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단점 정부의 길

딱 3년 전에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갓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성공 여부는 ‘견제와 균형의 정상화’에 달렸다고 충고했었다(중앙일보 2022년 5월 23일자). 여소야대 국회와 함께 출범한 분점 정부(分占政府, divided government)로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이야기했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시스템의 원리를 정상적으로 되살리는 데에는 분점 정부가 더 효과적이고, 그러면 여론의 지지는 따라올 것”이라는 취지였다. 석 달 후 다른 언론 지면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권력은 조각보 권력, 즉 “혼자서 장악하는 권력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과반이 되는 권력”이어서 그는 “좋건 싫건 이 조각보를 잘 유지하고 넓혀나가야 할 숙명”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불행히도 우리가 다 알다시피 그는 이러한 바람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계속하다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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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법·행정 장악 강력한 정부 탄생
분점 한계 보였던 전 정부와 대조
극단 정책 추구하면 실패 위험 커
폭주 막을 사람은 대통령 본인뿐
」
이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와 달리 행정부와 국회를 확실하게 장악한 강력한 단점 정부(單占政府, unified government)이다. 단순히 여대야소 정도가 아니라 당 대표 시절 온갖 비판을 무릅쓰고 국회로 보낸 충성파 의원들로 채워져 있다. 사법부의 독립을 의심케 하는 여러 일이 진행 중이고 마음만 먹으면 개헌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 이재명 대통령 앞에 놓인 과제는 3년 전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제와는 많이 다르다.
이번 대선은 달랐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점점 강경하게 지지하고 상대 후보를 더 강하게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체념하듯이 “그래도 대통령이 되면 잘 하지 않을까?”라고 질문인지 희망인지 모를 말들을 던졌다. 시기적으로는 이재명 후보가 한참 중도와 보수를 향해 외연을 넓혀나가던 때이기도 했다. 선거를 포기한 보수 유권자들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이재명 후보의 외연 확장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고 싶었던 것일 거다.
단점 정부는 분점 정부와는 다른 강점과 위험을 가진다. 강점이라면 당연히 정책과제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이것은 그 과제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단점(單占)으로 시작해 더 강력한 단점으로 끝났던 문재인 정부가 일사천리로 추진한 소득주도성장과 징벌적 부동산 정책으로 수많은 기업과 개인이 고통받고 마침내 정권을 잃은 경험이 이를 말해준다. 단점 정부가 중도지향적 정책을 추구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지만 극단적 정책을 추구하면 크게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이 실패를 덮기 위해 단점을 더 강력하게 하면 결국은 독재로 흘러 민주주의를 파괴하게 된다.

취임 직후 밀월 기간을 즐기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은 다행히 과거에 비해 중도합리적인 발언들을 꺼내놓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분명하게 약속한 적도 없고 문서화해서 남긴 적도 없다. 예를 들어보자. 선거 때 부동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징벌적 과세를 지속할 것이냐고 질문을 받자 그 정책은 인기가 없더라며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중도보수 유권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며칠 후에는 기본사회 시리즈를 다시 꺼내 들었다. 기본사회 시리즈의 핵심인 기본소득은 부동산에 대한 추가적인 과세를 통해 그 재원을 만들겠다고 한 것이 아니었던가. 강성 지지층은 환호했다. 그런데 막상 대선공약집을 보면 이도 저도 분명하게 쓰여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시기가 문제일 뿐, 결국은 이재명 정부도 언젠가는 지지율 하락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라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대통령은 중도를 향하게 된다. 윤 전 대통령은 이것을 하지 않고 극우를 향해 계엄을 꺼내 들었다가 몰락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층은 중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장 왼쪽의 강성 지지층에서 출발해 조금씩 조금씩 중도를 향해 외연을 넓힌 끝에 만들어졌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왼쪽으로 갈수록 그의 단단한 지지층이고, 중도로 갈수록 지지의 강도는 약해지는 구조이다. 이런 상태에서 지지율 하락 국면을 맞는다면 그는 좋든 싫든 다시 극단적인 정책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야당의 벽을 넘을 수 없는 분점 정부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과격한 선택을 했을 때 국회의 벽에 가로막혔다. 작년 12월 4일 새벽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이 그것이다. 강력한 단점인 이재명 정부는 대통령의 과격한 선택을 막을 견제장치가 아예 없다.
대통령의 폭주를 막을 유일한 사람은 대통령 본인뿐인 상황이다. 수많은 사법 리스크에서 그를 결사옹위하고 오늘날 대통령 이재명을 만들어준 과거의 동지들은 이제부터는 폭주하자고 유혹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본인들의 정치적 지분이 그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국면이 시작되기 전에 재빠르게 중도의 지지를 탄탄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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