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남부지방 관광을 마치고 다시 중부지방으로 온다. 항구도시 세투발에 1박하며 역사와 문화유산을 살펴본다. 그리고는 테주강의 바스쿠 다가마 다리를 건너 오비두스로 간다. 이제부터 포르투갈 중부지방 답사기가 이어진다. <기자말>
[이상기 기자]
리스보아와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춘 항구
▲ 세투발을 대표하는 어류 조형물: 정어리, 갑오징어, 돌고래
ⓒ 이상기
세투발은 리스보아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항구도시다. 사두강(Rio Sado) 하구에 형성된 커다란 석호 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 어항으로 발전했고, 현대에 와서는 군항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었다. 석호 밖으로 길게 뻗은 트로이아(Troia) 반도는 천연의 방파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래사장이 잘 발달해 있어 해수욕이 가능한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세투발은 어업, 선박과 조선업, 해운업, 염전업 등이 발달했고, 육상과 해상 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
세투발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어항이다. 그것은 사두강 하구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트로이아 반도 덕분이다. 이것이 파도를 막아주고, 항구 쪽으로 어선들이 정박할 공간이 굉장히 넓기 때문이다. 또 어업을 통해 잡은 물고기를 가공하는 수산업도 발달했다. 어업을 통해 잡히는 대표적인 물고기는 정어리와 갑오징어다. 그 때문에 도시 곳곳에서 정어리와 갑오징어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정어리는 구이로 먹거나 통조림으로 만들어져 소비된다. 세투발에는 정어리를 기본으로 하는 음식 골목이 있을 정도다.
▲ 세투발 관광업을 대표하는 요트
ⓒ 이상기
세투발 도심에는 9만 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고, 주변까지 합치면 인구가 12만 명 정도 된다. 그러나 어업과 수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면서 최근 인구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세투발은 관광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투발에 성과 교회 같은 문화유산이 많고, 트로이아 반도 쪽으로 모래사장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호텔과 리조트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사두강 하구 세투발 만에는 돌고래가 서식하고 있다. 그 때문에 세투발에서는 보트를 타고 돌고래를 관찰하는 생태관광을 할 수 있다.
세투발에서 만난 수도원과 박물관
▲ 세투발의 제수이트 수도원
ⓒ 이상기
세투발의 문화유산으로는 제수이트 수도원이 가장 유명하다. 1490년에서 1495년 사이 고딕양식으로 지어졌고, 마누엘 1세가 등극한 1496년부터 1510년까지 마누엘 양식으로 변화되었다. 제수이트 수도원은 리스보아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초창기 마누엘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16세기 전반 조르게(Jorge de Lencastre) 왕자가 성당 남쪽에 커다란 땅을 기증했고, 이것이 나중에 예수 광장이 되었다. 그리고 왕자가 수도원에 기증했던 멋진 장식의 십자가가 19세기 들어 광장에 세워지게 되었다.
세투발에는 미셸 자코메티(Michel Giacometti) 노동 박물관이 있다. 자코메티 주도로 1975년 수집된 인류학적인 도구와 자료가, 연구와 분류를 거쳐 1995년 이곳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 건물은 제수이트 교단 선교사로 일본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 기념성당과 학교로 1655년 처음 만들어졌다. 1758년 퐁발 후작에 의해 제수이트 교단이 해체된 후 성당과 학교가 베르나디네 가문에게 넘어갔다. 19/20세기에는 부유한 시민의 저택으로 사용되다가, 1991년 시 당국에 의해 노동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 자코메티 노동박물관
ⓒ 이상기
1971년 폐쇄된 페리에네스(Perienes) 통조림 공장의 시설물이 1991년부터 이곳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통조림 공장 시설은 19세기 중반부터 가동되어 세투발 수산업의 현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물이다. 그 때문에 박물관 외벽에는 통조림 작업자의 모습이 캐리커처 형식으로 조각되어 있기도 하다. 1987년까지 제수이트 수도원에 있던 자코메티 수집품 역시 이곳으로 옮겨졌다. 1995년 박물관을 개장하면서 두 개의 상설전시장을 만들었다.
