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 20년차 워킹맘이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고 알게 된 것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호 기자]
올해 입사 20년 차 워킹맘이다. 복작복작 살다보니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흘렀다. 그 사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4번의 희망퇴직이 있었다. 올해는 유독 그 칼날이 따갑게 느껴진다.
순조롭지 않았던 회사 생활 동안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잦았다. 전문성을 내세워 승진을 꿈꾸었고, 더 좋은 대우를 받는 화려한 이직을 꿈꾸었다. 몇 번의 이직 기회는 소심한 성격에 발목을 잡혔다. 익숙한 시스템과 사람들을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기에 이직하기 좋은 시기를 놓쳤다.
지극히 내향적인 아웃사이더였지만 두렵지 않았다. 하면 된다. 일은 그냥 하면 되는 거로 알았고 그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하지만 그냥 해도 되는 일은 없었다.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관계 형성이 중요한 변수였다. 능력치와 상관없이 회사에서 원하는 핵심 인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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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상 위에 쌓인 업무 관련 서적들. |
| ⓒ 김지호 |
희망퇴직 같은 권고사직 분위기에 회사는 뒤숭숭하다.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발 빠른 직원들은 벌써 희망퇴직자 명단을 논하고 소문의 진위를 파악해 상사와 개별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나도 조용히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당장 목돈이 들어오면 이래 재래 은행대출금 상환하고 몇 달 구직활동 하면서 지내면 될 것 같았다. 그 후 뭘 해야 할까? 고민은 다시 원점이 됐다.
내가 하는 회사 세무 업무는 야근이 일상이었고, 매년 개정되는 세법으로 머리가 지끈거릴 때가 많았다. 회사 세무 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 주말 출근도 다반사였지만, 묵묵히 일하며, 시스템을 보완 개선하는 재미도 있었다. 업무를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일하느라 바빠서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바쁜 엄마, 퇴근이 늦는 엄마, 예민한 엄마였기에 빈자리는 아빠가 채워줘야 했다.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새벽에 퇴근했고,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했다. 녹록지 않았던 그 시간이 지금도 고스란히 와 닿는다.
고집스럽고 깐깐한 성격으로 혹여 세무 신고를 잘못하진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다. 매월, 매 분기, 매년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보내온 시간이 쌓여 18년 동안 세무 업무에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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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무를 보는 곳. |
| ⓒ 김지호 |
그런데도 희망퇴직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넉넉하게 나오는 위로금, 이보다 좋은 조건의 희망퇴직은 없을 거라며,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남는 것이 마치 잘못처럼, 새로운 일에 도전할 기회를 놓치는 무능력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퇴직을 고민하는 순간, 화가 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워킹맘으로 살아남기 위해 남몰래 흘렸던 눈물, 무결점으로 업무를 해내고 싶었던 욕심, 나와 성향이 다른 상사와의 힘겨웠던 순간,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청춘이 중년이 되었는데, 희망하여 퇴직하라니, 허망했다.
애매한 중간관리자가 되어 떠밀리듯 나가고 싶지 않았다.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고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나의 쓰임이었다. 체력과 열정이 예전처럼 넘치진 않지만,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 시스템은 머릿속에 청사진으로 그려져 있기에 20년이란 경력은 강력한 재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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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몰이 아름다운 건 하루를 잘 보냈기 때문. |
| ⓒ 김지호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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