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 공부하세요, 여행이 더 맛깔나집니다

퀴즈 하나. 돈카츠의 로스까스와 히레까스 중 등심 부위는? 정답은 로스. 그런데 왜 '로스'일까? 히레는 왜 히레일까. 평생 '돈까스'를 먹어왔지만 이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의사이면서 스타 블로거인 배상준 외과전문의의 신간 『메뉴판 해석학』(애플북스)에 답이 있다. 먹기만 하면 되지 뭘 알기까지 해야 하냐고? 알면 더 맛있다. 로스까스의 '로스'는 영어단어 로스트(roast), '히레'는 필렛(fillet)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한다. 이왕 먹는 거 더 맛있게 먹자는 생각으로 빼곡한 책을 낸 그를 최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배 작가는 "맥덕(맥주 덕후)" 의사로도 유명하다. 2018년 『독일에 맥주 마시러 가자』는 책을 냈고, 종종 일본 맥주 테마 여행을 인솔하기도 한다. 자택 찬장엔 맥주잔만 500잔이 넘는다고. 그는 "만에 하나 가택연금을 당한다고 해도 1년 정도는 지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익살을 부렸다.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어 애용하는 칼도 6종류, 프라이팬도 6가지를 때에 맞춰 쓴다고 한다.
그런 그가 왜 이번엔 메뉴판에 천착했을까. 시작은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과의 대화였다. 요코하마에서 함께 여행 중, 메뉴판은 그 나라 미식의 작은 지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여행 중엔 일본어로 유창하게 회화를 하지 않아도, 일본어 메뉴를 해석할 수 있으면 여행의 질이 급상승한다"며 "이왕 많이들 가는 여행, 더 즐겁게 갈 수 있으면 하는 생각에 책을 엮었다"고 했다. 책은 팩트를 집요하게 모으면서도 유머를 곁들여 풀어낸다. 그는 "남 웃기는 게 소원이었다"며 "글은 본업이 아니니 쓸 때 대체적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문장엔 필자 스스로가 재미있어하며 쓴 글만이 갖고 있는 리듬이 있다.

시작은 블로그였다. 필명 '낭만닥터SJ'는 원래 의사로서의 지식을 나누기 위해 시작했다. 그는 "외과 의사로서 자부심이 있었는데, 환자들이 암 진단을 받고 나선 '큰 병원 가야하니 소견서 써달라'고 하더라"며 "결국 환자는 의사를 보고 병원을 가는 게 아니라 병원을 보고 의사를 찾는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병원 브랜드를 의사 개인이 이길 순 없더라"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어 블로그에 의사로서의 고민과 생각을 써보자는 게 시작이었다는 의미다. 그는 "병원이라는 브랜드를 의사 개인인 내가 이길 순 없지만, 극복은 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 수단이 블로그였다"고 말했다.
인생은 때로 예기치 않은 카드를 내민다. 그의 블로그에서 독자들이 환호한 건 의료 정보가 아니라 여행과 맥주 이야기였다. 해외여행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그가 마일리지만을 이용해 일등석을 타고 장거리비행을 한 꿀팁을 공유한 블로그를 읽어봤을 수 있다. 그는 "블로그를 기왕 시작했으니, 내가 좋아하는 여행과 맥주 이야기도 하자고 생각해서 틈틈이 썼는데, 2015년 11월 마일리지 일등석 글이 '빵' 터졌다"며 "(당시) 실시간 검색어 1위도 했다"고 자랑했다. 블로그 시작 후 약 5년만에 시쳇말로 대박이 난 것. 이후 그는 의사이자 작가로 인생 시즌2를 열었다.

개원은 일부러 안 하고 페이닥터(월급 받는 의사)으로 만족한다. 그는 "예측 가능한 삶, 리스크가 전무한 삶을 추구한다"며 "개원하면 지금보다 2배는 벌 수 있겠지만 리스크 관리까지 고려하면 지금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하나 중요한 질문. 의사인 그가 술을 즐기는 비결이 궁금했다. "술을 마시면 일찍 죽는 건 팩트다. 그냥 일찍 죽는다. 하지만 그래도 술을 즐기고 싶다면 차선책을 써야 한다. 음식도 조절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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