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상법 3% 룰, 진화가 필요하다
[권태준 기자]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뜨거운 입법논의 중 하나가 상법 개정이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약에 반영되지 않았던 이른바 '3% 룰'이 새로운 의제로 떠올랐다.
여기서는 3% 룰이 무엇이고, 이것이 우리 상법의 변천과정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개정하자는 것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3% 룰이란 무엇인가
본래 1주당 의결권은 하나씩 인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감사를 선임할 때에는, 모든 주주가 3% 초과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의결권 제한을 3% 룰이라고 한다. 3% 룰은 1962년 상법 제정 당시 도입됐고, 지금도 제409조 제2항에 남아 있다. 다른 나라에 입법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고유의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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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제사법위원회의 상법안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국회의 역할을 자임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상법안 표지 |
| ⓒ 국회기록보존소 |
1999년 상법 개정을 통해 감사위원회 제도가 도입됐다. 외환위기 이후, 사내감사 대신 경영자로부터 독립적인 지위에 있는 감사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감사위원회는 이사회 내 위원회다.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이사들 중에서, 이사회 논의를 거쳐 감사위원이 선임된다. 이사 선임 과정에 별도 의결권 제한이 없기 때문에, 감사위원은 대주주의 의사대로 선임될 공산이 크다. 감독기관의 독립성을 확보하려고 감사위원회 제도를 도입했는데, 오히려 대주주 입맛에 맞는 감사위원이 선임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에 따라 2009년 상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감사위원 선임을, 이사회 아닌 주주총회가 직접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3%룰 적용과 관련하여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사이에 감사위원 선임절차에 차등이 있다는 점이다. 사내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최대주주에 한하여 특수관계인과 합산하여 3% 초과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고(이른바 '합산 3% 룰'),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의 경우 각 주주별로 3% 초과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이른바 '단순 3% 룰').
이러한 차등은 2000년 구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상장회사 감사위원회 제도가 도입될 때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이러한 차등을 두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사내이사는 경영진의 일원이기 때문에,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합산 3% 룰을 적용해서라도 대주주 의결권을 더 강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와 3% 룰
감사위원을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도록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주주총회에서 일괄적으로 이사를 선출한 뒤 그 이사들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하고 있어 대주주의 영향력이 제한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이에 따라, 2020년 상법 개정을 통해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도입됐다. 주주총회가 이사를 선임하는 단계에서부터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하여 선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분리선출되는 이사의 경우 이사선임 단계에서부터 3% 룰이 적용되어, 대주주의 영향력이 제한된다.
감사위원은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되는데, 의무적으로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은 1인이다. 따라서 2020년 상법 개정 이후부터, 3명 이상의 감사위원 중 적어도 1인이 대주주로부터 독립된 인사로 선임될 수 있는 일정한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2020년 상법 개정 당시 3% 룰 정비 무산
3% 룰 적용에 관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사이의 감사위원 선임절차 차등은 어떻게 됐을까. 정부가 당초 국회에 제출한 상법 개정안을 보면, 정부는 사내이사, 사외이사 구분 없이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합산 3% 룰을 적용하게 하려 했다. 대주주로부터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3% 룰 적용에 관한 종전의 차등이 유지된 채로 입법이 마무리되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3인 이상인 감사위원 중 1인만을 분리선출하는 상황에서, 3% 룰에 관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사이의 차등을 없애는 것이 당시로서는 시기상조라고 보았던 것일까.
그리하여, 상장회사에서 사내이사인 감사위원과 감사를 선임할 때에는 합산 3% 룰이 적용되고,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에만 단순 3% 룰이 적용되는 불균형적인 상황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3%룰, 진화가 필요하다
감사위원회는 사내 경영감독기관이다. 이 기관이 본래의 목적대로 기능하려면 대주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1999년 이래 상법 개정은, 감사위원을 어떤 절차에 따라 선임해야 감사위원회가 대주주로부터 독립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 국회에서는 분리선출 대상이 되는 감사위원을 1인에서 2인으로 늘리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안은 이미 지난 해 11월 더불어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됐고,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2020년 상법 개정 당시 감사위원 분리선출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인됐고, 이번에는 분리선출 대상이 되는 감사위원을 1인에서 2인으로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충분히 성숙됐다고 본다.
나아가, 3인 이상의 사외이사 중 2인을 분리선출 방식으로 선임하게 할 경우, 3% 룰에 관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의 감사위원 선임방식 차등은 더욱 그 필요성을 찾기 어렵게 된다. 감사위원회 제도에 관한 3% 룰도, 이번 상법 개정 과정에서 단순하고 일관성 있게 정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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