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오역을 대하는 번역가 황석희의 시선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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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역하는 말들' |
| ⓒ 북다 |
"번역은 원작의 본질을 최대한 살려 우리말로 옮기고, 때론 드라마투르기(극작 방향 설계)로서 작품을 매만지는 역할도 하는 직업이다." (황석희)
혹자는 번역을 단순히 해당 언어를 우리말로 '직역'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Come home with me"를 "(나와 함께) 집에 가요"라고 번역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품으로 되는 일이라면 번역가란 정말 간단하고 쉬운 직업일 게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번역이란 작업이 결코 언어의 직역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첫 장면인 저 대사를 20년 경력의 전문 번역가 황석희는 "결혼해요"로 번역했다. 역시나 누군가는 '오역'이 아니냐고 반기를 들었나보다. 황석희는 자신의 책 <오역하는 말들>(2025년 5월 출간)'에서 의미 혼동, 코믹 릴리프, 연기, 바로 이어지는 대사, 원작자의 의향 등 5가지 논거를 들어 설명한다. 아, 번역이 저런 과정을 거치는 고난도의 작업이라니!
"번역가, 약 빨았네!"
아마 황석희의 이름이 대중에게 각인된 작품은 영화 <데드풀>일 것이다. 마블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청불였던 만큼 비속어와 욕설, 19금 유머가 난무했다. 안티히어로가 쉼없이 내뱉는 찰진 말빨을 어떻게 번역해서 전달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그 어려운 일을 황석희가 해냈고, 관객들로부터 마땅한 환호를 받았다. 번역가가 관심의 중심에 서는 이례적 상황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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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 ⓒ tvN |
"번역가로서 가장 무서운 단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오역'일 거다."
이 엄청난 경력의 번역가에게도 가장 두려운 건 여전히 '오역'인 모양이다. 그는 "지금도 오역 지적을 받으면 늘 아프고 가끔은 욱한다"고 고백한다. "자기 결과물을 강제로 돌아보게 하는 유일한 수단"인 오역은 애증의 대상이리라. 하지만 보완한다면 성장의 자양분이 될 테니 "도망칠 수 없는 필연적인 저주인 동시에 결국 나를 키우고 자성하게 하는 존재"라는 표현이 절묘하다.
그렇다면 번역가가 오역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경우도 있을까. 저자는 애플TV <파친코>를 작업할 때 작품의 총괄 제작자이자 메인 작가인 수 휴와 모든 대사를 논의했던 경험과 <리틀 드리머 걸>과 <동조자>에서는 박찬욱 감독과 그러했다며 당시의 경험을 회상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케이스는 드물어서 번역가 입자에서는 호사를 누린 셈인데, 그 소통의 과정이 흥미롭게 읽힌다.
<오역하는 말들>은 단순히 (영화나 공연 대사에 대한) 번역과 오역 관한 책은 아니다. '일상에서 겪는 오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나와 상대를 위해 오역을 도모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긍정적인 오역 말고 의도적인 오역을 흉기처럼 휘둘러 사람을 죽이거나 부정한 사익을 취하는 오역도 있다"고 오역의 범주를 넓혀 나간다.
"타인과의 관계도 세상일도 번역가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무수한 말들을 들었고, 이를 나의 언어로 제각기 번역하지 않았던가. 어떤 말들은 진심으로 와닿기도 하고, 어떤 말들은 오해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또, 주변의 사람들을 나의 관점에서 읽었고, 해석했고, 판단했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숱한 오역을 했으리라. 이처럼 타인과의 관계나 세상일을 번역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감고 있던 눈이 뜨이는 듯하다.
번역가의 시선이란, 결국 원문을 제대로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태도이리라. 상대방에 대해 섣불리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다면, 누군가의 말을 지나치게 쉽게 단정짓고 있다면 다시 원문을 꼼꼼히 확인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대로 직역하는 건 하수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좀더 애정을 쏟아 서로의 원문을 살펴 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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