 속에서 또 희망을 현실화하는 중요한 전환이 있었다고 본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신변 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 앞으로 몰려간 전투적 시민이 있었고, 또 국회로 돌아가서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해낸 국회의 역량도 있었다. 계엄 해제에 찬성한 국민의힘 18명의 결행도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87년 헌정 체제의 일부인 헌법재판소가 이런 정치적 위기의 순간에 사법적 균형추의 역할을 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건강성을 확인한 그 기초 위에서 이제 새 길을 찾아가야 한다. 국민의힘은 지금 궤멸적 상황에 직면해서 자기 혁신을 강요받고 있지만 민주당도 더 이상 전투적 저항에만 의존하지 말고 통치 역량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니만큼 미래지향적인 자세 전환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공화 내지는 공화주의적 국가발전방향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본다.”


“계엄 이후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 보여준 장면”


박_ “계엄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오세훈 시장과 저는 계엄을 즉각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다른 시·도지사들도 대부분 그런 의견을 밝혔다. 저는 당시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계엄에 찬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계엄 뒤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계엄의 충격에 비하면 그것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과정은 굉장히 질서 있게, 헌법 원칙에 입각해서 잘 이뤄졌다. 대한민국이 그동안 축적한, 잘 조직돼 있는 시스템이 굉장히 잘 작동했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진영 간 골이 깊고,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굉장히 양극화돼 있다는 점이다. 이건 꼭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양당제를 가진 대부분 나라들의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걸 우리가 어떻게 넘어설 건가 하는데 있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갈등을 꼭 없애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보수 쪽을 지지하는 분들의 마음속에는, 지금 정권을 구성하는 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 또 대한민국을 이끌어왔던 주류 세력이나 주된 이념 가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굉장히 컸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분단이라는 조건에서 주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북한이라고 하는 상대 속에서 만들어진 실체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듯한 인식,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를 넘어서서 아예 그 시기의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하거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역사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그런 것들이 미국에 대한 태도, 자유 민주 질서에 대한 기본 인식으로 굳어진 측면이 있다. 진보 쪽에서는 그것을 반공주의라고 규정하는데, 보수 쪽에서 보면 꼭 반공주의라기보다는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저는 보수·진보가 역사의 굴절과 왜곡 속에서도 이루어 놓은 대한민국의 찬란한 성과들을 함께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결국 정국을 주도하고, 국가 경영을 주도하는 세력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형준 부산광역시장. 김정훈 기자

조_ “지금 전 지구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이 확산되고 있는데, 특히 상대방을 악마화하면서 자기편을 단결시키는 트럼프식의 ‘적대적 진영 정치’가 문제가 되고 있다. 저는 우리 한국이 보여준 ‘K민주주의’가 트럼프식의 적대적 진영 정치를 넘어서 는 새로운 길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IMF 체제 때 김대중 정부처럼 국가적 위기 때는 보수의 주장을 융해해낸 진보 정부가 위기를 수습하기 좋고, 태평성대에는 분배 같은 진보의 주장을 융해해낸 보수 정부가 이끌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공통의 분모를, 상대방의 합리적 핵심을 자기 가치를 지키면서 융해하는 방식인데, 저는 3:7제로 갔으면 한다. 7은 자기 가치에 충실하되, 3은 상대방의 가치·주장의 합리성을 자기 방식으로 융해하는 접점 찾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얘기했던 ‘중도 보수’도,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전술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상대 진영의 합리적 요소들을 융해해서 공존의 최소 기반들을 갖는 민주주의와 국가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 통합의 길이 아닐까.”


“새 정부, 저성장 시대 지속가능한 국가 비전 보여줘야”


박_ “저는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자유·민주·공화 이 3가지 가치로 보는데, 여기에는 민주당도 큰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기준점이 돼야 자유·민주·공화에 걸맞은 정책이나 행동, 권력 운영을 했느냐에 대한 자기반성을 할 수 있게 된다. 제가 과거에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보수의 문제는 자유·민주·공화라고 하는 헌법 정신을 올곧게 지키고 진화시키는 책무가 가장 큰데, 그것을 왜곡하거나 독점하거나 일탈했던 과오들이 있다. 그런데 그 과오들을 늘 극복하면서 진화해 왔기 때문에, 보 수에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본다.

