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하지 않은 건축물은 대체 무엇인가
[최주연 기자]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W.H.I.T.E. <네모의 꿈> 중
우리 일상을 둘러싼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 나무, 식물… 조금 떨어져서 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우리 곁에 늘 있는 건, 네모난 건축물이다. 대학교를 입학한 1학년 시절, 수많은 교양 중 '현대건축의이해'라는 과목을 들은 적 있다. 눈 닿는 곳 어디에나 건축물이 있는데, 어떤 형식을 차용했고 어떤 역사가 있는지 알면 일상이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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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인간적인 건축 |
| ⓒ 알에이치코리아 |
헤드윅이 쓴 <더 인간적인 건축>은 인류와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함께하는 건축물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직선적이고 따분한 건축물들이 환경과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시한다.
"우리 세계는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다. 수없이 많은 도시가 삭막하고 따분한 느낌을 준다. 주위를 둘러보라, 모두 똑같은 모양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우리는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규격화되어 일종의 공식처럼 지어지는 건축물은 짓기 쉬워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 더욱이 현대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요즘의 건물은 튼튼하고 오래 지속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그런 현대의 건물이 지속 가능한 건물이 아니며 환경을 비롯해 인간에게도 좋지 않은 '따분함'을 선사한다고 이야기 한다.
인간적인 장소와 비인간적인 장소
세계적인 건축물은 무엇이 있을까.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을 대 보라고 하면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사람은 아마 안토니오 가우디 일 것이다. 188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26년 완공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의 대표작으로, 백 년이 넘도록 전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가우디의 건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사랑 받는다.
헤드윅은 그 이유가 따분함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직선은 인간의 선, 곡선은 신의 선"이라는 가우디의 말처럼, 그의 건축물은 곡선과 복잡성을 통해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파사드를 살펴보면 단순히 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구역마다 전부 다른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다른 건축물인 까사밀라도 마찬가지,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곡선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드윅은 이런 특별함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며, 현대의 규격화된 건물은 '100년간의 재앙', '비인간적인 건물'이라고 말한다.
"수십 채의 건물을 지나며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은 수십 가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감정은 합쳐진다. 이런 감정이 중요하다. 우리 생각보다 더.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평범한 건물의 외관은 특정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중략) 이러한 모습은 놀랍도록 해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를 위해 지어져 이런 모습을 채택한 장소는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우리를 병들게 하며, 우리를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게 한다. 분열과 전쟁, 기후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다. 한 세기 전 우연히 발견한 모습은 전 지구적 재앙이 되었다. (p.85) "
"인간은 따분한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따분한 건물은 우리를 망가뜨린다. 따분한 건물은 비인간적이다. (p.117)"
책은 '따분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너무 평평한 건물, 너무 밋밋한 건물, 너무 직선적인 건물, (금속과 유리로 인해) 너무 반짝이는 건물, 너무 단조로운 건물, 너무 익명적인 건물, 너무 진지한 건물이 따분함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건축물도 있다. 올바른 맥락에서 올바른 의도와 함께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한 건물이나 장소에 너무 많이 모이게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한다.
"건물을 짓는 것은 환경에 나쁘고 , 건물을 지었다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는 것은 환경에 훨씬 더 나쁘다. 따분한 건물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p.139)"
그는 따분한 건물이 흥미로운 건물보다 환경에 훨씬 더 나쁘다고 말한다.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왜 따분한 게 환경에 더 나쁘지?' 작가는 그런 내 의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인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을 내놓는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건축물은 쉬이 철거되지 않는다. 철거되는 건물들은 인기가 없고, 규격화된 그런 건물들이다. 인기 있는 건물은 몇 십 년, 몇 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이 사랑하고 기꺼이 그곳에 방문한다.
따분함이라는 컬트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인간적인 도시 계획 시스템이라면 평범한 행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바로 그것을 위해 싸울 것이다. (p.329)"
헤드윅은 본인의 학생 시절을 회고하며 '건축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는 "건축가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는 일반화를 기반으로, 따분함이라는 특성이 단순히 비용 절감이나 게으름, 상상력 부족의 결과가 아니라고 말한다. 음악가나 화가와 마찬가지로 건축가도 당대의 예술적 유행에 쉽게 휩쓸린다는 것을 강조한다. 현대의 따분함 또한 100년 전 불어닥친 '모더니즘'이라는 예술적 열풍의 결과라 볼 수 있다.
헤드윅은 르 코르뷔지에를 따분함의 신이라고 일컫는다. 그가 르 코르뷔지에의 신념, 건축물에 대해 오목조목 짚어줄 때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교양 수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르 코르뷔지에의 사상은 당시엔 매우 혁신적이고 긍정적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분함'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보니, 그 건축물들이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따분하지 않은 건축물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따분하지 않은 건축물은 대체 무엇인가.
세계를 다시 인간화하는 법
"실로 합리적인 인간 세계는 효율이나 이윤, 무결한 기계철머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놀라운 다양성 유동성·역사성·특이성 속에 살고 있는 한 종으로서 우리의 존재를 반영하는 세계이다. 끝없는 흥미로움과 다원성의 세계이다. (p.341)"
"건물은 곁을 지나치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p.347)"
헤드윅은 이런 따분해진 세계를 다시 '인간화' 하고자 노력한다. 따분하지 않는 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순응성이 아니라 창의성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이 말이 공감되었다.
헤드윅이 지적한 '순응성'은 단지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한국의 교육과정은 창의력을 기르기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도출하는 능력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수학처럼 공식이 명확한 과목 외의 일상적인 사안들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답 중심 사고에 익숙해져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헤드윅은 생각 전환만으로는 안된다며 달리 행동할 것도 제안한다. 그는 학생들이 지성뿐만 아니라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격려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 프로그램이 건축계에서도 개발되길 희망한다. 그 외에도 책에서는 그가 제안하는 다양한 '달리 행동하는 법'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인간은 인간적인 장소에서 살 권리가 있다.(p.471)"
더 인간적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그저 '행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기다. 길을 나설 때면 새로운 눈으로 주변 건물을 바라보고, 그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 이유를 말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책을 읽고 나니 주위 건축물이 한 번 더 눈에 들어온다. 우리를 둘러싼 네모낳고 반듯한 건물들, 복잡한 창의성 있는 건물은 찾기 어려웠다. 그저 위대한 현대 건축의 결과라고만 생각했던 주위의 건물들이 책을 읽고 나니 '재미없는' 건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빽빽한 아파트로 들어 차 있는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따분한 건물들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따분함에 대해 이야기 한 책 답게 책의 구성도 독특했기 때문이다.
그림, 폰트, 글자 정렬 등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레이아웃이었다. 글자가 반대로 뒤집혀 있기도 하고, 시선을 이끄는 신선한 방식의 사진 배치. 그가 따분함을 탈피한 창의성에 대해 얼마나 진심인지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책을 읽고 나니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모른다며,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모른다는 그 노랫말이 귓가에 맴돈다.
어떤 것이 재미있는가. 어떤 것이 따분하지 않는가. 우리 주변을 둘러싼 네모난 건물들에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는 책, <더 인간적인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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