첫 번째가 자코메티의 수집품을 전시한 인류학 전시공간이다. 전시 제목은 <사람들 만나기>다. 두 번째가 세투발의 대표적인 산업이던 <통조림 공장>이다. 세 번째가 2002년에 만들어진 <식료품> 전시공간이다. 그리고 박물관이 높은 언덕에 있어 옥상에 식물을 심은 정원 형식의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 올라가면 앞으로 펼쳐진 세투발 여객터미널과 요트 계류장, 건너편으로 길게 펼쳐진 트로이아 반도를 조망할 수 있다. 세투발의 노동박물관은 경제의 중요한 축인 작업과 노동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특별한 박물관이다.
세투발 출신의 축구 감독 무리뉴
▲ 토트넘 감독 시절의 무리뉴
ⓒ 이상기
세투발 출신의 유명인사로는 축구선수 출신의 주세 무리뉴(José Mourinho) 감독이 있다. 그는 24세까지 포르투갈 리그의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선수를 그만두고 바비 롭슨이 감독으로 있는 리스보아의 스포르팅 클럽과 포르투 FC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벤피카를 거쳐 2002년 포르투 FC 감독이 되어 포르투갈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3년에는 포르투가 UEFA컵 우승을, 2004년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결과 무리뉴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할 수 있었다. 그는 2007년까지 세 시즌 동안 프리미어 우승을 두 번이나 했고, FA컵을 한 번, 리그 컵을 두 번이나 차지했다.
2008년에는 인터밀란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이탈리아 리그인 세리에A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0년에는 인터밀란이 이탈리아팀으로는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에는 에스파냐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되어 라 리가(La Riga)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3년 다시 첼시 감독이 되었으나 2015년 실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이때부터 무리뉴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201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 2017년 유로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9년 토트넘 감독으로 부임해서는 성과가 없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AS로마 감독을 지냈고, 현재는 튀르키예 페네르바체 축구팀 감독으로 있다.
세투발을 떠나 바스쿠 다가마 다리를 건너 오비두스로
▲ 등꽃 너머 바다 수평선에 트로이아 반도가 보인다.
ⓒ 이상기
세투발은 지중해성 기후를 보여주고 있어, 겨울 평균 기온이 10℃ 정도다. 그리고 겨울인 11월과 12월에 비가 많이 오는 편이다. 월 강수량이 120㎜ 정도다. 그 때문인지 세투발을 떠날 때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여름인 7월과 8월은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편이다. 월 강수량이 2~3㎜ 정도며, 낮 최고기온이 44~45℃까지 올라간다. 겨울이 따뜻하기 때문에 3월 초인데도 곳곳에서 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4월 말 5월 초에나 피는 등꽃이 벌써 피었다. 공원에는 자잘한 꽃이 덩어리를 이뤄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노란 레몬 열매를 볼 수 있다.
다음 행선지는 성채로 이루어진 마을 오비두스다. 세투발에서 오비두스로 가려면 A12 고속도로를 타고 테주강에 놓인 바스쿠 다가마 다리를 건너야 한다. 바스쿠 다가마 다리는 그 길이가 17.2㎞나 되는 사장교다. 폭이 30m나 되기 때문에 왕복 6차선 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4월 25일 다리가 리스보아 시내로 연결되는 반면, 바스쿠 다가마 다리는 리스보아 외곽을 통해 포르투갈 남부와 중서부 지방을 연결한다. 이 다리는 바스쿠 다가마가 유럽에서 인도로 항해하는 길을 개척한 1498년으로부터 500주년이 되는 1998년 3월 개통되었다.
▲ 바스쿠 다가마 다리
ⓒ 이상기
그리고 5월부터 9월까지 <월드 엑스포 98>이 열렸다. 엑스포의 주제는 '해양. 미래를 향한 유산'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비되는 4월 25일 다리는 길이가 3,173m의 현수교다. 1966년 8월 개통되었을 때에는 수상의 이름을 따 살라자르 다리였다. 그러나 1974년 4월 25일 카네이션 혁명이 성공한 후, 이름이 4월 25일 다리로 변경되었다. 젊은 군인들의 살라자르의 독재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시민들이 이를 지지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포르투갈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이를 기념해 4월 25일을 자유의 날(Dia da Liberdade)로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