같은 관점에서, 진보도 그 3가지 가치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조금 비판적으로 보자면, 지금 민주당이나 이재명 정부가 탈이념, 실용주의만 주장할 게 아니라 그 3가지 가치를 진보적으로 해석해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내놓을 필요 가 있다. 이게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 쪽에서 민주당이 하는 것은 전부 ‘포퓰리즘이다, 베네수엘라식 사회주의 하려고 하는 것이다’라며 오해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보수 쪽을 보자면, 정책 전문성이 굉장히 부족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우수한 관료제와 민간 대기업들의 우수한 역량에 힘입어 그걸 반영하는 정책만 해왔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대선에도 그 부분에서의 빈약함이 아쉬워서 제가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었다. 참고하시면 좋겠다. 또 하나, 보수가 정치적 전략이 부족하다. 민주당은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영남에 끊임없이 구애한다. 그런 식으로 지도자들을 발굴해서 김대중 대통령 빼고는 다 영남 출신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거꾸로 보수 쪽에서는 호남을 정책적으로는 지원했을지 몰라도 그쪽 지도자들을 제대로 발굴하고 키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단순히 5·18 정신을 긍정하고 지역 현안과 정책을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정치인, 호남에 뿌리를 둔 정치 지도자들을 키워서 그 사람들이 뿌리내리도록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이정현·정운천 전 의원은 그 어려운 지역구에서 당선됐던 사람들인데, 국민의힘이 호남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잘 키우지 못해 아쉽다. 정치 통합의 측면에서도 이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당, 무소불위 힘 갖춰…절제된 권력 행사 필요”


조_ “공화주의가 기준점이 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아닌가. 우리가 민주화투쟁은 40년 가까이 치열하게 해오면서 정착 단계에 이르렀지만 공화성은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 도 비전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화적 기조를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경제 개혁과 정치 개혁이 있을 것 같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지금 산업화 단계의 국가경제 운영 패러다임이 거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박 시장께서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이라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성장·저출생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재 육성, 삶의 질을 가꾸는 국가 비전과 관련한 정책대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본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우리의 수출 지향적, 개방형 경제 재생산 구조의 재균형화가 필요한 지점들이 있다. 새 정부에서도 저성장 시대에 국가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비전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

정치 개혁에서는 진짜 통합의 정치를 이뤄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서, 과거에 보수 정당에 가해졌던 비판들이 부메랑이 되어서 오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진보 진영이 가졌던 도덕적 우위 같은 것도 많이 균열됐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처럼 정책적인 실책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여야 모두 반성할 지점들이 있다. 이런 부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통합적 정치를 구현해내는 게 중요해졌다.

또 하나, 우리에겐 높은 정치의식을 가진, 동시에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국민들이 있다. 때문에 포용적 성장 모델이면서도 높은 평등주의에 부응하는 신분배국가형 국가운영 방식이 필요하다. 여기에 직접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적 요소를 더 광 범위하게 수용하는 새로운 대의민주주의 모형 같은 것도 실험해봤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 김정훈 기자

박_ “기본적인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가 ‘평등’의 에토스를 담아낼 때도 공화(共和)라고 하는 정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 민주공화정의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굉장히 겸손해야 하고, 절제해서 사용해야 된다는 원칙을 잊으면 안 된다. 역대 보수, 진보 정권들이 실패한 원인이 바로 권력 남용 때문이었다. 권력은 독점하는 게 아니라 공적으로 공유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 점에서 제가 민주당에 대해서 걱정하는 건 기존의 의회 운영 과정에서 이 공 화의 정신이 지켜지지 않았다. 다수결이 능사가 아니다. 국회법에도 교섭단체 간에 협의주의 원칙을 갖고 있지 않나. 그래서 상임위 중심주의가 돼 있는 것이고… 국회 선진화법도 그런 취지에서 만들었는데, 현실에서는 거꾸로 소수당이 힘을 못 쓰도록 하는 법이 돼버렸다. 게다가 지금 집권당은 행정부, 의회, 심지어 사법부까지 통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공화의 정신에 충실한 절제된 권력 운영이 정말 필요하다.

