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는 사람 거의 없는데 해설사는 무슨..."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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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삿갓 종명지 입구의 표지석. '운명하신 집'이라는 글귀가 재미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김삿갓이 숨을 거둔 곳이다. |
| ⓒ 서부원 |
그는 관료였던 조부가 홍경래의 난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뒤 연좌되어 폐족이 되었다. 숨어 살며 와신상담 관직의 문을 두드렸으나 번번이 실패한 뒤 방랑 묵객으로 평생을 살았다. 당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삶을 시문에 담아 '민중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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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입구 종명지 건너편에 김삿갓 문학공원을 널찍하게 조성해놓았다. 김삿갓 동상 뒤로 그의 시 작품을 새겨놓은 빗돌이 즐비하다. |
| ⓒ 서부원 |
주차장을 중심으로 김삿갓 문학공원과 종명지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문화유산을 관광명소로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여 낙후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 마을 초입이라 찾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
공간도 넓은 데다 주변에 볼거리가 많고, 김삿갓이라는 역사 인물이 지닌 내러티브도 탄탄한데,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는 게 적이 의아하다. 종명지에 세워진 건물의 안마당엔 잡풀만 무성하고, 상주하는 해설사도 없다. 여름철 땡볕 아래에서도 스산함이 느껴질 정도다.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해설사는 무슨…"
마을 촌로의 시큰둥한 답변이 이곳의 현실을 말해준다. 버르장머리 없이 그에게 '관리도 안 되고 해설사도 없으니 더 안 찾는 것 아니냐'고 대꾸할 뻔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같은 하나 마나 한 논쟁일 테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무관심한 건 분명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관광지로서 여기보다 더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진 곳은 전국에서도 드물다. 주변의 관광 자원과 연계할 수만 있다면, 며칠 동안 머물다 갈 수 있는, 이른바 '정주형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방치되다시피 한 종명지의 사랑채와 안채 건물이 아까울 따름이다.
멀리서 보면 번듯한 기와집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멀쩡한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룻바닥은 틈이 벌어져 있고, 기둥과 서까래에는 거미줄이 그득하다. 툇마루에 비치된 낡은 소화기에도 먼지가 세월의 더께처럼 쌓여 과연 작동은 될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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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명지 안채의 툇마루와 안마당 모습. 방마다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들여다 볼 수 없다. 안마당 뒤쪽 벽에 '김삿갓 식사 조형물'이 생뚱맞게 세워져 있다. |
| ⓒ 서부원 |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건물은 순식간에 쇠락한다. 콘크리트로 지은 아파트도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으면 얼마 못 가 폐허로 변하는데, 하물며 나무로 지은 건물임에랴. 복원한 지 십수 년밖에 안 된 종명지의 건물도 이미 쇠락의 기미가 역력하다.
목조 건물의 수리는 어디까지나 '대증요법'일 뿐이다. 건물의 쇠락을 멈추고 수명을 연장하려면,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 문화유산을 보호한답시고 자물쇠를 채우고 출입 금지 팻말을 세우기보다 그곳을 개방하고 방문객이 오래 머물도록 해야 한다.
하여 제안한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숙박할 수 있도록 건물 안팎을 리모델링하면 좋을 성싶다. 제 집과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은 줄 수 없지만, 그 정도 불편함은 이곳에서의 추억과 경험으로 상쇄될 수 있다. 칠흑 같은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숙박 시설로의 개조가 어렵다면, 해설사가 상주하는 공간이나 하다못해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건물을 관리사무소 등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 이미 차고도 넘친다. 복원했다면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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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삿갓 종명지로 들어가는 마을 어귀에 동복천을 따라 연둔리 숲정이가 조성되어 있다. '화순 팔경' 중의 하나로,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최고의 '힐링 스폿'으로 통한다. |
| ⓒ 서부원 |
숲정이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동복천의 아침 윤슬은 자못 감동적이다. 초록이 짙어 차라리 거뭇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시사철 언제 오더라도 '물멍'과 '숲멍'에 빠져들 수 있는, 전국의 몇 안 되는 보물 같은 숲이다.
일찍 일어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연둔리 숲정이를 산책하는 건 환상적인 체험이다. 낮엔 문학공원에 세워진 김삿갓의 시들을 음미하듯 읽어보는 게 좋겠다. 짬을 내어 마을 뒤편 김삿갓이 세상을 떠난 뒤 처음 묻힌 초분 묘를 찾아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애초 스쳐 지나치는 '휴게소식 관광지'나 당일치기 여행을 염두에 둔 건 아닐 테다. 종명지 건물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는 건, 쇠락해 가는 건물도 살리고, 관광객을 오래 머물게 하는 '일석이조'의 해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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