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17) 우렁찬 폭포수는 바다를 향해 달리고
6월 푸른 산야에 비가 내린다. 이팝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찔레꽃…. 청초하게 피어나던 하얀 꽃이 지고 나니, 푸른 숲은 기세를 더해 더욱 우렁우렁하다. 방장산 골을 타고 내린 빗물이 산책로 개울로 합수하며 속살거린다. 정원석으로 쌓은 얕은 고개를 넘느라 "콜, 콜, 콜" 몸을 뒤틀어 솟구치며 떨어진다. 작은 폭포수다. 앙증맞은 낙수를 지그시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작은 여울에 실려 요동치는 제주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제주풍경의 화룡점정이랄까, 제주에 있어 폭포수는 정지된 풍경에 생기를 더하는, 살아 움직이는 활력을 보태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바닷가 바위 절벽을 타고 그림처럼 쏟아지는 폭포수가 없다면, 땅속을 혈관처럼 흐르던 생명의 물이 포효하듯 내지르는 우렁찬 함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힘찬 폭포수는 미련이란 없이, 따라오는 물살에 멋진 뒤태를 자랑이라도 하듯 주저 없이 뛰어내린다. 장쾌하고 시원스럽다. 흩날리는 무지갯빛 물보라는 근심일랑 씻어버리라고 촉촉한 손길로 어루만진다.

천지연은 '하늘과 땅이 만나 이루어진 연못'이라는 이름처럼 단연 으뜸의 경관을 자랑한다. 서귀포의 옛 포구에서 계류를 거슬러 오르면 천지연계곡의 선경을 이루는 기암절벽이 시선을 뺏는다. 수많은 아열대성, 난대성 상록수와 양치식물이 울울창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이면, 마치 수묵화 속으로 들어온 듯 아련한 정취를 풍긴다.
천지연 둘레 숲은 천연보호구역이다. 사철 푸른 나무와 난 종류가 빽빽하게 우거져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거기에다 천지연이 북방한계선임을 보여주는 천연기념물이 있으니, 숲에 자생하는 나무'담팔수'와 어류로는 '무태장어'가 그것이다. 이런 연유로 이곳이 천연기념물의 보고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성싶다.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하는 폭포, 천제연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폭포는 한라산에서 시작된 중문천이 바다를 향해 달리면서 형성된 것으로, 중문관광단지 안에 있다. 폭포는 세 개로 나누어진다. 주상절리 절벽에서 천제연으로 떨어지는 것이 제1폭포, 그 물이 아래로 흐르면서 형성된 두 개의 폭포가 더 있다. 제1폭포는 건기에는 폭포수가 흐르지 않지만, 주상절리와 비췻빛 연못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절벽 아래 푸른 못은 동심원조차 없는 고요 그 자체다. 세상사 시끄러울 때 마음을 가라앉히는 풍광으로 이만한 데가 있을까. 깎아지른 절벽 아래 아늑한 물가에 앉아 물이 주는 평화를 누려볼 일이다.


소정방폭포를 지나 정방폭포로 가는 오솔길로 접어든다.'한라산이 낳고 바다가 품은 폭포', 정방폭포의 멋스러운 별칭이다. 신이 빚은 주상절리 절벽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푸르른 해안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앞바다에는 문섬과 섶섬이 떠 있어 자연이 그린 한 폭의 그림에 재미를 포갠다. 대한민국의 명승이요, 제주에서 경관이 빼어난 곳을 이르는'영주 10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라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내리다 곧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다. 이런 폭포는 세계적으로도 자메이카의 '던스 리버'만 알려져 있다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름다운 명소에는 이야기가 있게 마련, 중국 진나라 때 일이다. 서복(서불)이라는 신하가 불로불사약을 찾아오라는 진시황의 명을 받고 영주산(한라산)에 산다는 신선을 찾아 제주까지 왔더란다. 정방폭포를 보고는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의미로 '서불과지'徐巿過之를 절벽에 새기고 돌아갔다니, 예나 지금이나'왔다 가다'라는 낙서 문구는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은 전설로 남았지만, 조선말 '파한록'에 따르면 탁본을 떴다는 기록이 있다니 그 글자가 실재했던 듯하나, 지금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근래 들어 관광 활성화를 겨냥해 글자를 새로이 새겼고 사복기념관을 지었다.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을 뿐 아니라, 서귀포 西歸浦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니, 수천 년 전 한 사람의 흔적이 유장함을 느낀다.
사계절 아름다운 신들의 섬. 장인의 명품처럼 짜임새가 있어 어느 하나 덜어낼 것 없는 섬이 제주 아닌가. 여기저기 쏟아지는 폭포수로 하여 생동하는 기운이 더 힘차게 솟는 건 아닐는지…. 짙어가는 녹음에 안긴 섬이 함초롬히 비에 젖는다.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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