공화의 두 번째 측면은 공공성 속에서 공동체의 삶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게, 불균형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저는 지금의 저성 장, 저출생, 지역 격차가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이후 IT산업이 발달하고 디지털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혁신 거점이 될 수 있 는 지방 거점도시들이 다 무너졌다. 이게 우리 사회를 굉장히 기형적 구조로 만들었다. 이걸 해결하려면 균형 발전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한 분권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특히 분권이나 균형 발전에 대해서는 진보적 가치로서 주장해왔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87년 체제’ 한계성 인정하고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나 더 얘기하자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굉장히 불평등한 것처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객관적인 지표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상위 10%의 자산 점유율을 기준으로 보면 복지 선진국이라는 스웨덴은 상위 10%가 74.4%, 미국이 66.4%. 한국은 58.9%다. 선진국 가운데서 굉장히 좋은 수준이다. 한국은 사회발전 과정에서 복지 모형을 배제한 채로 성장해온 게 아니고, 지방자치제도나 민주화 진행 과정에서 조화시키면서 왔다. 이런 관점에서 불평등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조금만 잘 개선하면 되는데, ‘너무 불평등하다’는 인식을 기초로 해서 무리하게 재원을 투입해서 나눠주려고 하거나, 또는 기존 제도의 연속성과 축적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정책을 급진적으로 시도하면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기본 사회’나 ‘기본 소득’ 정책도 실제 실행할 때는 한국적 현실을 잘 고려하면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_ “박 시장 제안처럼 보수의 주장을 수용한 진보적 정책의 실현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반대로 저는 보수가 진보의 정책을 수용해 확장해 볼 수 있는 영역도 얼마든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87년 체제’ 극복도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치의 한계를 거의 통치 불능 상태로 인식하고 비상계엄이라는 군사적 통치 수단을 동원해서 탄핵당했는데, 사실 다른 정치적 선택지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비상계엄이라는 군사적 출구 이전에, 87년 체제를 법적으로 권력 분립 체계로 바꾸기 위한 개헌을 들고 나왔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87년 체제는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울 중심의 체제다. 5년 단임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했을 뿐 연방제적 원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때문에 87년 체제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포스트 87년 체제로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국민적 토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우리가 세계 경제의 격동 속에서 제가 쓰는 용어이긴 한데, 일종의 ‘완충 국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 AI 등 거대한 사회·경제적 파도가 밀려오는 와중에 기본적으로 국민 삶의 고통을 완충해 주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의 평등주의적 기대에 부응하는 신분배국가의 비전도 필요한 것 같다. 이는 박 시장이 얘기한 것처럼 저출생이라든지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더 절박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지점들이 있기 때문에, 포스트 87년 체제의 국가 비전을 누가 더 미래지향적으로 구현할 것이냐 하는 데 있어서 보수나 진보 간의 경쟁도 필요하고, 모두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함께 사는 공화의 가치가 필요한 지점이다. 저는 공화를 ‘민주적 공동체성’이라고 이해한다. 새 정부는 87년 체제가 담보하고 확장시킨 민주성, 혹은 시민들의 몸에 이미 내재화돼 있는 민주적 전투성에 공존과 공동체성의 공화성을 제도적·행정적으로 충족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

박형준 부산시장과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은 이재명 정부에 권력행사의 절제와 분권을 요청했다. 사진은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 브리핑에서 김민석 총리 후보 등 주요 내각 인사를 발표하고 설명하는 장면.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민생 회복 지원금, 어려운 사람에게 실질적 혜택 줘야”


박_ “예를 들어서 민생 회복 지원금 25만원을 지급하는 정책도 그렇다. 우리가 코로나19 사태 때 실행해보긴 했지만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났느냐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된 적이 없다. 그런데 제가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느낀 체감으로는, 돈은 엄청나게 쓰면서도 실질적으로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사실은 필요한 이들에게 지원하려면 더 파격적으로 해야 한다. 당시 프랑스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소상공인들한테 매달 거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지원했다.

이번에도 지원금을 투입한다면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소비 진작의 효과를 기대하면서 나눠준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 정말 삶의 질을 개선하고 평등을 완화시킬 목적이라면 지금 광역자치단체건 기초자치단체건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활성화하는 재원으로 과감하게 쓰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같은 금액을 일률적으로 나눠주는 것보다도 건강이건 문화이건 복지 측면에서도 훨씬 더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어려운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혜택을 넓히게 할 수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조_ “동의한다. 정책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기존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통합적 정책, 실용적 정책 실현 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동일한 규모의 돈이 어떻게 지역 순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느냐 하는 면에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지금 수도 이전이나 국회 이전,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분권을 강조하고 있으니 근본적으로는 연방형 국가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 실현의 방식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_ “저는 ‘이중 분권’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앙 권력도 대통령과 나눠 가지는 분권화된 형태가 바람직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권력도 수도권과 지역 사이에 준연방제 수준의 자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가 청와대, 정부에서 일을 다 해봤지만, 재선 부산시장으로서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바로는 지방 행정인력들은 중앙에서 기획 능력만 발휘한 사람들하고는 다른 차원의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다. 지역도 작은 국가 수준의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고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책임 행정이 이뤄진다. 여야를 넘어서 시·도지사를 만나면 다 저처럼 같은 얘기를 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초광역통합이 이뤄진 지방정부에는 중앙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해줬으면 한다.

