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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2025. 6. 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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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이끄는 '텍스트 힙' 열풍... 독서, 취미를 넘어 정체성이 되다

[김수연, 김명현, 김수진 기자]

 한강 작가의 책이 모여있는 서점의 모습
ⓒ 김희정
"이전부터 책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궁금해져서 읽어보려고 구매했어요."

20대 여성 우OO 씨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한강의 문학전집을 구매했다.

YES24에서 발표한 '2025 새해 첫날 베스트셀러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종이책 베스트셀러 1위에서 3위까지 모두 한강 작가의 작품이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은 그간 책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책장을 다시 펼치게 만들었다.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개최된 야외도서관
ⓒ 김희정
그러나 '한강신드롬'은 독서 열풍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이미 그 이전부터 독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서서히 고조되고 있었다. 작년 서울국제도서전 방문객은 15만 명, 서울시에서 개최한 야외도서관의 누적 이용객은 200만 명을 기록했다. 출판사 민음사의 '민음북클럽'은 회원 모집 개시 24시간 만에 5천 명을 넘어서며, 독서에 높은 관심을 실감케 했다.

독서 열풍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다. YES24 독서 커뮤니티 '사락'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1월 1020 세대의 도서 구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9.3% 증가했다. 단순히 책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MZ세대들은 북토크, 독립서점 투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를 경험하고 있다. MZ세대에게 독서가 이제 하나의 힙한 취미가 된 것이다.

'읽는 나'를 드러내다

'텍스트 힙(Text Hip)'은 책을 의미하는 '텍스트(Text)'와 멋지다는 뜻을 가진 '힙(Hip)'의 합성어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텍스트 힙'이라는 단어 자체가 MZ세대에게 독서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과거에 독서는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MZ세대에게 독서는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어떤 책을 읽는지가 그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라며 "독서를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자기표현과 브랜딩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측면이 달라진 부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독서의 의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MZ 세대를 독서로 이끌었을까?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독서 열풍의 이유로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세대의 심리적 특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을 꼽았다.
 틱톡에서 '북톡' 해시태그를 이용해 공유된 영상
ⓒ 김수연
6월 기준,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TikTok)'에는 'BookTok' 해시태그가 달린 영상이 약 5700만 건을 넘겼다. 이용자들은 해당 해시태그를 통해 서로 읽은 책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통해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빅데이터 전문기업 바이브컴퍼니의 트렌드 연구소인 생활변화관측소는 또 다른 이유로 '독서에 새로운 가치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독서의 가치는 '간접적인 경험'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경험과 공유 같은 '직접적인 경험'에 무게를 둔다.

이러한 가치 변화는 대학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독서 소학회 회장 김OO씨는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라며 독서 소학회에 가입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소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최근 독서 열풍을 실감한 순간도 있었다. 김씨는 "올해 소학회 신청 문의가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고, 언론영상학부 내 소학회 모임에 타과 학생들까지 관심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었다"라며 "전공을 넘어 독서와 토론에 흥미를 느끼고 참여하려는 학우들이 많아진 것 같아 기쁘다"라고 전했다.

책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

생활변화관측소는 '독서 모임'을 언급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어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책은 더 이상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여러 권의 책을 나란히 늘어놓고 읽는 독서 방식인 '병렬 독서'에 대한 관심이 상승하고 있다"라고 전하며 "같이 책을 읽을 친구를 여러 명 모은 후 서로 논평을 하는 '교환 독서' 문화가 추세가 되는 등,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무감과 책을 돌파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독서 문화가 넓고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유명인들이나 출판 전문가들의 도서 추천, 책 관련 콘텐츠도 인기를 얻고 있다. 작년 5월, 걸그룹 아이브 구성원 장원영이 예능에서 인용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2024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알라딘은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추천한 책을 모아 별도의 코너를 마련했다.

책 관계자들도 책을 주제로 한 콘텐츠 제작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유튜브 '민음사 TV'
ⓒ 김수연
출판사 민음사가 운영하는 공식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는 마케터와 편집자들이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해 현재 약 31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생활변화관측소는 "아이돌 멤버 등 유명인들이 읽은 책을 그대로 따라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콘텐츠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미 책과 관련된 관계자들이 많으며, 이들이 소개하는 책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라며 "이들이 책에 대해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들의 콘텐츠를 찾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독서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독서 열풍 잠깐의 유행일까, 변화일까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독서 열풍, 과연 잠깐의 유행일까, 문화의 변화일까? 이에 대해 생활변화관측소는 "현재는 취향이 파편화되어 있기에 예전과 같이 국민 신드롬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나오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독서가 하나의 취미를 넘어, '덕질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엄청난 열풍이 올 거라 보기는 어려우나 팬덤이 형성된다면 오래갈 수 있는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독서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자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이를 축적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면, 책과의 관계가 훨씬 더 지속적이고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생활변화관측소는 "현재의 텍스트 힙은 과시나 보여주기 식이 아닌 긍정적인 의미로 수용되고 있고, 그에 발맞춰 다양한 독서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서의 장벽이 더 낮아지고, 책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콘텐츠가 되는 사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현재 우리는 수많은 취향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취향의 파편화'라는 흐름 속에서 독서 열풍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커다란 변화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독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제 독서는 한순간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초신성이 아닌 항상 우리 곁을 맴도는 위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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