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소리 대신 웃음꽃 폈지만, 접경지 또 근심 "강남이라도 이럴까"
[정초하, 소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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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북·대남 방송 중단 일주일을 하루 앞둔 18일 오전, 접경지역인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주민들은 1년 가까이 이어진 대북·대남 방송으로 창문도 마음껏 열지 못한 채 생활해 왔다. |
| ⓒ 소중한 |
마을회관에선 연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18일 오전 <오마이뉴스>가 찾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의 주민들은 활짝 열린 마을회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식탁에 둘러 앉아 달라진 일상을 방해 없이 이야기나눴다. 귀신, 늑대, 쇠 긁는 소리가 온 마을을 채웠던 일주일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상이었다. 오후에 찾은 김포시 시암리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은 이제야 마당에 놓았던 의자에 앉아 수박을 나눠 먹을 수 있게 됐다.
다만 1년여 만에 되찾은 일상의 소중함만큼, 동시에 불안감도 생겼다. 대북·대남 방송 중단 이후 연일 이어진 일부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까 봐" 주민들은 연신 걱정했다.
<오마이뉴스>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이뤄진 대북·대남 방송 중단 일주일을 하루 앞두고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인근 접경지역 마을을 찾아 "그동안 소외돼 있던"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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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산리에서 바라본 대남 방송이 이뤄지던 북한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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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당산리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도 하나같이 "조용해서 좋다"라고 입을 모았다. 친정이 북한이라 "반공 교육을 듣고 자랐다"는 이아무개(71, 여)씨는 "이러다가 연평도처럼 (우리 마을에도) 포가 떨어질까 봐 더 불안했다"라고 떠올렸다.
김선옥(74, 여)씨 역시 "요란스럽게 (대남 방송이) 나올 때마다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야'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지금은 마음이 푹 놓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잘 안 들리니까 (서로) 악을 쓰고 말했다. 들판에 나가서 운동하려 해도 귀신 소리 탓에 무서워서 도로 들어왔다"라며 "(방송이) 잠시 꺼져도 귀에서 환청이나 이명이 들렸는데 지금은 안 들리고 잠도 푹 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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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산리 인근을 자전거를 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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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산리 주민들이 마을회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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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1.5km 떨어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이강(64, 남)씨와 아내 이미경(62, 여)씨는 "안정됐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앞마당 야외 탁자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서 직접 녹음한 대남 방송 확성기 소리를 들려주던 이미경씨는 "이제야 평화로움을 다시 찾은 느낌"이라며 "귀신 소리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동네를 떠야 하나 불안했다"라며 "예전에는 개구리 소리가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너무 정겹다"라고 말했다. 남편 이강씨 역시 "잠을 못 자 기상하면 머리가 띵했는데 이제는 괜찮다"라고 덧붙였다.
시암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장현옥(65, 여)씨 역시 "밤새 '미스터 트롯'을 틀어놓고 자야 잘 수 있었다. 전기 요금이 엄청 나왔다"라며 "지금은 자러 들어갈 땐 (TV를) 끄고 잠도 잘 잔다"라고 말했다. 함께 만난 길복례(66, 여)씨 역시 "이중 창인데도 소음 때문에 공황장애 약을 더 (세게) 올렸었다"라고 회상했다.
민통선 너머의 통일촌 이장 이완배(70, 남)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아주 살 만하고 주민들이 다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바로 옆 해마루촌 이장 홍정식(55, 남)씨 역시 "전 정부가 3년간 못한 걸 일주일 만에 했는데 이제 희망을 갖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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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에서 바라본 대남 방송이 이뤄지던 북한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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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산리에 대남 방송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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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미경씨 역시 "접경 지역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민도 아닌가"라며 "강남이나 용산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해 봐라. 하루도 못 간다"라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가 대책으로 내놓은 임시 거주 시설을 두고도 "내 집 놔두고 숙소에서 자라는 게 자존심 상하고 정말 기분 나빴다. 주민 수가 적고 입김도 적으니 (정부가) 우리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산리 이장 안효철씨도 지방자치단체가 소음을 차단한다며 일부 가구에 설치한 방음창을 거론하며 "방음창을 설치하기 전에 대북 방송부터 끄라고 100번은 얘기했는데 (정부는 우리 이야기를) 안 들었다"라고 전했다. 양오리의 이경선씨도 "그동안 피해를 봤는데 추경에도 우리(접경지역)가 빠져있고 민방위기본법으로도 보상을 못 받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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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도를 빠져나가는 도로 전광판에 대북 전단 등의 살포를 금지하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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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산리의 한 주민이 방음창을 설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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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중단에도 방음창을 설치하고 있던 당산리의 이아무개(남)씨는 "저 친구들이 (대북 전단이 담긴) 풍선만 안 날리면 되는데 (지금 상황에선) 쟤들(북한) 마음이 또 언제 변할지 몰라 방음창을 설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6·25 전쟁을 겪었던 나는 안보관이 투철하다. 그럼에도 대북 전단 살포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라며 "전쟁이 일어나면 다 죽는다. 보수든, 진보든 서로 평화롭게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해야지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양오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다 큰 피해를 입은 최형찬(61, 남)씨 역시 "(대북 전단을 뿌리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넋 빠진 이야기다. 그건 주민들의 삶과 안정을 해치는 행위"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9·19 합의를 복원하고 대북 전단 살포 같은 적대적 행위를 강력하게 막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암리의 이강씨도 "저는 강한 안보 의식을 갖고 있는 편"이라면서도 "(대북 방송처럼) 스피커를 튼다고 해서 북한이 귓등으로라도 듣겠나. 인근 주민들에게 괴로움과 스트레스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새 정부에 바라는 점 역시 "평화"와 "일상"이었다. 당산리 이장 안효철씨는 대남 방송이 들려오던 강 건너 북측 봉우리를 가리키며 "여기는 암만 비가 와도 물이 차고 그런 거 없이 살기가 그렇게 좋았다고. 계속 (이대로) 유지만 해주면 좋겠어"라고 읊조렸다. 시암1리 마을회관의 주민들도 현장을 떠나는 기자에게 "민통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전해 달라"며 한 가지 당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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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산리의 안효철 이장이 민통선 너머 대남 방송 스피커가 설치된 북한 지역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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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완벽한 '음소거' 상태... 이재명 정부 출범에 '귀신소리' 사라진 마을 ⓒ 소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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