예를 들어 교육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지역의 대학들은 지역의 경제와 선순환관계를 맺어 먹고살아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교육부 지원을 받아서 먹고사는 구조다. 이걸 확 바꾸기 위해서 제가 이주호 교육부총리를 설득해서 교육부로부터 포괄적 예산을 받아 왔다.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처음일 거다. 부산지역 대학과 부산시, 지역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그 예산을 어떻게 쓸 것인지, 어떤 인재를 어디에서 양성해 어떻게 취업시키고 어떻게 연구개발(R&D)할 것인지 머리를 짜내고 있다. 이건 굉장히 큰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중앙정부의 모든 효용성이 떨어지는 공모 사업들을 이런 식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본다. 중앙정부는 지원한 뒤 모니터링만 하면 된다. 모닝터링해서 예산을 잘 사용한 데는 더 주고, 그렇지 않은 데는 깎으면 된다.”

조_ “동의한다. 교육 문제도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성을 갖고 지역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저는 ‘87년 체제’가 두 가지 핵심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하나가 수도권과 지방의 균열, 또 하나가 세대 간 균 열과 모순이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교육·의료·청년직장 이 3가지가 충족되는 자립적 생활권이 필요한데, 각 지역 권역별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가 서울대 10개 공약을 내놓았는데, 그것과 결합하여 서울대병원 5개 혹은 10개 만들기, 첨 단산업 실리콘밸리 5개 혹은 10개 만들기를 결합해서, 서울에 오지 않고도 지역 청년들의 교육·의료·청년직장이 해결되는 방식으로 광역경제권이 자립적 생활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런 방향에서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을 예로 들 면 부·울·경 통합이나 동남권 초광역 협력체계로 교육·의료·청년직장이 충족될 수 있도록 집중 투자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의논하기 위해 여야를 넘는 중 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의 구조가 있었으면 한다.”

월간중앙 특별대담에 참석한 박형준 부산시장과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6월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나 12·3 비상계엄에서 6·3 조기 대선까지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과정을 돌아보고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진단했다. 김정훈 기자

“청년정당 육성하고 공천에 40~50% 반영 어떤가!”


박_ “그 문제는 이미 중앙지방협력회의라고 하는 제도화된 틀이 있으니 이재명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이 대통령이 시·도지사들과 소통을 대폭 강화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도 드러났지만 우리 사회 세대갈등 문제가 심각하다. 50~60대 이상 기성세대 기득권이 너무 강고하다. 민주당도 586 기득권 얘기가 나오지만 국민의힘도 지금 60대 이상이 지배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 그룹도 세대 교체해야 한다. 30~40대 지도자들을 목적의식적으로 키우고, 그들이 주도하는 세상으로 바뀌도록 선배들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청년 정당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권한과 예산을 확 배분해서 청년 정당을 지원하고 청년 정당 내에서 지도자들이 나오면 공천에 40~50%를 반영해서 그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면 된다. 대신 청년 정당 안에서는 정치교육과 지적인 훈련프로그램들을 꾸준히 운영하는 방식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목적의식적으로 육성하지 않는 한 지금의 이 기득권 구조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조_ “지금 2030 청년 남성들의 불만과 좌절은 기성 세대의 눈이 아닌, 젊은 세대 눈으로 현실을 봐야 문제가 풀린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지 못해 청년세대의 불만과 좌절이 증폭됐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지금의 2030 청년세대는 이전의 386세대에 비해 스펙도 화려하고 자기 역량 계발에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도 고용이나 처우 면에서 불이익을 보고 있다. 청년 교사나 청년 공무원들은 연금 혜택도 줄어들고 월급도 동 세대의 다른 직장인보다 낫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다. 바로 이런 점을 정치권에서 주목하고 세대 간 불평등을 완화하는 획기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대표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 다. 이번에 내각에도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 및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대거 발탁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나권일 월간중앙 선임기자 na.kwon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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